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클래식 따라잡기] 지휘·작곡·연주·방송까지… 20세기 음악계를 이끈 거장

입력 : 2017.12.09 03:06

[레너드 번스타인]

내년 번스타인 탄생 100주년 맞아
1943년 뉴욕필 지휘로 세계적 명성, 뮤지컬 '웨스트 사이드…'도 작곡해
유럽의 카라얀과 라이벌이었어요

음악가 중에는 여러 가지 재능을 지니고 태어난 사람이 참 많아요. 평생을 한 가지 일에만 몰두했던 외골수도 있지만, 하늘이 내려준 여러 가지 재주를 다방면으로 활용해 큰 업적을 남긴 사람도 많답니다.

이번에 소개할 음악가는 한 사람의 능력이라고 믿기 어려울 정도로 많은 일을 여러 분야에서 해냈던 거장(巨匠)입니다. 내년에 탄생 100주년을 맞는 미국 출신 '전(全)방위 음악가'레너드 번스타인(Bernstein·1918~1990)이 바로 그 주인공이에요.

번스타인은 오케스트라 연주를 좋아하는 클래식 애호가들에게는 20세기 최고 지휘자 중 하나로 알려져 있어요. 특히 지휘대에서 춤추듯 펄쩍 뛰어오르는 특유한 동작 때문에 팬이 많이 생겼죠. 그런가 하면 번스타인은 뛰어난 작곡가이자 선생님이었고, TV 방송에서 클래식 음악을 해설하는 인기 방송인이기도 했어요. 피아니스트로서 실력도 뛰어나 피아노 협주곡을 연주하는 무대를 갖기도 했답니다.

레너드 번스타인이 뉴욕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를 지휘하고 있는 모습. 번스타인은 다재다능한 실력을 갖춘 작곡가이자 지휘자, 피아니스트, 선생님이었답니다.
레너드 번스타인이 뉴욕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를 지휘하고 있는 모습. 번스타인은 다재다능한 실력을 갖춘 작곡가이자 지휘자, 피아니스트, 선생님이었답니다. /미 국회도서관

번스타인은 1918년 미국 매사추세츠주 로런스에서 태어났어요. 그의 부모는 러시아에서 미국으로 이주한 유대인이죠. 어린 시절부터 피아노 연주를 좋아했던 번스타인은 하버드대에서 작곡을 전공했는데, 현대음악의 대가였던 지휘자 디미트리 미트로폴로스를 만나 가르침을 많이 받았답니다. 훗날 번스타인이 구스타프 말러 교향곡을 즐겨 공연하며 '말러의 부활'을 이끈 것도 미트로폴로스 영향이죠.

번스타인의 데뷔는 마치 영화처럼 이루어졌어요. 1943년 25세 때 뉴욕 필하모닉의 부(副)지휘자였던 그는 그해 11월 14일 상임 지휘자인 브루노 발터가 독감으로 앓아눕자 그를 대신해 리허설도 없이 갑자기 지휘대에 올랐어요. 이 연주회는 방송을 타고 전국에 알려지면서 성공을 거뒀고, 청년 번스타인은 스타로 급부상했답니다. 1957년 뉴욕 필하모닉 상임 지휘자가 됐고, 이듬해 음악 감독으로 취임했죠. 그가 지휘하는 연주회는 어디에서든 매진을 기록했어요.

번스타인은 인기 뮤지컬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West Side Story)' 음악도 작곡했어요. 셰익스피어의 비극 '로미오와 줄리엣' 이야기를 토대로 클래식과 재즈, 라틴 음악 등을 적절하게 결합해 1957년 만든 이 뮤지컬 음악은 발표되자마자 뜨거운 반응을 얻었답니다. 이를 계기로 번스타인은 미국을 상징하는 대표 음악가가 돼요. 이 밖에 번스타인은 교향곡과 오페라, 발레, 합창곡 등 수많은 작품을 작곡했지요.

