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숨어있는 세계사] 디즈니 '포카혼타스', 英에 동화된 최초 원주민이었어요
[영국의 신대륙 개척]
英, 1607년 신대륙에 정착지 건설
굶주림·질병에 고통받던 이주민들, 포카혼타스 등 원주민 도움 받았죠
오늘날 미국인들은 포카혼타스를 원주민·이주민 잇는 가교라 생각
얼마 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제2차 세계대전에서 활약했던 미국 원주민 출신 참전 용사들을 백악관으로 초청했어요. 그런데 트럼프 대통령이 이 자리에서 원주민 혼혈 출신인 한 야당 상원의원을 '포카혼타스'라고 불러 논란이 일었어요. 해당 의원은 '인종차별'이라며 반발했고, 원주민 용사들도 이 발언이 부적절했다고 지적했답니다.
'포카혼타스'는 1995년 월트 디즈니가 제작한 만화영화 주인공이자 17세기 초반 실제 있었던 원주민 여성이에요. 오늘은 포카혼타스가 살았던 당시 아메리카 대륙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 알아봐요.
◇신대륙 발견과 식민지 개척
1492년 10월, 스페인 왕실의 지원을 받은 이탈리아 탐험가 크리스토퍼 콜럼버스가 신대륙을 발견했어요. 카리브해의 한 섬에 도착한 콜럼버스는 그곳이 인도라고 생각했지요. 5년 후 신대륙에 도착한 또 다른 탐험가 아메리고 베스푸치가 그곳이 인도가 아니라 '신세계'임을 밝혀내면서, 그의 이름을 따 '아메리카'가 됐다고 해요. 이후 스페인을 비롯한 유럽 각국은 가톨릭을 전파하거나 금은보화를 얻겠다는 꿈을 품고 새로운 땅에 몰려들었죠.
영국도 신대륙에 탐험대를 파견했어요. 하지만 새로운 정착지를 건설하는 일은 쉽지 않았지요. 1578년 엘리자베스 1세 여왕의 지원을 받은 탐험가 험프리 길버트가 첫 항해에 나섰지만 배가 폭풍우에 휩쓸려 모두 실종되고 말아요. 1585년 길버트의 친척인 월터 랠리가 지금의 미국 동부 해안에 도착했어요. 그는 도착한 땅을 엘리자베스 여왕의 별명(처녀 여왕)을 따서 '버지니아'라고 이름 붙였지요.
스페인이 군대와 관료를 보내 남아메리카에 거대한 식민지를 개척한 반면, 영국은 특정 회사나 개인에게 식민지를 개척할 수 있는 특허장을 주는 방식으로 식민지를 건설했어요. 특허장을 받은 회사·개인은 식민지에서 얻은 이익 중 일부를 왕에게 바치고 나머지는 자신이 가졌지요.
- ▲ 영국에서 건너온 이주민들이 미국 버지니아에 도착해 ‘제임스타운’을 건설하는 모습을 그린 19세기 삽화. 이들은 질병과 굶주림, 원주민 공격에 시달려야 했어요. /게티이미지코리아
1607년, 제임스 1세 왕의 특허장을 받은 '런던 회사'가 모험심 가득한 남성 104명을 배 세 척에 나눠 태우고 버지니아에 도착했어요. 직업이 다양한 이들은 열심히 마을을 만들고 왕 이름을 따 '제임스타운'이라 불렀지요. 처음에 이주민들은 보물을 발견해서 영국에 돌아갈 생각이었다고 해요. 하지만 굶주림과 전염병, 원주민의 공격에 시달리면서 정착 첫해 겨울에만 절반 이상이 죽었지요.
살아남을 방법은 원주민에게 생존 방식을 배우는 것뿐이었어요. 이주민들의 선장이었던 존 스미스는 주변 원주민과 물물교환을 통해 식량을 얻어 나갔어요. 콩과 호박, 옥수수, 고구마 같은 농작물을 재배하는 방법도 배웠지요. 원주민은 이주민에게 샛강을 따라 물고기를 잡을 수 있는 카누(길쭉한 나무배) 제작법도 가르쳐줬어요. 이주민은 서서히 새 환경에 적응해 나가기 시작했답니다.
