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재미있는 과학] 고층 건물, 대나무 마디 본뜬 구조물로 강한 지진 견디죠

입력 : 2017.11.29 03:07

[지진에 견디는 건물]

지층이 갈라지거나 흔들리는 '지진' 피해 줄이려면 내진 설계 중요해요
땅·건물 접촉 면적 줄여 충격 완화… 거대한 추 설치해 건물 중심 잡기도

얼마 전 경북 포항에서 지진이 나 많은 주민이 대피했어요. 어느 대학 건물은 외벽이 무너져 내렸고, 한 고층 아파트는 1~9층까지 창틀을 따라 벽에 금이 갔지요. 필로티(벽 대신 기둥으로 건물을 받치는 방식) 구조로 지은 어떤 건물은 1층 기둥 일부가 부서져 위태롭게 보이기도 했답니다.

이번 지진으로 지진에 잘 견딜 수 있는 건물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지만 여전히 우리나라 건물 중 상당수가 지진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는 상태라고 해요. 국내에 내진(耐震) 설계가 된 건물이 다섯 중 하나에 불과하다는 조사 결과도 있어요. 오늘은 지진과 건물에 대해 알아보도록 해요.

◇지진 크기를 재는 '규모 vs 진도'

일반적으로 지진이란 지구 내부 에너지가 분출하면서 땅(지층)이 갈라지거나 흔들리는 현상을 말해요. 예를 들어 땅을 양쪽에서 강하게 밀거나 잡아당긴다고 생각해보세요. 땅이 얇아지거나 두꺼워지면서 어느 정도는 견딜 수 있겠지만, 일정 수준을 넘어서면 아예 지층이 끊어지거나 어긋나게 될 거예요.

지진에 견디는 건물 설계 방식
/그래픽=안병현
이번 포항 지진은 규모 5.4로, 기상청이 지진 관측을 시작한 이래 우리나라에서 역대 둘째로 큰 규모였어요. 가장 큰 지진은 지난해 9월 발생한 경주 지진(규모 5.8)이었지요. 그런데 수치(규모)로 보면 포항 지진이 경주 때보다 작았지만, 몸으로 느끼기엔 포항 지진이 더 강했다는 분석도 있었어요. 지진을 느끼는 체감 수준과 객관적 지표가 다를 수 있기 때문이랍니다.

지진이 얼마나 강한지 측정하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가 있어요. 절대적 개념인 '규모(리히터)'와 상대적 개념인 '진도'이지요. 우리가 흔히 쓰는 '규모'는 1935년 미국의 지질학자 찰스 리히터가 지진 세기를 절대적 숫자로 나타내고자 만든 개념이에요. 지진이 일어날 때 분출하는 에너지 양을 나타낸 것으로, 규모가 1씩 올라갈 때 땅이 쏟아내는 에너지는 약 32배 증가하지요.

예컨대 규모 6 지진은 규모 5보다 에너지가 약 32배 이상 크고, 규모 4보다 약 1000배 크다는 얘기이지요. 진원(震源·지진이 처음 시작된 지구 내부 지점)이 얼마나 깊은지, 지진 관측소와 진앙(震央·진원 바로 위 지표면) 간 거리는 얼마인지 같은 다양한 요소를 반영해서 계산한답니다.

반면 '진도'는 지진이 발생했을 때 물건의 흔들림, 건물의 파괴 정도 같은 것을 나타내는 개념이기 때문에 지역별로 달라요. 진도 1~2는 대다수 사람이 느낄 수 없고, 진도 3~4는 물건이 떨어지거나 그릇에 담긴 물이 떨리는 정도, 진도 5는 건물이 일부 무너지는 정도 등이지요. 예를 들어 이번 포항 지진은 진앙에서 느끼기엔 진도 6, 그보다 멀리 떨어진 지역에선 진도 3~5, 서울에선 진도 2 정도로 분석됐답니다.

