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숨어있는 세계사] 美·中은 탁구, 인도·파키스탄은 크리켓으로 화해했죠
[스포츠 외교]
자본·공산주의 대치하던 냉전시대… '핑퐁 외교' 통해 평화 분위기 만들어
스포츠, 갈등 해결에 큰 역할하지만 우호적 정치 환경 없인 성공 못해요
최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와 '골프 회동'을 가져 화제가 됐어요. '골프광'인 트럼프 대통령은 일본을 방문하자마자 아베 총리와 5시간 동안 골프를 했다고 해요. 앞서 올 2월 미국에서 열렸던 미·일 정상회담에서도 트럼프 대통령과 아베 총리는 골프를 하며 긴밀하게 대화했지요. 이를 두고 많은 언론이 "미국과 일본이 골프 외교를 펼쳤다"고 표현했답니다.
이처럼 스포츠는 종종 국제 정치에서 중요한 수단으로 쓰여요. 오늘은 세계 정치·외교에서 스포츠가 중요한 역할을 했던 이야기를 살펴볼게요.
◇미·중 간 냉기류를 녹였던 '핑퐁 외교'
1971년 4월 10일, 미국 탁구 선수단 15명이 중국 베이징 공항에 발을 내디뎠어요. 그들의 발걸음엔 전 세계 이목이 쏠렸지요. 왜냐하면 공산주의 중국을 공식 방문한 최초의 미국인들이었기 때문이에요.
당시 미국·중국 관계는 오랫동안 얼어붙어 있었어요. 중국은 1950년 한반도에서 터진 6·25전쟁에 대규모 군대를 보내 북한을 도왔지요. 그러자 우리나라를 돕던 미국이 중국을 침략국으로 규정하고 국제사회에서 고립시키는 외교 정책을 펼쳤어요.
1960년대 후반 대표적 공산국가이던 중국과 소련 사이가 나빠졌어요. 우수리강을 둘러싼 영토 분쟁으로 전쟁 직전까지 가면서 중국은 소련을 위협적인 나라로 인식하기 시작합니다. 중국의 최고 지도자 마오쩌둥은 소련을 견제하려면 미국과 관계를 개선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미국 역시 소련을 견제하기 위해 중국과 대화를 마다할 이유가 없었지요. 하지만 오랜 기간 국교(國交·나라 사이 외교 관계)가 끊어져 있어 어떻게 물꼬를 터야 할지 막막한 상황이었어요.
중국이 먼저 미국에 손을 내밀었어요. 1971년 일본에서 열린 세계탁구선수권대회에 참가한 미국 탁구 대표팀을 중국에 초대하겠다고 한 거예요. 미국이 받아들이면서 미국 선수단은 일본 대회를 마치고 곧바로 중국으로 넘어갔죠.
- ▲ ‘핑퐁 외교’를 위해 중국에 간 미국 탁구 선수단은 중국을 공식 방문한 최초의 미국인들이었어요. 1971년 4월 미·중 친선 탁구 대회를 치르고 난 후 대표단 회담에 참석한 선수들과 관계자들 모습. /AP 연합뉴스
미국 선수단은 베이징을 시작으로 상하이, 광저우 등을 일주일간 돌며 중국 선수들과 친선 경기를 치렀답니다. 미국도 중국 탁구단을 초대해 친선 대회를 열었고, 이런 화해 분위기에 힘입어 1972년 닉슨 대통령이 처음으로 중국을 방문했어요. 이처럼 두 나라가 탁구공을 매개로 화해하는 외교를 했다고 해서 '핑퐁(탁구공 소리를 빗댄 탁구 별명) 외교'라고 말해요.
미국이 중국과 정식 외교 관계를 수립하려면 대만과 단교(斷交)해야 했답니다. 왜냐하면 중국은 대만을 국가로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에 미국에 '대만과 단교해야 정식 교류하겠다'는 조건을 내걸었던 거지요. 결국 1979년 카터 미국 대통령은 대만과 단교하기로 결정하고 중국과 정식 수교(修交·나라끼리 교제를 맺음)했답니다.
◇인도·파키스탄의 '크리켓 외교'
이처럼 스포츠가 국가 간 정치·외교에 이용되는 건 정치적으로 앙숙인 국가들이 비교적 정치색이 옅은 스포츠를 통해 관계를 개선하고 싶어하기 때문이에요. 또 다른 대표적 사례가 인도와 파키스탄 간 불화를 누그러뜨리는 데 활용된 '크리켓 외교'랍니다.