◇영국인에게 동화된 포카혼타스
- ▲ 1616년 영국식 복장을 한 포카혼타스의 초상화.
포카혼타스는 제임스타운 인근 지역 추장 포우하탄의 딸이었어요. 명랑한 포카혼타스는 이주민들에게 도움을 많이 주었는데, 포우하탄 지역에 침범해 식량을 빼앗아 가려다 붙잡힌 존 스미스를 살려주는 등 호의를 베풀었지요. 하지만 포우하탄과 이주민들 간 전투가 벌어지자, 이주민들은 자기들 마을을 보호하려고 포카혼타스를 납치해 인질로 삼았어요.
1년 넘게 제임스타운에 갇힌 포카혼타스는 돌아가기 어렵다는 현실을 받아들이고 서서히 이주민 생활 방식에 동화됐어요. 영어를 배웠고 기독교로 개종했으며 이름도 영어식인 레베카로 바꿨죠. 그리고 담배 농장으로 큰돈을 벌어들이던 이주민 존 롤프와 결혼해 아들을 낳았어요. 한동안 이주민과 포우하탄 사이에 평화 분위기가 조성됐지요.
1616년, 포카혼타스는 남편과 함께 영국으로 건너갔어요. 런던 회사는 이주민들이 제임스타운에 성공적으로 정착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포카혼타스를 홍보 수단으로 활용했지요. 포카혼타스는 제임스 1세도 만나고 사교 모임에도 참여하며 크게 환대 받았어요.
하지만 이듬해 버지니아로 돌아갈 준비를 하던 포카혼타스는 병에 걸려 22세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났답니다. 결핵, 천연두 등에 걸려 사망한 것으로 추정되는데, 이런 질병에 대한 면역력이 전혀 없던 원주민 소녀에겐 치명적이었던 것이에요.
17세기 들어 신대륙에는 경제적 부와 종교의 자유를 찾아 영국을 떠나온 이주민이 급격히 늘었어요. 1620년 11월, 종교의 자유를 찾아 영국을 떠난 청교도(영국 국교회에 저항한 기독교의 한 교파) 신자들이 메이플라워호를 타고 현재 매사추세츠 지역에 도착했어요. 이들은 배에서 내리기 전 새로운 땅에서 지켜야 할 몇 가지 서약을 했는데, 이를 '메이플라워 서약'이라고 불러요.
영국에서 쏟아져 들어온 이주민들은 매사추세츠, 뉴욕, 펜실베이니아, 메릴랜드 등 동부 해안가에 식민지 13곳을 건설했지요. 이 열세 개 식민지가 훗날 영국과 독립 전쟁(1775년)을 벌이는 정치 세력이 돼요.
이주민들은 시간이 갈수록 땅을 더 많이 차지하기 위해 무력을 써서 원주민을 학살하고 내쫓았어요. 이 과정에서 수많은 원주민이 죽었고, 살아남은 원주민 후손은 현재 미국 중·서부 인디언 보호 구역에서 겨우 명맥을 유지하고 있지요.
오늘날 미국은 포카혼타스를 이주민과 원주민 간 가교(架橋·다리) 역할을 한 친근한 소녀로 생각하고 있어요. 처절하게 저항하다 죽거나 노예가 된 다른 원주민과 달리 스스로 영국인의 생활 방식에 동화된 '길들여진 원주민 1호'이기 때문일 거예요.
☞추수감사절의 유래
초기 청교도는 원주민과 대체로 평화롭게 지냈어요. 농사짓는 법과 물고기 잡는 법, 칠면조 기르는 법을 배웠지요. 정착 후 첫 수확에 성공한 이들은 칠면조를 잡고 옥수수와 호박 등으로 음식을 만들어 먹으며 감사 기도를 올렸어요. 이것이 매년 11월 넷째 주 목요일로 잡은 '추수 감사절'의 기원이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