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이 주의 책] 엄혹한 겨울에 꽃피운 윤동주·일주 형제의 동심

입력 : 2017.12.15 03:05

'민들레 피리'

"꽃은 따 가슴에 꽂고/꽃씨는 입김으로 불어 봅니다/가벼이 가벼이/하늘로 사라지는 꽃씨/―언니도 말없이 갔었지요."

시인 윤일주(1927~1985)가 쓴 동시 '민들레 피리' 중 한 대목입니다. 윤일주 시인은 처음 듣는 이름이라고요? '별 헤는 밤' '서시'로 유명한 시인 윤동주(1917~1945)의 열 살 아래 남동생이랍니다. 건축을 전공하고 건축공학과 교수를 지냈지만 형처럼 시를 즐겨 썼지요.

위 대목에서 말하는 '언니'는 윤동주 시인을 뜻할 가능성이 커요. 언니라는 표현은 예전에는 동성(同性) 손위 형제를 부르는 말로 쓰였으니까요. 요즘 쓰는 '형'과 당시 쓰는 '언니'는 같은 뜻이었다는 거죠. 일제 강점기 일본 감옥에서 숨을 거둔 형이 말없이 떠났다고, 그 그리움과 애틋한 우애를 담았다는 추측이 가능하네요.

ⓒ 조안빈·창비
ⓒ 조안빈·창비

이 시에서 제목을 따온 책 '민들레 피리'(창비)는 윤동주 시인과 그의 동생 윤일주가 썼던 동시를 엮었어요.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시인으로 보통 윤동주를, 가장 좋아하는 시로 그의 작품 '서시'를 꼽지요.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이라고 시작하는 바로 그 작품이에요. 윤동주 시인은 1917년 12월 30일 태어났어요. 보름 뒤면 그가 태어난 지 딱 100년이 된답니다. 그런데 동생 윤일주 역시 시인이었음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아요. 윤동주 탄생 100주년을 맞아 형제의 동시를 모은 책이 나온 까닭이지요.

윤동주가 쓴 동시 34편과, 윤일주가 쓴 동시 31편을 담았답니다. 윤동주는 우리말을 함부로 쓸 수 없던 엄혹한 시절을 살며 목숨이 다할 때까지 끊임없이 좋은 시를 쓰기 위해,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기 위해 애썼어요. 동생 윤일주는 그런 형 윤동주를 따르고 기리려 노력했던 것이지요.

한파가 몰아닥친 추운 겨울을 노래한 윤동주의 동시도 있어요. "처마 밑에/시래기 다람이/바삭바삭/추워요"('겨울' 중) 말려서 나물로 무쳐 먹는 시래기를 묘사한 대목인데, 이미 말라서 물기가 거의 없는 시래기가 바삭할 정도로 얼어붙었다니 얼마나 추운 날씨였을까요. 사소한 일상 속 사물에 대한 시인의 예리한 관찰력이 돋보이는 대목이지요.

윤일주도 '함박눈'에서 겨울을 노래해요. "아기가 깰까 봐/함박눈도 가만가만/소리없이 내리네" 추운 겨울 마음 한편을 따뜻하게 해줄 동시예요.

'윤동주 평전'에는 이런 내용이 있어요. "어른은 행복할 때에만 동시를 쓸 수 있다. 행복할 때에만 어린아이의 마음으로 돌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어른이 되어 동시를 쓰는 것은 일반 시를 쓰기보다 어렵다는 말이지요. 힘들게 살면서도 행복했던 윤동주·윤일주 형제의 동시들이랍니다.

양지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