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클래식 따라잡기] 첼로의 풍성한 저음, 피아노 선율 만나 특별해졌죠

입력 : 2017.11.18 03:08

인간의 목소리와 가장 가까운 '첼로'… 18세기까지 보조 악기로만 여겨져
베토벤, 피아노와 협주곡 최초 작곡… 브람스는 저음 살린 소나타 만들었죠

찬 바람이 매섭게 부는 계절이 찾아왔어요. 올해는 겨울이 부쩍 빨리 시작하는 느낌이 들기도 하네요. 이럴 땐 따뜻한 느낌이 드는 음악을 듣는 것이 좋을 것 같아요.

여러 가지 악기 중에서 첼로는 언제 들어도 훈훈하고 아늑한 기분이 느껴진답니다. 몸통이 크고 현이 길고 두꺼워 저음(低音)을 잘 내는 현악기이지만, 작품에 따라 아주 높이 올라가는 음도 연주할 수 있어 음역(악기나 목소리로 낼 수 있는 음의 범위)이 굉장히 넓은 악기로도 유명하답니다.

흔히 첼로를 가리켜 '인간의 목소리와 가장 가까운 악기'라는 표현을 자주 해요. 성인 남성의 목소리와 음역대가 비슷하기 때문인데요. 사실 첼로가 우리에게 친숙한 악기가 되기까지는 꽤 많은 시행착오와 시간이 필요했답니다. 위대한 작곡가들이 쓴 첼로 소나타들을 통해 첼로가 우리와 가까워진 이야기를 살펴보도록 할게요.

독일의 위대한 음악가 루트비히 판 베토벤(1770~1827)은 첼로를 피아노와 함께 연주하는 소나타(기악곡)를 생각해낸 최초의 작곡가였어요. 그가 작곡을 했던 18세기 말 첼로는 다른 악기의 연주를 돕는 보조 악기라는 인식이 많았던 때였답니다. 그럼에도 베토벤은 첼로의 매력을 잘 알고 있었죠.

베토벤은 당시 보조 악기로만 여겨졌던 첼로의 매력을 잘 알고 있었죠. 사진은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열린 ‘베토벤 첼로 소나타 전곡 연주회’에서 첼리스트와 피아니스트가 호흡을 맞추는 모습이에요.
베토벤은 당시 보조 악기로만 여겨졌던 첼로의 매력을 잘 알고 있었죠. 사진은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열린 ‘베토벤 첼로 소나타 전곡 연주회’에서 첼리스트와 피아니스트가 호흡을 맞추는 모습이에요. /크레디아
첼로를 피아노와 함께 연주하기 위해선 해결해야 할 숙제가 있었어요. 차이가 많이 나는 두 악기의 음량을 어떻게 적절히 조절하느냐의 문제였지요. 당시 피아노 음량은 그리 크지 않았고, 첼로의 음량은 중간 음역대 소리가 피아노보다 훨씬 컸어요. 또 첼로의 가장 큰 매력은 느린 속도로 노래하듯 연주하는 것인데, 느린 악장을 작곡하면 첼로 선율에 묻혀 피아노 소리가 잘 들리지 않았지요.

궁리 끝에 베토벤은 1악장 앞에 느리고 긴 서주(악곡 앞에 느린 템포의 짧은 음악을 붙인 것)를 만들고 중간 악장을 생략하는 방법을 생각해냈답니다. 이 방법은 매우 효과적이었어요. 베토벤의 첼로 소나타는 모두 다섯 곡인데, 그중 초기 소나타 두 곡은 서너 개 악장으로 구성된 기존 소나타와 달리 규모가 큰 두 개의 악장으로만 되어 있죠.

시간이 지나면서 다행히 악기 간 음량 균형 문제가 해결됐고, 베토벤은 느린 멜로디를 아름답게 연주하는 첼로 악장을 마음껏 쓸 수 있었답니다. 그중 제일 인기가 높은 곡은 첼로 소나타 3번으로, 유명한 교향곡 '운명' '전원' 등과 비슷한 시기에 만들어진 걸작입니다.