포항 지진은 '규모'로 보면 경주 지진보다 작았지만, 사람이 실제 느낀 흔들림이나 피해 규모인 '진도'는 비슷하거나 더 컸던 거예요. 이는 포항 지진의 진앙이 지하 3~7㎞로 경주 지진(15㎞) 때보다 얕았기 때문이랍니다. 지진 충격이 그대로 땅에 전달된 것이지요.

◇대나무 마디를 모방한 내진 설계

현대 과학기술로는 지진이 언제 일어날지 정확하게 예측하기가 아직 불가능하다고 해요. 그렇기 때문에 지진 피해를 줄이려면 아무리 큰 지진이 와도 잘 버티는 건물, 또는 무너지더라도 안전하게 무너지는 건물을 지어야 해요. 지진에 견디는 건물 설계 방법은 크게 내진과 면진(免震), 제진(制震)으로 구분할 수 있답니다.

'내진 설계'란 건물 자체를 아주 튼튼하게 짓는 것이에요. 예를 들어 아파트 같은 고층 건물을 지을 때는 벽면에 두꺼운 철근을 넣고, 필로티 빌딩은 건물 중앙 엘리베이터나 계단실 주변 벽체를 두껍고 단단하게 만들지요.

하지만 건물이 무조건 단단하다고 좋은 것은 아니에요. 강한 충격에 버틸 순 있지만, 금이 가거나 손상되면 사용할 수 없기 때문이지요. 철근을 사용한 많은 고층 건물이 외부 충격을 받으면 약간 옆으로 흔들린답니다. 건물에 유연성을 줘서 지진은 물론 강한 바람에도 견디도록 만드는 거예요.

국내 최고층(123층) 건물인 서울 잠실 롯데월드타워도 단단하고 유연하게 지었어요. 가운데 뼈대가 되는 철골 기둥은 두껍게 세웠고, 마치 대나무 마디처럼 40층마다 중심 기둥과 외벽을 대각선으로 연결하는 구조물을 설치했지요. 이 구조물은 건물이 양옆으로 지나치게 흔들리는 것을 줄여줘요. 진도 9(보통 규모 7.0) 이상 강한 지진과 초속 80m 이상의 태풍도 이겨낼 수 있다고 해요.

'면진(지진 진동이 퍼지는 걸 막는 것) 설계'란 땅과 건물 사이에 스프링이나 고무 패드 등을 설치해 땅과 건물이 직접 닿는 면적을 줄여서 지진이 발생했을 때 건물이 받는 충격을 줄이는 방식이에요.

대표적인 예가 1923년 일본 관동대지진(규모 8) 당시 홀로 멀쩡했던 제국호텔 건물인데요. 이 건물은 무른 진흙땅 위에 지어 많은 사람이 반대했지만, 건축가인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가 "땅이 무르면 진동을 흡수해 더 안전할 것"이라며 설계를 강행했답니다. 진흙 속에 기초를 촘촘히 배열하고 '물 위에 띄우듯' 지어 지진을 견뎌낸 거지요.

'제진(지진 진동을 제어하는 것) 설계'는 건물 내부에 거대한 추 같은 특수 장치로 지진 충격을 완화해 건물 전체 움직임을 줄여주는 방식이에요.

대만 최고층 건물인 타이베이 101빌딩이 대표적인데, 건물 꼭대기에 지름 5.5m, 무게 660t짜리 거대한 추가 있어서 지진이나 태풍이 발생했을 때 중심축 역할을 한답니다. 건물이 오른쪽으로 기울면 추가 왼쪽으로 움직여 중심을 잡는 것이지요.

많은 건물이 지진에 대비하기 위해 세 가지 설계 방식을 복합적으로 사용해요. 하지만 면진·제진 설계는 건물을 처음 지을 때 반영해야 피해를 줄일 수 있지요. 옛날 건물이라서 내진 설계가 제대로 돼 있지 않을 경우엔 벽을 두껍게 해주거나 철판 벽체를 덧대 내진 기능을 강하게 해야 한답니다.


서금영 과학 칼럼니스트 기획·구성=박세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