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핫 피플] 비운의 '천재 물리학자' 노벨상 버금가는 업적 세웠죠
입력 : 2017.10.27 03:03
이휘소 박사 - 올해 사망 40주기 맞아 재조명
- ▲ /위키피디아
이휘소 박사는 일제강점기이던 1935년 서울에서 태어났어요. 아버지는 소학교(현재 초등학교) 교사였고 어머니는 의사였지요. 과학 잡지를 즐겨 읽던 평범한 소년이었던 이 박사는 1950년 6·25전쟁이 터지자 가족과 함께 부산으로 피란을 갑니다. 피란 생활 중 검정고시를 친 그는 1952년 서울대 화학공학과에 수석으로 입학했어요.
대학에서 이 박사는 물리학에 큰 흥미를 가져요. 전공을 바꾸려 했지만 학교에서 허락하지 않자, 이 박사는 미군이 후원하는 장학생으로 뽑혀 미국 마이애미대 물리학과에 편입합니다. 이때부터 아침 7시에 일어나 전공 수업을 듣고 자정까지 도서관에서 공부하다 기숙사로 돌아오는 생활을 반복했다고 해요. 그 결과 그는 미국에 건너온 지 1년 반 만에 물리학과를 최우등 졸업합니다.
이 박사는 만 25세이던 1960년 펜실베이니아대에서 물리학 박사 학위를 받습니다. 그의 전공은 입자물리학이었는데, 물질을 구성하는 아주 작은 단위인 소립자(小粒子)를 연구하는 분야랍니다. 그는 26세에 펜실베이니아대 조교수에 임용됐고 이어 2년 뒤 부교수, 다시 2년 뒤 정교수로 '고속 승진'합니다. 또 프린스턴 고등연구소 연구원, 페르미연구소 부장, 시카고대 교수 등을 거치며 미국 물리학계에서 명성을 쌓아가지요.
이휘소 박사는 논문을 60여 편 남겼는데, 인용된 횟수가 1만 4000회를 넘어요. 학계에 미친 영향이 크다는 것을 알 수 있지요. 그와 함께 입자물리학을 연구했거나, 그의 도움으로 이론을 완성한 수많은 과학자가 훗날 노벨상을 받았답니다. 1979년 노벨물리학상을 받은 압두스 살람은 수상 소감에서 "이휘소는 현대 물리학을 10여 년 앞당긴 천재다. 그가 있어야 할 자리에 내가 있는 것이 부끄럽다"고 했고, 1999년 노벨물리학상을 수상한 토프트는 "이휘소를 만난 건 하늘이 내게 내려준 행운이었다"고 말했어요.
생전에 이 박사는 몇 날 며칠 방에서 나오지 않고 연구에만 몰두해 '(속옷도 안 갈아입어) 팬티가 썩은 사람'이라는 놀림을 받았다고 해요. 마흔두 살 젊은 나이에 교통사고로 세상을 뜬 그가 살아있다면 한국계 최초의 노벨상 수상자가 됐을지도 몰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