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경제 이야기] 치열한 경쟁서 이겼는데… 이익보다 손해가 크다고?

입력 : 2017.10.27 03:05

[승자의 저주]

경쟁자들 이기기 위해 과도한 투자, 승리하고도 손해 보는 '승자의 저주'
인간 욕심 때문에 생기는 현상이죠… 버핏 "최고액보다 20% 낮게봐야"

경매(競賣) 현장을 본 적이 있나요? 경매란 말 그대로 경쟁을 붙여 물건을 파는 것을 말해요. 어떤 물건을 사겠다는 사람이 2명 이상일 때 가장 높은 값을 치르는 사람이 물건을 가져가는 방식이지요. 이렇게 원하는 물건을 갖게 되면 치열한 경쟁에서 이겼다는 기쁨을 누릴 수 있어요. 하지만 곧바로 이긴 것을 후회하는 경우도 적지 않답니다. 이런 상황을 '승자의 저주(The Winner's Curse)'라고 하는데, 올해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미국의 행동경제학자 리처드 세일러((Richard H. Thaler) 시카고대 교수가 소개하면서 유명해진 개념이랍니다. 오늘은 경제학 속 '승자의 저주'에 대해 알아봅시다.

◇노벨상 받은 '승자의 저주'

1950년대 미국 석유 회사들이 대서양 멕시코만(灣)에서 나는 석유를 누가 시추(지하자원을 얻기 위해 바닥에 구멍을 뚫는 것)할 것인가를 둘러싸고 공개 입찰(경쟁 매매)에 참여했어요. 입찰은 경매와 비슷한데, 여러 경쟁자 가운데 파는 사람에게 가장 유리한 가격을 제시하는 사람이 특정한 권리나 물건을 가져간답니다. 그런데 입찰에 참여한 석유 회사들이 경쟁에서 이기려고 가격을 지나치게 높게 써내는 일이 벌어졌어요. 이를 미국의 석유 회사 연구원 3명이 관찰하고 1971년 논문으로 발표했답니다.

연구자들은 논문에서 "2~3명이 참가한 경매에서 시추권을 따냈으면 운이 좋아서 그랬다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수십 명이 참가한 경매에서 승리했다면 어떤 느낌이 들까?"라는 질문을 던졌어요. 이에 대한 답은 이랬어요. "망했다!"

19세기 치열한 경매 현장을 묘사한 그림. 경쟁이 치열할 때, 사람들은 물건을 얻는 데 성공해 놓고도 손해를 보는 ‘승자의 저주’에 빠지기 쉬워요.
19세기 치열한 경매 현장을 묘사한 그림. 경쟁이 치열할 때, 사람들은 물건을 얻는 데 성공해 놓고도 손해를 보는 ‘승자의 저주’에 빠지기 쉬워요. /게티이미지코리아

이런 현상은 올해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리처드 세일러가 1992년 '승자의 저주'라는 책을 통해 대중에 널리 알렸답니다. 세일러 교수는 인간 심리가 경제적 선택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한 '넛지(nudge)' 이론으로 유명한 행동경제학자예요. 예를 들어 소변기 안에 파리를 그렸더니 남성들이 무심코 파리 그림에 '조준'하는 바람에 밖으로 튀는 소변량이 크게 줄어들었다는 내용이랍니다.

세일러 교수는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지나치게 큰 비용을 치러, 결과적으로 승리해도 오히려 손해 보거나 위험에 빠지는 상황을 '승자의 저주'라고 말했어요.

그에 따르면, 기업을 인수·합병하는 과정에서 '승자의 저주'가 생길 수 있어요. 인수·합병을 둘러싼 경쟁이 너무 치열할 때 인수를 원하는 기업이 매물로 나온 기업을 지나치게 비싼 가격에 사는 경우가 생겨요. 그리고 엄청난 인수 비용을 감당하지 못해 자금난에 빠져 망하는 상황이 벌어지기도 하지요. 이는 인수 대상 기업의 실제 가치가 애초 예상했던 가치보다 너무 낮기 때문이기도 하고, 인수한 기업 주가가 갑자기 떨어지거나 경제 상황이 나빠지는 등 예상치 못한 어려움이 생겼기 때문이기도 해요. 모두 '승자의 저주'에 해당한답니다.