번스타인은 말솜씨도 좋았는데요. 1958년부터 1972년까지 뉴욕 필하모닉과 함께'청소년 음악회'라는 TV 프로그램을 진행하면서 큰 반향을 일으켰어요.

마흔 살 지휘자 번스타인은 청중과 시청자를 향해 "음악은 무엇을 의미하나요" "소나타란 무엇일까요" "음악에서 유머란 무엇일까요" 같은 본질적 질문을 쏟아냈답니다. 그러면서 관객에게 퀴즈를 내거나 노래를 유도하기도 했고, 해설 도중 피아노를 연주하고 노래하기도 했지요. 이 음악회는 세계 40여 나라에도 방송되며 클래식을 대중에게 전파하는 데 톡톡한 역할을 했어요.

누구에게나 친절하고 사교적이었던 번스타인은 어린 학생들을 지도하는 일에도 열정을 보였어요. 세계 각지에서 지휘를 배우고자 하는 학생들을 마스터 클래스(master class·유명 음악가가 재능이 뛰어난 학생들을 가르치는 수업)를 통해 직접 가르쳤고, 1985년에는 세계 청소년 오케스트라를 만들어 영국·일본·헝가리 등에서 순회공연을 펼치기도 했어요.

번스타인은 클래식부터 대중음악까지 다양한 장르를 자신만의 독특한 개성으로 해석해낸 음악가로 기억돼요. 뉴욕 필하모닉을 떠난 1970년대부터 번스타인은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를 비롯해 유럽의 여러 오케스트라를 지휘하며 더욱 명성을 높였어요. 미국보다는 유럽을 우위에 놓는 클래식 음악계 풍토에서 그는 보수적이고 까다로웠던 유럽 오케스트라를 실력으로 평정한 첫 미국인이기도 했지요.

번스타인의 베를린 장벽 붕괴 기념 앨범 ‘자유를 위한 송가’.
번스타인의 베를린 장벽 붕괴 기념 앨범 ‘자유를 위한 송가’.
이 다재다능한 음악가에게 운명의 라이벌이 있었다면 오스트리아 출신 지휘자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Karajan·1908~1989)을 꼽아요. 번스타인이 유머 감각 있는 미국적 음악가였다면 카라얀은 유럽을 대표하는 묵직한 지휘자였어요. 카라얀은 베토벤·브람스·브루크너로 이어지는 독일 교향악에 정통했고, 열정적이고 권위적인 스타일로 유명했지요. 그래서 음악계는 "카라얀이 음악을 만드는 장인(匠人)이라면 번스타인은 그 자신이 음악이었다"고 할 만큼 두 사람의 스타일은 대조적이었답니다. 번스타인은 카라얀과 어떻게 다르냐는 질문에 "내가 10년 더 젊고, 키는 5㎝ 더 크다"며 재치 있게 넘기기도 했지요.

1987년 7월 미국의 한 페스티벌에서 학생 오케스트라와 한창 리허설을 하던 69세의 번스타인은 이렇게 농담 어린 한탄을 하기도 했어요. "작곡가들은 나를 진정한 작곡가로 여기지 않고, 지휘자들은 진짜 지휘자로 생각하질 않아. 게다가 피아니스트들은 나를 피아니스트로 인정하질 않는다고!" 만능 음악가로서의 고충도 그만큼 컸을거에요.

1989년 12월, 번스타인은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것을 기념해 독일 베를린에서 베토벤의 교향곡 '합창'을 지휘했어요. 유럽 각지의 오케스트라 단원들이 한데 모여 연주한 기념비적 공연이었지요. 그는 1990년 8월 미국 보스턴에서 연 베토벤의 교향곡 7번 공연을 마지막으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72세라는 조금 아쉬운 나이였지요.

번스타인의 이력은 단 한 가지 목표를 향하고 있었답니다. 더 많은 사람에게 음악이 얼마나 아름다우며 음악을 누리는 삶이란 얼마나 행복한지 알려주려는 것이었어요.



김주영·피아니스트 기획·구성=박세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