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재미있는 과학] 1000년 걸릴 계산, '양자역학'이면 몇 분만에 끝난대요

입력 : 2017.11.08 03:06

[양자역학]

아주 작은 물질 연구하는 '양자역학'… "전자는 입자이자 파동" 증명했어요
'물질은 관측 전까지 중첩'원리 활용, 성능 빠른 양자 컴퓨터 개발 중이죠

노벨물리학상 수상자인 세르주 아로슈(73) 콜레주 드 프랑스 교수가 최근 우리나라를 방문했어요. '양자 컴퓨터의 아버지'로 불리는 그는 인터뷰에서 "양자 컴퓨터는 일반 컴퓨터로 1000년 걸리는 계산을 불과 몇 분 만에 끝낼 수 있다"고 했답니다.

컴퓨터는 우리 생활의 필수품이에요. 그런데 양자 컴퓨터가 뭐기에 그렇게 빠르게 계산한다는 걸까요? 양자 컴퓨터를 알려면 먼저 양자역학이 무엇인지 알아야 한답니다.

◇"전자는 입자이자 파동이다"

물체의 움직임을 설명하는 학문을 역학(力學)이라고 불러요. 17세기 영국의 물리학자 뉴턴이 만든 '만유인력의 법칙'과 '운동 법칙'이 좋은 예예요. 19세기 후반까지는 뉴턴과 그를 따르는 물리학자들이 만든 고전 역학이 아주 잘 작동했어요. 예컨대 야구공의 현재 위치와 속도를 알면 일정한 시간이 지나고 물체가 어디로 떨어질지 정확하게 계산할 수 있지요.

그런데 원자나 전자 같은 아주 작은 물질세계는 뉴턴의 세계와는 완전히 다르게 움직였어요. 이를 계기로 아주 작은 물질의 움직임을 연구하는 분야가 탄생했는데 이를 양자(量子·quantum)역학이라고 불러요. 1900년 독일 물리학자 막스 플랑크가 처음 도입한 개념이랍니다.

모든 물질을 구성하는 기본 단위는 원자예요. 우리 몸도 원자로 만들어졌어요. 원자는 원자핵과 전자로 이뤄져 있는데, 많은 과학자가 처음에 전자를 구슬처럼 작은 알갱이(입자·粒子)라고 생각했어요. 정말 그런지 확인하려고 1927년 '전자의 이중 슬릿(slit·아주 좁은 틈)'이라는 실험을 했답니다. 작은 구멍(틈)을 두 개 뚫은 벽을 세우고, 그 뒤에 스크린을 설치했지요. 그리고 벽을 향해 전자를 쏘았어요.

먼저 크기가 큰 야구공들을 그만한 크기의 구멍을 향해 던졌을 경우를 상상해보죠. 일부는 튕겨 나오겠지만, 일부는 구멍을 통과해 벽 너머 스크린에 곧장 닿아요. 스크린에는 야구공이 부딪힌 흔적을 만들겠지요. 크기가 훨씬 작긴 하지만, 전자가 알갱이(입자)라면 야구공과 비슷한 흔적을 남길 거예요.

그런데 전자를 쐈더니 전혀 다른 일이 일어났어요. 좁은 틈을 빠져나간 전자가 또 다른 여러 파동을 만들며 스크린에 넓은 물결무늬를 그린 것이에요. 이것은 전자가 빛이나 소리처럼 파동(波動·진동이 주위에 전달되는 현상)으로 움직였음을 뜻해요.

양자역학 설명 그래픽
그래픽=안병현

전자가 파동처럼 행동했다는 건 무슨 뜻일까요? 물질이 파동이면 그 위치를 정확하게 계산할 수 없어요. 파동이란 넓은 공간에 에너지가 퍼지는 것일 뿐, 물질이 움직인 게 아니기 때문이지요.

전자가 입자이면서 파동이라는 사실은 또 우리 세계의 모든 물질이 입자이면서 파동이라는 뜻이기도 하답니다. 모든 물질을 입자라 생각하고 수학 공식을 통해 상태를 계산해온 고전 역학이 무너지는 순간이었답니다.

◇차세대 수퍼 컴퓨터를 만들다

전자가 파동이라는 사실이 밝혀지자 많은 과학자가 숱하게 달라붙어 여러 실험을 했어요. 그런데 어떤 실험에서는 전자가 입자라는 결과가 나오고, 어떤 실험에선 전자가 파동이라는 결과가 나오는 등 매번 결론이 달랐지요. 그래서 이 기이한 현상에 대해 과학자들이 모여 획기적 이론(코펜하겐 해석)을 내놓았어요.

코펜하겐 해석에 따르면, 물질은 사람이 관측하기 전까지 여러 가능성을 모두 가지고 있어요. 입자일 수도 있고 파동일 수도 있고, 여기에도 있을 수 있고 저기에도 있을 수 있지요. 이를 '중첩됐다(포개져있다)'고 표현해요. 하지만 현실 세계에서 우리가 관측하는 물질은 딱 한 가지 상태이기 때문에, 어떤 특징이 나타나고 어떤 특징이 사라지느냐는 관측자에게 달렸다는 거예요.

양자역학의 중첩성은 반도체, 초전도체, 나노기술을 넘어 양자 컴퓨터 개발로 이어지고 있어요.

현재의 컴퓨터는 0과 1이라는 이진법 신호로 작동해요. 스위치를 켜 전기가 흐르면 1, 스위치를 끄면 0을 나타내지요. 이것을 정보의 기본 단위인 '비트'라고 하는데 비트의 양이 늘어날수록 성능도 발전해요.

현재 컴퓨터는 0 또는 1로 정보를 저장하지만, 양자 컴퓨터는 전자를 중첩 상태로 저장할 수 있기 때문에 0과 1을 동시에 나타낼 수 있어요. 예를 들어 현재 컴퓨터는 세 자릿수로 된 비트를 001, 010 등 여덟 가지 중 하나만 저장할 수 있지만, 양자 컴퓨터는 모두를 동시에 처리할 수 있지요. 계산 속도가 획기적으로 빨라지는 거예요.

지금까지 설명이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실망하지 마세요. 양자역학은 이해하기 어렵기로 소문난 이론이랍니다. 1965년 노벨물리학상을 받은 리처드 파인먼조차 "양자역학을 제대로 이해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했지요. 하지만 양자역학은 상대성 이론과 더불어 현대 물리학에서 중요한 분야로 손꼽히는 학문이에요. 여러분도 꾸준히 관심을 가지면 좋을 것 같아요.

☞슈뢰딩거의 고양이

물리학자 에르빈 슈뢰딩거(1887 ~1961)는 양자역학의 기이함을 설명하기 위해 ‘슈뢰딩거의 고양이’라는 사고(思考) 실험을 제안했어요.

상자 안에 방사능 물질과 고양이 한 마리, 독약이 든 병이 있어요. 방사능 원자가 붕괴하면 망치가 독약이 든 병을 깨뜨려 고양이가 죽어요. 붕괴하지 않으면 고양이는 살겠지요. 그럼 일정한 시간이 지난 후 고양이는 살아 있을까요, 죽어 있을까요? 보통 상식으로는 상자를 열어보든 열어보지 않든 고양이 생사는 이미 결정돼 있겠지요. 그러나 양자역학은 상자를 열어보지 않는 한 고양이는 살아있지만 죽어있는 ‘중첩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고 봅니다. 흥미롭게도 양자역학을 공격하기 위해 만든 이 실험이 지금은 양자역학을 가장 잘 설명하는 사례로 받아들여지고 있어요.



 

송준섭·과학 칼럼니스트 기획·구성=박세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