◇알아도 왜 계속 실수할까?

왜 이런 일이 생기는 걸까요? 우리는 일반적으로 기업이 중요한 경제적 선택을 할 때 최고 전문가들이 치밀하게 분석해 아주 합리적인 결정을 할 거라고 생각해요. 하지만 실제 실험을 해보면 '승자의 저주'라는 개념을 알고 있는 사람들조차도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고 합니다. 가장 큰 이유는 사고자 하는 대상의 가치를 어느 누구도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하기 때문이에요.

예를 들어 10원짜리 동전이 가득 든 커다란 유리잔을 경쟁이 치열한 경매에 부친다고 생각해보세요. 호기심 가득한 참가자들이 유리잔을 갖겠다고 경쟁하면, 최종 낙찰가는 항상 유리잔에 담긴 동전을 모두 합한 액수보다 훨씬 높게 나온답니다. 유리잔에 담긴 동전이 어떤 의미를 가진 동전인지, 정확하게 몇 개가 들어있는지 제대로 알지 못하기 때문이에요.

실제 상황에서도 기업의 가치를 정확하게 평가하는 건 불가능해요. 인수할 대상의 역량과 미래 잠재력, 인수 후 시너지 등을 평가하는 데 사람의 주관적 생각이 들어가기 때문이에요.

또 다른 이유는 인간의 경쟁심과 승부욕을 들 수 있어요. '일단 이기고 보자'는 승부욕이 발동하면 이성적 판단을 하지 못하는 거지요. 물론 입찰이나 인수·합병에 성공한 기업이 모두 다 손해를 보는 것은 아니지만, 전체 비용을 감안하면 기대한 수익만큼 실제 수익을 얻는 기업이 많지 않다는 것이에요.

최근 우리나라에서도 비슷한 상황이 벌어졌어요. 몇 년 전부터 중국 관광객이 갑자기 늘자 우리나라 대기업들이 면세점 입찰에 달려들었어요. 치열한 경쟁을 뚫고 면세점 특허권을 따낸 기업들은 축제 분위기였지요. 하지만 새 면세점 특허권이 늘면서 면세점 간 경쟁이 치열해졌고, 여기에 사드 배치를 둘러싸고 우리 정부와 중국 정부가 갈등을 벌이면서 중국 관광객이 크게 줄어들었어요. 일부 기업은 큰 손해를 입자 특허권을 반납하기도 했어요. 엄청난 돈을 주고 사들인 면세점 특허권이 '승자의 저주'가 된 거예요.

'승자의 저주'에 걸리지 않으려면 대상의 가치를 정확하게 파악하되, 실제 사들일 때 가치는 그보다 낮게 평가해야 한다고 합니다. '투자의 귀재'라는 미국의 워런 버핏은 "'승자의 저주'를 피하려면 경매할 때 최고 평가액에서 20% 정도를 낮춰 부르고 거기서 단 1센트도 더 얹지 말아야 한다"고 조언했어요.

'승자의 저주'는 개인에게도 일어날 수 있어요. 예를 들어 인기 많은 이성 친구를 사귀고자 비싼 선물 공세를 하다 빈털터리가 되는 경우가 있어요. 경쟁이 너무 심하면 이기는 게 오히려 손해가 될 때도 많다는 걸 기억해야 한답니다. 진정한 승자가 되려면 실제 내가 손에 쥘 수 있는 가치에 집중하는 훈련이 필요한 것이지요.

☞피루스의 승리

고대 그리스 에피루스라는 나라에 피루스라는 왕이 있었어요. 피루스왕은 군사 2만5000여 명을 이끌고 로마를 침공해 승리를 거두었지만, 전쟁으로 병사 가운데 70% 정도를 잃었답니다. 전쟁이 끝나고 피루스 왕은 “이런 승리를 또 한 번 거뒀다가는 우리가 망할 것”이라 말했다고 해요.‘승자의 저주’와 비슷한 의미로 희생이 아주 커서 패배나 다름없는 승리를 뜻한답니다.





 

심묘탁 ㈔청소년교육전략21 사무국장 기획·구성=박세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