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경제 이야기] 英·美 최대 할인 행사… 재고 줄이고 소비자는 싼값 구입

입력 : 2017.12.29 03:09

[연말 대형 세일]

크리스마스 다음 날인 '박싱데이'
백화점 대형 세일로 매출 끌어올려 기업·소비자 모두 만족하는 이벤트
우리나라는 유통구조 달라 어렵죠

크리스마스 연휴가 끝났어요. 많은 사람이 일터나 학교 등 일상생활로 돌아갔지요. 하지만 영국 등 영연방 국가들과 몇몇 유럽 국가에선 크리스마스 다음 날인 12월 26일도 '박싱데이(boxing day)'라고 해서 공휴일로 지정하고 이를 기념하고 있답니다. 요즘엔 대대적인 연말 할인 행사(세일) 기간을 뜻하는 말로도 쓰이고 있지요. 오늘은 박싱데이와 할인 행사에 대해 알아볼게요.

◇박스에 담긴 소중한 마음

'박싱데이'는 선물 상자를 의미하는 단어 '박스(box)'에서 유래한 말이에요. 19세기 초 영국에선 귀족들이 크리스마스 파티를 마친 후 하인들에게 수고했다는 의미에서 성탄절 다음 날 하루 휴가를 주었어요.

당시 크리스마스 만찬은 가족이나 가까운 사람들이 모여서 1년 중 가장 성대하고 화려한 식사를 하는 자리였지요. 이를 준비하는 하인들 입장에서는 무척 힘든 일이었어요. 그래서 집안일을 해주는 사람들을 하루 쉬게 해주고, 남은 음식이나 쓰지 않는 물건 등을 집으로 가지고 가라고 했던 거예요. 오늘날 서구에선 청소부나 집배원, 소방관 등 공공 부문 종사자들과 식당 종업원, 거래업체 직원 등에게 휴가를 주거나 감사의 선물을 건네기도 해요.

우리나라 한 백화점이 연 '박싱데이' 행사 모습.
우리나라 한 백화점이 연 '박싱데이' 행사 모습. 최근 우리나라 정부도 연말 대형 할인 행사를 개최하고 있어요. /김연정 객원기자
'박싱데이'가 교회의 기부금 상자에서 비롯됐다는 이야기도 있어요. 매년 크리스마스에 헌금과 선물이 담긴 상자를 가난한 이웃들에게 나누어 주었던 전통에서 시작됐다는 거예요.

오늘날 영국 등에선 크리스마스 직후 쇼핑몰이나 백화점에서 대폭 할인 행사를 하는 것을 가리켜요. 미국의 추수감사절 다음 날 금요일 시작되는 최대 할인 행사인 '블랙 프라이데이(Black Friday)'와 비슷하지요. 쇼핑하라고 만든 날은 아니지만 결과적으로 이날이 공휴일이기 때문에 사람들이 쇼핑을 많이 하는 날이 된 거예요. 또 한 해 동안 팔고 남은 재고(在庫·창고에 보유하고 있는 물건)를 털어내고 싶어하는 제조업자들이 50~90% 싼 가격에 물건을 팔려고 하기 때문에 대대적인 연말 할인 행사가 된 거랍니다.

◇오늘날 최대 쇼핑 이벤트

이렇게 엄청나게 할인을 해서 물건을 파는 것은 기업에 불리할까요, 그렇지 않을까요? 미국이나 캐나다의 경우 영토가 넓어서 물류비용이 크고 재고를 관리하는 비용이 비싸기 때문에 어떻게든 재고를 줄이려고 애써요. 따라서 박싱데이가 상품 재고를 줄이고 그해 매출을 최대한으로 높일 수 있는 마지막 기회이기 때문에 과감한 할인 전략을 쓰는 것이지요. 소비자 입장에서는 평소 가지고 싶었지만 가격이 부담스러워 사지 못했던 가전제품 등을 최대 90% 할인된 가격에 살 수 있기 때문에 기업·소비자 모두가 만족할 수 있는 행사가 되었어요.

하지만 우리나라에는 박싱데이나 블랙 프라이데이 같은 대대적인 할인 시즌이 없답니다. 이는 미국이나 캐나다에 비해 물류비용이나 재고 관리 비용이 상대적으로 쌀 뿐만 아니라, 유통업체 입장에서 굳이 대대적인 할인 행사를 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에요. 왜 그럴까요?