두 나라는 영국 식민지 시절 한 나라였어요. 1947년 분리 독립하면서 두 나라는 갈등을 겪기 시작했지요. 두 나라는 서로 다른 종교(인도는 힌두교, 파키스탄은 이슬람교), 국경 지대 카슈미르 지역을 둘러싼 분쟁, 동파키스탄(훗날 방글라데시) 독립 문제 등을 둘러싸고 사사건건 갈등하며 1970년대까지 세 차례나 전쟁을 치렀어요.
그런데 틈만 나면 으르렁대던 두 나라에도 공통점이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국민이 크리켓 경기를 아주 좋아했다는 거예요. 크리켓은 공을 방망이로 치고 달린다는 점에서 야구와 비슷한데, 영국에서 시작해 영연방 국가(영국의 옛 식민지 나라들) 사이에서 인기가 높은 스포츠이지요.
1986년 인도와 파키스탄은 전쟁 직전까지 가는 위기를 또 한 차례 겪었어요. 인도가 대규모 군사훈련을 핑계로 파키스탄 국경 근처로 군대를 이동시켰는데, 파키스탄이 핵무기로 대응하겠다고 위협한 거예요. 두 나라가 극적으로 군대를 철수하기로 합의하면서 최악으로 치닫던 갈등을 겨우 풀었지요.
그러자 파키스탄 대통령이 인도에 '친선 크리켓 경기를 하자'고 제안했답니다. 그동안 얼어붙었던 관계를 스포츠로 녹여보자는 아이디어였죠. 파키스탄 선수들이 먼저 인도를 방문해 친선 경기를 벌였고, 1987년엔 두 나라가 크리켓 월드컵을 공동 개최했어요. 2005년에는 인도 총리와 파키스탄 총리가 나란히 앉아 크리켓 경기를 구경하기도 했지요. 2008년 인도 뭄바이에서 파키스탄 테러리스트들이 테러 공격을 하면서 양국 사이가 급속히 나빠져 모든 친선 크리켓 경기가 중단됐지만, 2012년부터 또다시 친선 경기를 진행하는 등 스포츠 외교 활동이 이뤄지고 있답니다.
- ▲ 1991년 세계탁구선수권 여자단체전에서 우승한 남북 단일 탁구팀 모습. 북한 이분희(맨 오른쪽) 선수와 우리나라 현정화(오른쪽에서 둘째) 선수.
우리나라와 북한도 1991년 세계탁구선수권대회를 앞두고 처음으로 '남북 단일 탁구팀'을 이룬 적이 있어요. 그해 포르투갈 리스본에서 열린 세계청소년축구선수권대회에도 남북 단일 축구팀이 참가했지요. 이후 북한과 수차례 단일팀 구성을 추진했지만 아직 성사되지 못하고 있어요.
많은 사람이 스포츠를 통해 평화를 이룰 수 있다고 믿어요. 하지만 스포츠 외교를 가능하게 하는 것은 화해 분위기를 조성하려는 정치·외교적 결정이랍니다.
☞축구 전쟁
스포츠 때문에 나라 간 관계가 더 악화된 경우도 있었어요. 바로 중남미의 온두라스와 엘살바도르예요. 당시 두 나라는 국경 분쟁과 불법 이민자 문제 때문에 갈등을 빚고 있었지요.
이런 상황에서 두 나라가 제9회 멕시코 월드컵 본선을 앞두고 지역 예선전에서 맞붙었어요. 1·2차전에서 각각 1승씩 거뒀는데, 당시 월드컵에는 골 득실 차로 승부를 가리는 제도가 없었기 때문에 두 나라는 3차전을 치러야 했지요.
1969년 6월 27일 멕시코에서 열린 3차전은 혹시 모를 유혈 사태에 대비하기 위해 경찰 병력이 관중보다 경기장에 더 많이 들어왔답니다. 연장전까지 가는 대접전 끝에 엘살바도르가 온두라스를 3대2로 이겼는데, 이를 계기로 온두라스 정부가 엘살바도르에 외교 단절을 선언했지요.
약 2주가 지난 7월 14일, 엘살바도르 군대가 온두라스를 침공했어요. 상황이 심각해지자 미국이 주도하는 미주기구에서 중재에 나섰고, 전쟁은 100여 시간 만에 끝났답니다. 이 전쟁으로 4000여 명이 사망하고 15만명의 난민이 발생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