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숨어 있는 세계사] 잇따른 전쟁·식량난으로… 첫 사회주의 국가 탄생했죠

입력 : 2017.11.23 03:07

[러시아 혁명 100주년]

20세기 초 황제가 다스리던 러시아, 농민·군인 혁명으로 임시정부 수립
레닌, 전쟁·가난 지속되자 봉기 주도… 소련 세웠지만 74년 만에 붕괴했죠

"레닌은 살아있다! 자본주의는 사라져라!"

지난 7일(현지시각),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레닌 광장에 모인 시위대가 외친 구호입니다. 세계 최초의 사회주의 국가 '소련'을 탄생시킨 '러시아 혁명'이 올해로 100주년을 맞아 집회가 열린 것이지요. 하지만 광장엔 200여명만 모였을 뿐이고 정부도 따로 공식 행사를 열지 않았을 정도로 분위기는 썰렁했다고 해요.

1917년 11월 7일 발생한 '러시아 혁명'은 '10월 혁명' 또는 '볼셰비키 혁명'으로 불린답니다. 당시 사용했던 러시아 달력(율리우스력)으로 10월 25일 발발해 '10월 혁명'이라고 부르고, 러시아 급진 공산당의 별칭이었던 '볼셰비키' 이름을 따서 '볼셰비키 혁명'이라고 말하지요. '러시아 혁명'은 1991년 소련이 무너지면서 사실상 실패로 끝났어요. 100년 전, 러시아에서 벌어졌던 혁명은 과연 어떤 사건이었을까요?

◇"빵을 달라!" "전쟁을 멈춰라!"

20세기 초 제정(帝政·황제가 다스리는 제도) 러시아는 나라 안팎으로 큰 위기에 빠져있었어요. 주변 나라들과 잇따른 전쟁으로 나라 살림은 궁핍해져가고 있었는데, 황제(차르)와 봉건 귀족들은 이를 극복할 의지가 없었지요. 영국·프랑스 등 유럽 국가들이 계몽주의와 산업혁명으로 눈부신 발전을 이루고 있을 때, 러시아는 여전히 황제와 봉건 영주가 절대 권력을 누리며 농민들을 노예처럼 부리고 있었어요.

이런 와중에 1914년 발발한 제1차 세계대전에 러시아가 참전을 결정합니다. 황제는 농사짓고 물건 만들던 젊은 사람들을 계속 전쟁터로 끌고 갔지요. 계속된 전쟁과 가난으로 농업과 공업 모두 황폐화되면서 대중의 삶은 점점 한계에 다다르고 있었어요.

1917년 3월 8일(러시아 달력 기준 2월 23일), 당시 수도였던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식량을 배급받기 위해 길게 줄 서 있던 농민들이 '더 이상 식량이 없다'는 말을 듣고 화가 나 시위를 벌입니다. 영하 20도 가까운 강추위에 그들이 외쳤던 건 "빵을 달라!" "전쟁을 중단하라!"는 것이었지요.

황제 니콜라이 2세가 시위를 진압하려 했지만, 잇따른 전쟁에 지친 군부는 황제의 명령을 거역하고 오히려 농민 시위대에 합세했어요. 농민과 노동자, 군인들은 자신들이 선출한 대표들로 구성한 '소비에트(대표자 회의)'를 결성합니다. 위협을 느낀 황제는 결국 자리에서 물러났고 러시아 로마노프 왕조는 막을 내렸지요. 이를 '2월 혁명'이라고 해요.

황제가 퇴위하자 공화국 임시정부가 구성됐는데요. 대중의 바람과 달리 임시정부는 '전쟁 계속'을 선언했답니다. 임시정부의 지지 세력 중 상당수가 부르주아(자본가)였는데, 이들이 전쟁을 계속 원했기 때문이었지요. 그러던 중 유럽에서 망명 생활을 해오던 블라디미르 레닌(1870~1924)이 10여년 만에 고국 러시아로 귀국합니다. 앞서 레닌은 황제에 반대하는 혁명 운동을 벌이다 발각돼 외국을 떠돌며 사회주의 활동을 하고 있었지요.

