신문은 선생님

[재미있는 과학] 3만년 전 인류가 길들인 늑대… 진화 과정서 유전적 변이 생겼죠

입력 : 2018.01.03 03:04

[개의 기원]

구석기 시대 말, 인간이 길들인 늑대… 소화·대사 등에 유전자 변형 나타나
사람의 감정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정서적 교감을 나누는 동물이에요

올해는 개의 해, 무술년(戊戌年)이에요. 다른 동물과 달리 개는 인간과 정서적으로 교감을 나눌 수 있는 매우 특별한 동물이죠.요즘은 햄스터·돼지·뱀 등 다양한 반려동물을 키우지만 개처럼 꼬리를 치며 자신의 감정을 적극적으로 표현하는 동물은 거의 없어요. 그렇다면 개는 언제부터 어떻게 인간과 친구가 된 걸까요?

◇개가 길들여진 시기는 3만여 년 전

인간과 분류학적으로 가장 가까운 동물은 같은 영장류에 속한 침팬지예요. 하지만 정서적으로 인간과 가장 가까운 동물은 침팬지가 아니고 개이지요. 개의 기원은 오래전부터 많은 과학자의 관심사였어요.

최근 과학계 결론은 개가 늑대에서 갈라져 나온 동물이고, 인간에게 길들여진 일부 늑대가 현대 개로 진화한 것이라고 보고 있답니다. 구석기 시대 말 수렵 채집(야생의 동식물을 잡거나 얻어서 생활하는 것)하던 사냥꾼들이 일부 덜 공격적인 늑대를 수렵용으로 키우기 시작했고, 이렇게 길들여진 늑대가 개의 조상이 됐다는 것이지요.

과거 과학자들은 인간이 한 장소에 정착해 농사를 짓기 시작한 약 1만년 전부터 개가 늑대에서 분리됐다고 보았어요. 하지만 2011년 '개가 인류의 농경 생활 이전부터 늑대에서 분리됐다'는 논문이 나오면서 '개의 기원'이 훨씬 앞당겨졌어요. 러시아 연구진이 시베리아 알타이산맥에서 현대 개의 뼈를 발견했는데, 약 3만3000년 이전의 것이라고 나온 것이에요.

늑대와 개의 진화 과정 그래픽
/그래픽=안병현
2013년에도 비슷한 연구 결과가 잇따라 보고됐어요. 중국 쿤밍동물학연구소 과학자들이 회색늑대 4마리와 중국 토종개 3마리, 기타 품종 개 4마리의 유전자를 비교한 결과, 늑대에서 개가 분리된 시기가 지금으로부터 3만2000년 전쯤인 것으로 나타난 거예요. 중국 토종개와 회색늑대의 유전적 차이는 다른 품종 개들 사이 차이보다 적은 것으로 밝혀졌어요. 미국 캘리포니아 대학 연구진도 고대 개와 늑대 화석을 비교 분석한 결과, 현대 개의 DNA가 고대 늑대의 DNA와 일치한다는 사실을 발견했어요. 최근엔 개의 기원이 4만년 전 이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는 연구 결과도 나오고 있답니다.

◇"유전적 변이 생긴 늑대, 개로 진화"

야생 늑대는 아주 거칠고 공격적이죠. 그런데 어떻게 늑대가 인간에게 길들여져 개가 된 걸까요? 기존에는 인류가 사냥을 위해 순종적인 성격의 일부 늑대를 데려와 길들였다는 주장과, 먹을 것이 부족해 굶주린 늑대가 스스로 인간을 따르면서 소형화되고 순종적으로 변했다는 주장이 있었답니다.

최근엔 늑대 중 일부가 유전적 변이를 일으켜 개가 됐다는 주장이 나와 눈길을 끌었어요. 미국 프린스턴대 진화생물학 연구팀이 개의 염색체에서 '윌리엄스 보이렌' 증후군을 앓는 사람에게서 보이는 유전적 변형을 발견한 거예요. '윌리엄스 보이렌' 증후군은 자폐증과 반대되는 유전 질환으로 지나치게 사교적인 성격을 특징으로 하는 발달 장애이지요. 이러한 유전적 변이가 야생 늑대를 순종적인 개로 가축화하는 과정을 도왔다는 것이지요.

과학자들이 늑대·개의 유전자를 분석한 결과도 흥미로워요. 예를 들면 야생 늑대는 원래 고기를 주식으로 하는데, 개는 탄수화물에 포함된 녹말을 잘 소화시킬 수 있도록 유전자가 바뀐 것으로 확인됐어요. 실제 개의 장에서는 탄수화물을 소화시키는 아밀라아제 관련 유전자가 늑대보다 많이 발견됐고, 그 결과 개의 녹말 소화 능력이 늑대보다 5배 뛰어난 것으로 나타났어요.

또 녹말 소화에 중요한 효소인 말타아제를 관여하는 개의 유전자도 초식 동물 또는 잡식 동물과 비슷했답니다. 육식 동물이던 늑대가 가축인 개로 변하면서 인간이 주는 아무 음식이나 잘 소화시킬 수 있도록 바뀌었다는 의미예요.

◇인류, 개와 '연합'하다

이렇게 해서 개와 늑대는 몇 가지 차이점을 보이는데요. 늑대는 꼬리를 항상 밑으로 늘어뜨리고 있지만, 개는 꼬리를 흔들거나 위로 향할 때가 잦아요. 꼬리를 통해 자기 감정을 표현하고 사람과 소통을 하는 거지요. 또 갓 태어난 늑대 새끼는 보통 열흘이면 눈을 뜨지만, 강아지는 2주 이상 지나야 눈을 뜨는 식으로 발달 속도가 늑대보다 개가 조금 더뎌요. 이런 차이는 개의 경우 인간의 보살핌을 오랫동안 받았기 때문이라는 거예요.

행동학적으로 늑대는 보통 무리를 지어 생활하고 특정한 상대에게 애착을 보이지 않지만, 개는 무리 지어 살지 않고 주인 등 특정한 상대에게 애착을 보이지요. 또 플라스틱 용기 안에 소시지 간식이 들어 있을 경우, 늑대는 스스로 꺼내 먹는 경우가 많지만 개들은 근처에 있는 인간을 서운한 표정으로 바라보거나 간식을 꺼내 달라고 낑낑거리는 경우가 많이 관찰되었어요.

현생 인류의 진화를 '개와 함께 살았기 때문'이라고 설명하는 의견도 있답니다. 팻 시프먼 미국 펜실베이니아대 인류학과 명예교수는 최근 자신의 저서 '침입종 인간'에서 현생 인류인 호모사피엔스가 자신보다 훨씬 신체적 조건이 우월했던 네안데르탈인을 제치고 살아남은 이유를 '개와 함께했기 때문'이라고 주장해 눈길을 끌었어요.

네안데르탈인은 늑대를 경쟁자처럼 생각하고 사냥을 하고 포식했던 반면, 호모사피엔스는 늑대를 길들여 '연합군'으로 삼았고 함께 사냥을 하면서 네안데르탈인과의 전쟁에서 승리했다는 거예요.

개의 기원에 대한 과학자들의 연구는 진행 중이지만, 분명한 건 인간과 개가 오래전부터 협력과 연대를 하며 생존해 왔다는 사실이랍니다.


서금영 과학칼럼니스트 기획·구성=박세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