두 곡의 첼로 소나타를 남긴 독일 작곡가 요하네스 브람스(1833~1897)는 그가 제일 존경했던 베토벤과 정반대의 고민을 했어요. 그는 첼로의 아름다운 낮은 음이 돋보이는 작품을 쓰고 싶었는데, 첼로 소리보다 훨씬 큰 소리를 내는 피아노 때문에 첼로 소리가 안 들릴까봐 걱정이었죠.

첼로 소나타 1번 작품 38에서 브람스는 첼로로 저음을, 피아노로 고음을 내게 해 각 악기 소리가 분명하게 들리도록 하는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했답니다.

약 20년 후 첼로 소나타 2번 작품 99에는 오래전 이러한 실험을 거친 브람스의 자신감이 나타나고 있지요. 피아노가 자유롭게 소리를 내고 첼로도 풍성한 느낌으로 마음껏 연주하고 있어요.

국민 음악파로 불리는 노르웨이 작곡가 에드바르 그리그(1843~1907)는 첼로 소나타를 단 한 곡 썼는데요. 첼로의 서정적인 멜로디와 피아노의 극적인 움직임이 잘 어우러지는 특별한 곡이에요.

그리그는 독일 라이프치히에서 공부한 후 다시 조국으로 돌아와 활동을 했죠. 그가 살던 19세기 중반 북유럽 음악가들은 독일에 가면 그곳에서 활동하는 음악가로 남는 것이 보통이었는데, 그리그는 조국 노르웨이의 문화와 음악의 가치를 중요하게 여겨 귀국을 결심했어요. 그 결과 전 국민의 사랑을 받으며 편안한 창작 생활을 할 수 있었답니다.

그리그의 첼로 소나타 작품 36은 자신의 형이었던 욘 그리그를 위해 쓴 곡이라고 알려져 있어요. 모두 세 악장으로 이루어진 이 소나타는 조국인 노르웨이의 전통 민요 가락과 리듬을 적극적으로 도입해 독특한 분위기를 내고 있죠. 말 그대로 첼로가 연주하는 아름다운 노르웨이 민요라고 할 수 있어요.

피아노 음악의 대가였던 세르게이 라흐마니노프(1873~1943)도 첼로 소나타를 한 곡 남겼어요. 피아니스트가 만든 작품답게 피아노 연주 부분이 화려하고 어려운 걸로 유명한데요. 작품 전체에 작곡가의 확신과 기쁨이 가득 들어있지요.

이 곡을 썼던 1901년은 라흐마니노프가 오랜 우울증에서 벗어나 피아노 협주곡 2번 작품 18을 발표해 대성공을 거둔 직후였어요. 의기양양했던 작곡가의 의욕이 바로 다음 작품인 첼로 소나타의 피아노 악보에 고스란히 담겨있죠.

규모가 큰 네 악장으로 구성된 이 작품은 러시아 특유의 우수 어린 느낌과 화려함이 잘 어우러져 있다고 할 수 있어요. 복잡하게 움직이는 피아노 반주를 타고 첼로가 연주하는 라흐마니노프 특유의 아름다운 선율이 매력적이랍니다. 악기 비중으로만 보면 피아노 부분이 더 많이 나서는 것처럼 들리지만 긴 호흡으로 피아노 반주 위를 오가는 첼로의 존재감도 아주 멋지지요.

첼로가 연주하는 작품은 소나타 외에도 정말 많아요. 유명한 클래식 음악 가운데 많은 곡이 첼로 연주곡으로 편곡돼 있어요. 이번 초겨울은 첼로의 따스한 음색을 들으며 몸과 마음을 훈훈하게 만들어보면 어떨까요.


김주영·피아니스트 기획·구성=박세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