1917년 10월 소비에트 국회에서 연설하고 있는 레닌의 모습을 그린 그림. 러시아 혁명으로 건설된 세계 최초의 사회주의 국가 소련은 1991년 붕괴했답니다.
1917년 10월 소비에트 국회에서 연설하고 있는 레닌의 모습을 그린 그림. 러시아 혁명으로 건설된 세계 최초의 사회주의 국가 소련은 1991년 붕괴했답니다. /게티이미지코리아

레닌은 곧바로 '4월 테제(April Theses)'를 발표했는데요. 여기엔 소비에트 공화국 수립, 토지 몰수와 국유화, 소비에트의 생산·분배 통제 등 사회주의 강령을 담고 있었어요. 여기서 레닌은 "조국에게 패배를"이라는 충격적인 반전(反戰) 구호를 외쳤답니다. 1차 세계대전은 자본주의 국가들이 식민지 경쟁에 뛰어들면서 터진 것인데, 이 때문에 러시아 노동자와 농민들이 피를 흘리고 있으니 차라리 조국이 빨리 패배해 전쟁을 끝내야 한다는 주장이었지요.

◇민주주의 무시하고 독재로 나가다

레닌을 필두로 하는 볼셰비키는 '무능한 임시정부에 봉기를 하자'고 결의합니다. 무기를 든 볼셰비키는 대중의 지지에 힘입어 1917년 11월 7일(러시아 달력 기준 10월 25일) 거의 무혈(無血)로 군사 작전을 완료합니다. 중앙은행·전화국·우체국·중앙역·발전소·재무성을 차례로 접수했어요. 임시정부가 있던 황궁으로 쳐들어갔는데 이미 각료들은 도망간 뒤였지요. 이렇게 세계 최초의 사회주의 국가인 '소비에트 공화국(소련)'이 세워집니다. '10월 혁명'이 성공한 것이지요.

레닌의 볼셰비키는 전쟁 중단, 토지 무상몰수, 8시간 노동법, 신분제 차별 폐지 등 여러 가지 개혁 조치를 내놓았어요. 하지만 정작 의회를 구성하는 선거에서 온건파인 사회혁명당이 압도적 다수를 차지하면서 강경파인 볼셰비키는 어려움에 처했지요. 민주주의 원칙을 지키고 소수 급진세력에 머물 것인지, 의회를 무시하고 독재 정권으로 나아갈 것인지 선택의 기로에 놓입니다. 결국 다음해 1월, 볼셰비키는 사실상 의회를 강제 해산하고 독재 정권의 길을 걷습니다.

권력을 잡은 레닌은 전쟁에서 발을 빼기 위해 독일과 단독으로 강화 조약(전쟁 종료·평화 회복을 선언하는 조약)을 맺었어요. 하지만 상당한 배상금과 영토를 주고 맺은 조약이었기에 전쟁 중단을 반대하던 정치 세력들로부터 큰 불만을 사게 됐지요. 러시아의 전쟁 참여를 계속 원했던 영국·프랑스 등과의 사이도 나빠졌어요.

이렇듯 새로 출발한 소비에트 공화국은 사회·경제적으로 매우 낙후한데다 국제적으로 고립된 최악의 상황 속에서 출발합니다. 레닌은 이런 문제들을 생전에 해결하지 못하고 1924년 세상을 떠났고, 이후 소련은 스탈린 독재 체제로 이어졌지요.

20세기 역사는 자본주의와 한 축을 이뤘던 사회주의를 빼놓고는 논하기 어려워요. 노동자 계급 정당이 정권을 잡고 나라를 세운 최초의 사건이었다는 점, 혁명을 통해 노동자·농민·여성들의 지위가 그전보다 올라갔다는 점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랍니다.

하지만 대중의 자발적인 뜻과 민주주의 절차를 무시하고 소수 급진파 엘리트들이 독재를 했다는 점, 대중의 궁핍한 상황을 정치에 이용하고 적절한 대안을 만들어내지는 못했다는 점 등은 치명적인 한계로 지적되고 있어요.

☞마지막 황제의 최후

‘2월 혁명’으로 퇴위한 황제 니콜라이 2세는 가족과 함께 수도 근교 왕궁에 유폐·감금됐어요. 하지만 임시정부는 위험하다는 이유로 황제 일가를 시베리아로 이주시키기로 하지요.

‘10월 혁명’이 성공하고 볼셰비키가 권력을 잡았어요. 우랄 지방에 머물고 있던 황제 일가는 1918년 7월 볼셰비키 당원들에 의해 살해됩니다. 황제 일가가 처형됐던 집터엔 현재 ‘피의 사원’이 세워져 비극적 역사를 기억하고 있지요. 한때 니콜라이 2세 막내딸 아나스타샤가 생존해 있다는 소문이 돌기도 했지만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졌어요.

이정하·천안 계광중 역사 교사 기획·구성=박세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