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경제 이야기] 사람 살 수 없는 낡은 아파트인데… 왜 값이 오르는 걸까?
[아파트 재건축]
재건축 앞둔 노후 주택, 기대 심리로 수요 늘고 공급 줄며 집값 상승해요
부동산은 즉각 공급 어려운 재화… 정부, 대출 규제 등 대응책 추진하죠
강남을 비롯한 서울 곳곳에서 낡은 아파트 단지를 허물고 새로운 아파트를 짓는 대규모 재건축 사업이 숨 가쁘게 진행되고 있어요.재건축을 앞둔 아파트 집값은 큰 폭으로 뛰어오른답니다. 오늘은 재건축을 둘러싼 경제 현상에 대해 알아보도록 할게요.
◇40여년 새 70배 오른 재건축 아파트 값
우리가 하고 있는 경제 활동은 대부분 재화(財貨)를 대상으로 해요. 재화는 음식이나 책, 텔레비전 같이 우리 눈으로 직접 볼 수 있거나 만질 수 있는 것이지요. 재화는 크게 두 가지 종류가 있는데, 공기나 햇빛처럼 비용을 지불하지 않고도 얻을 수 있는 '자유재'와 음식이나 옷, 주택, 가전제품처럼 비용을 치러야 하는 '경제재'가 있답니다. 부동산은 경제재 중 하나이지요.
보통 우리가 쓰는 물건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사용 가치가 떨어져요. 벼룩시장에서 팔리는 중고물건을 보면 아무리 비싸게 샀더라도 대부분 새 상품보다 가격이 낮아요. 이런 관점에서 보면 오래된 아파트도 사실 낡아서 더 이상 살 수 없을 정도가 됐기 때문에 당연히 값이 많이 내려가야 할 것 같아요. 하지만 재건축이 기대될 정도로 낡은 아파트는 거꾸로 가격이 오른답니다. 그것도 통상적인 상승이라고는 볼 수 없을 만큼 가격이 많이 오르는 경우가 있지요.
대표적인 재건축 사례가 서울 강남구 대치동의 은마아파트예요. 1979년 14층 28개 동(棟) 4424가구 규모로 지어진 이 아파트는 강남 노른자위 땅에 있는데다 '사교육 1번지'로 불리는 대치동 학원가와 가까워 인기가 많았어요.
여기에 2000년대 중반부터 재건축이 추진되면서 가격이 큰 폭으로 뛰었지요. 입주 당시 2000만원대(전용면적 84m² 기준)였던 집값이 2006년엔 13억원대로 뛰었고, 최근엔 재건축이 본격 진행되면서 더 올랐다고 해요. 40여년 새 70배 넘게 가격이 폭등한 거예요. 같은 기간 자장면 가격이 10배 정도 오른 것과 비교하면 매우 큰 상승세지요.
- ▲ 현재 재건축이 진행 중인 서울 강남구 개포동의 한 아파트 단지. 재건축을 앞둔 아파트 가격이 많이 오르는 것은 기대 심리 효과가 크기 때문이랍니다. /김연정 객원기자
이는 부동산이 아주 독특한 특성을 가진 재화이기 때문이에요. 부동산은 공급이 제한된 재화인데다, 수요가 오른다고 해도 즉각적으로 공급을 할 수 있는 재화도 아니지요. 이를 공급 탄력성이 매우 낮은 재화라고 말해요. 또 주거 여건이 편한 서울 강남 등 특정 지역에 대한 수요가 크기 때문에 희소성도 크지요. 여기에 주택이 거주의 개념이 아니라 수십년 간 안정성이 입증된 투자의 대상이라는 점이 더해지고, 소득이 올라갈수록 집값 역시 올라가길 원하는 심리가 더해지면서 가격이 크게 오르게 되는 거랍니다.
아파트 재건축이 성사되면 새 아파트가 들어서면 아주 살기 좋은 공간이 될 것이고, 그곳에서 살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많아져 집값이 오를 거라는 '기대 심리'가 작동해요. 실제 재건축을 하면 아파트는 완전히 새롭게 태어나요. 평수는 더 넓어지고, 인테리어는 더 아름답게 바뀌지요. 전기, 수도, 가스를 이용하기도 편리해지고 경비 시설도 잘 갖춰 안심하고 살 수 있어요. 요즘엔 아파트 단지 내 공원이나 도서관, 수영장, 놀이방, 실내 골프장 같은 다양한 편의 시설도 함께 들어와요.
◇가격 오를수록 수요 늘고 공급 줄어
이렇다 보니, 재건축 아파트는 수요·공급의 법칙도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요. 시장에서 거래되는 모든 상품 가격에는 통상 수요와 공급의 법칙이 작용하는데요. 수요가 늘면 가격이 오르고, 가격이 오르면 수요는 줄지요. 반대로 공급이 늘면 가격은 내려가고, 공급이 줄면 가격이 올라요. 그 사이에서 시장 가격이 형성되는 거랍니다.
하지만 재건축 아파트처럼 집값이 앞으로 더 오를 것이라고 기대되면 가격이 올라도 거꾸로 수요가 늘고 공급은 줄어요. 집을 사려는 사람(수요자)은 가격이 더 오르기 전에 집을 사려고 모여들고, 집을 팔려는 사람(공급자)은 가격이 더 오른 뒤 집을 팔려고 하니 공급이 줄어드는 거예요. 재건축의 경우도 이처럼 수요는 늘고 공급은 줄면서 아파트 가격이 크게 오르는 거랍니다.
문제는 수요자들 가운데 실제 아파트에서 살려고 하는 실수요자보다, 부동산 투기를 통해 돈벌이를 하려는 사람들이 상당하다는 거예요. 투기 수요 때문에 가격이 너무 오르면 실제 아파트에서 거주하려는 사람들이 정작 집을 살 기회를 가질 수가 없어요.
그래서 정부는 '후분양제'와 '대출 규제 정책'을 추진하고 있어요. 현재의 선분양제는 아파트를 짓기도 전에 집을 분양하는 제도로 분양받은 시기와 입주하는 시기 사이에 상당한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중간에 집값이 큰 폭으로 오르기 쉽다는 단점이 있어요. 하지만 후분양제는 어느 정도 아파트를 짓고 분양하기 때문에 입주할 때 집값이 분양 때보다 지나치게 높아지는 걸 막을 수 있답니다. 대출 규제는 수요자가 자기 주택을 담보로 은행에서 돈을 빌릴 때 그 규모를 일정 수준에서 제한하는 제도이지요.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해 오래된 아파트를 부수고 새로 짓는 것은 반드시 필요한 일이에요. 하지만 건설사의 경쟁과 일부 투기꾼들 때문에 내 집 마련을 원하는 사람들이 피해를 입는 일은 없어야 할 거예요.
☞재건축·재개발·도시재생
재개발이란 지방자치단체가 주도하는 공공사업으로, 낙후한 구역 내 건물을 모두 헐어 다시 짓고 도로와 상하수도 같은 공공기반 시설을 새로 정비하는 것을 말해요. 반면 재건축은 관련 법에 따라 낡은 아파트·빌라 같은 노후·불량 주택을 허물고 더 살기 좋은 주택으로 바꾸는 민간사업을 말하지요.
도시 재생은 낙후한 도시 곳곳을 건물 리모델링이나 도로·공원 정비, 유적지 복원 등을 통해 더 아름답게 가꾸는 것을 말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