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이주은의 미술관에 갔어요] "내가 곧 태양"… 절대 군주의 권력, 가면에도 담았죠

입력 : 2017.10.21 03:05

[왕이 사랑한 보물-드레스덴박물관연합 명품展]

17세기 유럽 절대왕정 시대의 왕들, 희귀하고 이색적인 보물 주고 받아
아우구스투스 왕, 예술품 수집 열광… 유럽 최초 도자기 만들기 성공했죠

간혹 기암괴석(奇巖怪石·이상하게 생긴 바위나 돌)을 수집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이상하게 생긴 물건은 낯설기도 하지만, 그 기이함에 매력을 느끼면 특별한 가치를 느낄 수 있지요. 16세기 중반, 희귀하고 이색적으로 생긴 자연물이나 먼 나라에서 건너온 처음 보는 물건에 대한 관심이 유럽 전역을 휩쓸었어요. 당시 왕들은 다른 나라 왕들과 좋은 관계를 맺고자 선물을 주고받곤 했는데, 그 선물은 주로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경이로운 물건이었답니다.

폴란드 왕이자 독일 작센주의 선제후(選帝侯·황제 선거권을 가진 최고 귀족)를 겸했던 아우구스투스(1670~1733)는 유럽 왕 중에서 예술적 수집품을 모으는 데 유달리 신경을 많이 썼던 왕이에요. 아우구스투스 왕은 수집한 물건을 궁전 안에 있는 '호기심 방'이라 이름 붙인 전시장에 진열해 두고 손님들을 초대해 구경시켰답니다. 이 방에서 박물관 역사가 시작됐고, 현재 독일 드레스덴의 그린볼트 박물관으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호기심 방'에는 자라 등껍데기, 코뿔소 뿔, 뱀의 혀같이 동물에게서 나온 것도 있고, 모양이 특이한 소라나 진주, 산호 등 바다에서 건져낸 것도 있었어요. 값비싼 그릇이나 화려한 보석이 박힌 장식품도 많았답니다.

아우구스투스 왕은 독일 작센주 드레스덴을 유럽에서 가장 아름다운 바로크 예술의 중심지 가운데 한 곳으로 만든 군주이기도 해요. 그가 사랑한 보물 130여 점은 지금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리고 있는 '왕이 사랑한 보물―독일 드레스덴박물관연합 명품전'에서 볼 수 있습니다.

작품1~4
작품1을 보세요. 금을 겉에 입힌 은으로 만든 공예품인데, 동물 머리 위에 꽂힌 빨간 산호가 산뜻하게 눈에 들어오네요. 산호 가지가 누가 봐도 사슴 뿔처럼 생겼군요. 자연물 형태를 그대로 활용한 공예품이 탄생한 것이지요. 여기에는 고대 로마 시인 오비디우스의 서사시 '변신 이야기'에 나오는 사냥꾼 악타이온 이야기가 담겨 있어요. 악타이온은 그리스 신화 속 여신 아르테미스가 목욕하는 모습을 훔쳐보다가 벌을 받아 그만 사슴으로 변하고 말았답니다.

자연물의 원래 형태를 그대로 예술품에 이용한 또 다른 예를 볼까요. 작품2를 보세요. 하얀 낙타가 있는데, 이것은 우리가 보통 알고 있는 동그란 진주가 아니라 울퉁불퉁한 진주로 만들었어요. 예전에는 완벽하게 동그란 진주만 예쁘다고 생각했지만, 기이한 것에 흥미를 갖던 16세기부터는 이런 특이한 모양의 진주가 인기를 끌었어요. 불규칙하게 일그러진 진주는 둥근 것과 달리 그 독특한 모양이 세상에 둘도 없이 딱 하나밖에 없기 때문이었죠. 이런 삐뚤어진 형태의 진주를 포르투갈어로 '바로코(barroco)'라고 불렀고, 여기에서 '바로크 미술'이라는 용어가 생겨났어요.

아우구스투스 왕도 바로크 시대 왕이랍니다. 이때는 왕의 권력이 대단했어요. 왕은 세상의 빛으로 여겨졌고, 태양처럼 눈부셔서 아무나 감히 쳐다볼 수도 없는 존재였지요. "나는 곧 국가다. 내가 일어나면 태양이 떠오르고, 자러 들어가면 태양이 진다"고 말해 '태양왕'이라고 했던 프랑스의 루이 14세가 바로 대표적인 바로크 시대 절대군주예요.

작품3은 태양 모양을 한 가면이에요. 이 가면은 처음에 루이 14세가 연회에서 태양신으로 분장할 때 썼던 것인데, 루이 14세의 권력과 화려한 생활을 동경했던 아우구스투스 왕도 똑같은 것을 만들어 쓰곤 했어요. 이 태양 가면은 아우구스투스 자신을 태양신 또는 태양왕으로 국민에게 알리는 데 핵심 역할을 했답니다.

아우구스투스 왕은 동양의 도자기를 너무나 좋아했고, 마침내 유럽 최초로 자기(瓷器·고령토 따위를 빚어서 아주 높은 온도로 구운 그릇)를 만드는 데 성공한 왕이기도 합니다. 당시 유럽에서 '하얀 금'이라고 하던 자기는 단단하면서도 빛깔이 아름다워 가장 귀하고 인기 있는 물건이었어요. 그러나 유럽에서는 만드는 법을 몰라 중국과 일본에서 비싸게 들여오는 상황이었지요.

작품4는 주둥이 부분이 둘 있는 독특한 도자기인데, 위쪽 것은 17세기 후반 중국에서 만든 것이고 아래쪽 것은 아우구스투스 왕의 지시로 독일 마이센 지역 장인이 만든 것이랍니다. 입이 둘로 나뉜 기이한 형태를 만드는 일도 어려웠겠지만, 무엇보다 푸른 물감을 투명하면서도 풍부하게 표현하는 것이 마이센 도공에게는 가장 큰 과제였을 거예요. 마이센 도자기 공장은 1710년 세워졌고, 그곳에서 도공이 이 병을 만든 것이 1730년쯤이니까 놀랍게도 약 20년 만에 중국의 도자기 기술과 거의 비슷한 수준까지 이른 셈이지요. 이렇듯 예술은 멈추지 않는 호기심에서 탄생하고, 무언가 남에게 보여주고 싶은 과시 열망에 힘입어 더욱 발전했답니다.


이주은 건국대 문화콘텐츠학과 교수 기획·구성=박세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