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재미있는 과학] 영하 200도로 박테리아 얼려 관찰… 올해 노벨상 받았죠

입력 : 2017.10.18 03:12

[현미경의 원리]

아주 작은 물질 확대해주는 현미경, 광학·전자현미경 등으로 나뉘어요
노벨화학상 받은 극저온 전자현미경, 살아있는 물질 관찰 못한 문제 해결

'보는 것은 믿는 것이다'라는 유명한 서양 속담이 있어요. 어떤 사실을 증명하기 위해서는 보여주는 것이 필수적이라는 뜻인데요. 과학자들 역시 우리가 볼 수 없는 아주 작은 것들을 직접 보여주기 위한 연구와 시도를 많이 해왔답니다. 올해 노벨화학상을 받은 '극저온 전자현미경(Cryo-electron microscope)'도 세상에서 가장 작은 것을 보기 위한 과학자들의 노력에서 탄생한 결과예요.

◇아주 작은 물체를 탐구하다

여러분이 과학 실험실에서 가장 많이 쓰는 도구 중 하나가 현미경이에요. 현미경은 우리 눈으로 볼 수 없는 아주 작은 물체나 미생물을 크게 보여준답니다. 빛(가시광선)이 볼록렌즈(가운데가 두툼한 렌즈)를 통과하면서 안쪽으로 꺾이는데, 이를 통해 물체가 실제보다 더 크게 보이는 거죠. 할아버지·할머니들이 쓰는 돋보기 안경이 바로 이런 볼록렌즈로 만든 거예요.

우리가 어떤 물체를 볼 수 있는 건 물체에서 빛이 반사되기 때문인데요. 예를 들어 파란색 운동화는 빨강·주황·노랑·초록 등 일곱 가지 가시광선(우리 눈으로 볼 수 있는 빛) 가운데 파란색만 반사하기 때문에 파란색으로 보여요. 마찬가지로 빨간 사과는 빨간색만 반사하기 때문에 빨갛게 보인답니다.

현미경 그래픽
그래픽=안병현

광학(光學)현미경은 이런 가시광선을 이용하는 현미경이에요. 볼록렌즈 두 개(접안·대물렌즈)로 빛을 두 번 모아줘 물체를 두 차례 확대하는 방식을 사용해요. 17세기 중반 영국의 과학자 로버트 훅이 아주 작은 물체를 원래 크기보다 200배 더 크게 보여주는 고해상(高解像·이미지가 아주 정밀한 수준) 광학현미경을 처음 만들었어요. 훅은 이 고배율 현미경을 이용해 처음으로 세포를 관찰했고, 세포가 마치 작은 방처럼 이루어졌다고 해서 '셀(Cell)'이라는 이름을 붙였어요.

그런데 광학현미경에도 문제가 있었어요. 가시광선을 이용해서는 200㎚(나노미터)보다 작은 물질은 볼 수가 없었던 거예요. 1㎚는 10억분의 1m로, 사람 머리카락 굵기의 10만분의 1 정도에 해당한답니다. 200㎚면 사람 머리카락 굵기의 500분의 1에 해당하니, 엄청나게 작은 물질이지요. 일반적인 세포는 200㎚보다 훨씬 크기 때문에 문제가 없지만, 바이러스나 단백질은 100㎚보다도 작기 때문에 기존의 광학현미경으로는 관찰이 불가능했어요. 이런 문제점을 처음 발견한 독일 과학자 에른스트 아베의 이름을 따 '아베 한계'라고 불러요

과학자들은 그 대안으로 전자현미경을 사용하기로 합니다. 가시광선보다 파장(波長·파동의 길이)이 훨씬 짧은 전자빔을 물체에 쏴 이미지를 확대하는 현미경이에요. 파장이 짧은 빛을 물체에 비추면 파장이 긴 빛으로 볼 때보다 훨씬 크고 자세하게 관찰할 수 있는데요. 단위가 작은 자로 길이를 잴수록 더 세밀한 값을 알 수 있는 것과 같은 원리예요.

전자현미경을 처음 만든 사람은 독일의 과학자 에른스트 루스카입니다. 루스카가 당시 만든 전자현미경은 실제 물체보다 12배 정도 크게 보여주는 수준에 불과했지만, 이제는 과학의 발전으로 탄소나 산소같은 아주 작은 원자까지 볼 수 있게 됐어요. 루스카는 전자현미경을 만든 공로로 1986년 노벨물리학상을 받았지요.

전자현미경은 해상도가 높지만, 생체 물질에 사용하기에는 적합하지 않아요. 아주 큰 에너지를 가진 전자빔을 물체에 쏘기 때문이죠. 만약 전자현미경을 이용해 세포를 관찰하면 그 커다란 에너지 때문에 세포가 아예 사라져버릴 수도 있답니다.

◇생체 물질을 영하 200도로 얼리다

올해 노벨화학상을 공동 수상한 자크 뒤보셰(75) 스위스 로잔대 명예교수, 요아힘 프랑크(77) 미국 컬럼비아대 교수, 리처드 헨더슨(72) 영국 케임브리지대 교수는 전자현미경의 이런 한계를 극복한 과학자들이에요. 세 사람은 전자현미경의 한 종류인 극저온 전자현미경을 개량하고 발전시킨 공로를 인정받았답니다. 극저온 전자현미경은 아주 낮은 온도인 영하 200도에서 단백질이나 박테리아 등 생체 물질을 꽁꽁 얼린 뒤, 전자현미경으로 촬영하는 방법이에요.

뒤보셰 교수는 생체 물질을 영하 200도에서 아주 빠르게 얼리는 방법을 개발했어요. 꽝꽝 언 생체 물질은 아주 단단하기 때문에 아무리 큰 에너지를 가진 전자빔을 쏘아도 손상되지 않아요. 프랑크 교수는 현미경으로 관찰한 이미지를 보다 정확하게 분석하는 방법을 만들었는데요. 전자현미경은 가시광선이 아닌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전자빔을 사용하기 때문에 물체를 우리가 눈으로 볼 수 있는 이미지로 바꿔줘야 한답니다. 프랑크 교수는 여러 개의 2D(평면) 이미지를 겹쳐 3D(입체)로 완성하는 소프트웨어를 개발해 극저온 전자현미경의 정확도를 높였어요.

마지막으로 헨더슨 교수는 극저온 전자현미경을 이용해 실제 생체 물질의 이미지를 찍고 관찰했어요. 뒤보셰 교수의 냉각법과 프랑크 교수의 소프트웨어를 바탕으로 헨더슨 교수는 1990년 처음으로 극저온 전자현미경을 이용해 아주 뚜렷한 단백질 이미지를 얻는 데 성공했지요. 헨더슨 교수는 이후에도 꾸준히 극저온 전자현미경의 성능을 개량하는 연구를 진행해 극저온 전자현미경의 대부(代父)로 불린답니다.

세 사람의 노력으로 극저온 전자현미경은 오늘날 생체 물질을 관찰하는 가장 정확한 도구로 손꼽히고 있어요. 생체 물질의 구조를 정확히 파악해야만 그 물질을 정확히 조절하고 통제할 수 있는데요. 나쁜 바이러스가 어떻게 생겼는지를 잘 알아야 공격할 부위를 결정하고 무력화시킬 수 있기 때문이죠. 실제 과학자들은 극저온 전자현미경을 활용해 지난해 전 세계를 떠들썩하게 했던 지카 바이러스(신생아 소두증 등을 유발하는 것으로 알려진 바이러스)의 3D 이미지를 만들었고 현재 그 치료제가 만들어지고 있답니다.

 

 

송준섭 과학 칼럼니스트 기획·구성=박세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