우리나라와 미국·영국의 유통 방식이 다르다는 게 가장 큰 이유예요. 보통 생산자가 만든 물건이 소비자에게 전달되는 과정을 가리켜 '유통'이라고 해요. 백화점이나 쇼핑몰·대형마트 등 우리가 물건을 사기 위해 가는 곳이 '유통업체'에 해당되지요. 백화점 등이 물건을 유통시키는 방식에는 크게 두 가지가 있는데, 백화점이 제조업체에 돈을 주고 물건을 직접 사들여 소비자들에게 파는 '직매입' 방식과, 백화점이 제조업자에게서 물건을 외상(값은 나중에 치르기로 하는 것)으로 사들인 뒤 판매하고 안 팔린 재고 물품은 모두 반품하는 '위탁 판매' 방식이 있어요. 미국 등 서구권 백화점은 주로 직매입 방식으로 물건을 팔고, 우리나라 백화점은 대부분 위탁 판매 방식으로 물건을 팔고 있지요.

미국·영국식 '직매입' 방식은 백화점이 물건에 일정한 마진(매출 이윤)을 붙여서 팔기 때문에 물건이 아주 잘 팔리면 백화점 입장에서 아주 큰 이득을 보게 돼요. 하지만 잘 안 팔리면 백화점이 그 손해를 전부 떠안게 되지요.

그래서 백화점 입장에선 계산기를 두들기게 되는 거예요. 이 물건들을 보관했다가 내년에 팔 것인가, 아니면 싼 가격에 일단 다 팔아버릴 것인가? 매 시즌 신상품이 쏟아지고 유행이 바뀌는 상황에서 대부분 유통업체가 일단 '최대한 할인해서 팔아버리자'는 선택을 하는 거랍니다. 이럴 경우 '박싱데이'나 '블랙 프라이데이' 같은 대형 할인 행사가 가능한 것이지요.

◇직매입과 위탁 판매

우리나라식 '위탁 판매' 방식은 백화점이 보통 제조업체에 일정한 수수료를 받고 장소만 빌려준 뒤 물건을 알아서 팔도록 해요. 매장 직원 급여나 인테리어 비용, 매장 관리비 등을 제조업자가 전부 부담하는 경우도 많지요. 이럴 경우 백화점은 물건이 잘 팔려도 대단한 이득을 보는 건 아니지만, 물건이 안 팔려도 손해를 거의 보지 않기 때문에 안정적으로 매장을 운영할 수 있어요. 재고 관리를 어떻게 해야 할까에 대한 부담도 거의 없지요. 그래서 우리나라 백화점들은 '박싱데이' 같은 대규모 연말 할인 행사를 할 필요가 없는 거랍니다.

하지만 이제 우리나라에서도 대대적인 할인 시즌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어요. 인터넷을 통해 해외 쇼핑몰 사이트에서 직접 물건을 사 오는 직접 구매, 이른바 '직구'가 널리 퍼지고 있기 때문이지요. 우리나라에서도 미국 백화점이나 각종 쇼핑몰 사이트를 통해 전자제품이나 의류 등을 국내보다 훨씬 저렴한 가격에 구입할 수 있기 때문에 '박싱데이' 같은 날 직구족들의 해외 상품 구입이 집중되고 있는 거예요.

우리나라 정부도 2015년부터 '한국판 박싱데이(블랙 프라이데이)'인 '코리아 세일 페스타'를 개최하고 있지만, 아직까진 행사에 참여하는 백화점이나 마트 수가 많지 않고 할인 폭도 미국·영국처럼 크지 않은 상황이에요. '위탁 판매' 방식이 대다수인 유통·거래 구조 때문에 유통업체와 제조업체 모두 세일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지요. 얼어붙은 경제도 녹여준다는 대형 소비 행사인 '박싱데이'는 우리나라에서 과연 성공할 수 있을까요?


[중국의 광군제(光棍節) ]

매년 11월 11일 대규모 할인 행사를 가리키는 말로, 중국판 블랙 프라이데이 또는 중국판 박싱데이라고 불려요. 1990년대 중국 난징 지역 대학생들이 독신을 상징하는 '1'자가 4개 겹치는 이날을 '광군제(光棍節·독신자의 날)'라고 이름 붙인 데서 유래했어요.

2009년 중국 인터넷 상거래 사이트 알리바바가 독신자를 위한 할인 행사를 시작하면서 중국 최대 쇼핑 이벤트로 발전했답니다. 올해 광군제 하루에만 1682억위안(약 28조3078억원)이 거래된 것으로 나타났어요.


심묘탁 ㈔청소년교육전략21 사무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