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이 주의 책] "남자는 분홍색 좋아하면 안 된다고 누가 그래?"
입력 : 2017.11.17 03:06
'나의 첫 젠더 수업'
독일 출신 궁정 화가 프란츠 빈터할터가 1846년 그린 '빅토리아 여왕의 가족'이라는 작품이에요. 영국 빅토리아 여왕 부부 주위에 자녀 다섯 명이 보이네요. 그림 속에서 남자아이는 모두 몇 명일까요?
- ▲ /Royal Collection Trust·창비
남자는 어때야 한다, 여자는 어때야 한다…. 자라면서 때때로 듣는 말이죠. 여성학자 김고연주(39)씨가 쓴 '나의 첫 젠더 수업'(창비)은 남녀에 대한 고정관념이 얼마나 잘못됐는지 생각하게 하는 책이에요. 역사와 통계를 이용해 설명한답니다.
요즘엔 남자가 스타킹을 신는 걸 쉽게 상상하기 어렵죠. 그런데 17세기 유럽에서 태어났다면 당연하다는 듯 스타킹을 신고 있을 거예요. 여자아이는 분홍색을 좋아한다거나, 남자아이는 인형보다 로봇을 좋아한다거나 하는 것들도 마찬가지예요. 20세기 초반 미국에서는 남자들이 분홍색을 즐겨 입었답니다. '남자는 수학 문제를 잘 풀고, 여자는 언어능력이 뛰어나다'는 주장도, 실제 여러 나라에서 남녀의 시험 성적을 비교해 본 결과 사실이 아니라고 하네요.
남녀 차이랄 게 크게 없는 것 같은데, 요즘 인터넷에서는 남녀 네티즌들이 서로를 과격하게 비난하고는 해요. '여성 혐오' '남성 혐오'라는 말이 나온 것처럼요. 거칠게 말하자면 여자라는 이유로 편히 산다고 미워하고, 남자라는 이유로 떵떵거린다고 미워하는 거예요.
저자는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의 2015년 설문 조사를 인용해요. 질문은 '우리나라가 누구에게 살기 좋은 나라라고 생각하는가?'였어요. 남자들은 20~30대 여성이, 여자들은 60~70대 남성이 제일 살기 좋다고 대답했어요. 분명히 같은 나라를 살고 있는데 성별에 따라 답이 전혀 다르다니 놀랍지요.
저자는 "남성성과 여성성이 결코 본질적이거나 타고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아는 것, 그것이 멋진 남성·멋진 여성으로서 자기 정체성을 만들어가는 출발점"이라고 합니다. 책 제목에 들어간 '젠더'라는 표현이 바로 이런 뜻이에요. 태어나면서 정해지는 남성·여성이라는 생물학적 성(性)보다, 자라나면서 익히는 사회적 성(性)인 젠더의 영향력이 더 크다는 것이지요. '남자니까 어떻다' '여자라서 어떻다'라는 손가락질은 애초에 잘못된 것이라는 말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