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아하! 이 식물] 가을 전하는 은빛 물결… 갈대·달뿌리풀과 형제예요

입력 : 2017.10.17 03:09

억새

억새
/최새미
갑자기 날씨가 추워졌어요. 이런 날 높은 곳 넓은 들판에 이르면 은빛으로 반짝이는 '억새〈사진〉'를 만날 수 있답니다. 마치 금빛 바다에 하얀 파도가 일렁이는 것 같은 수려한 가을 풍경을 느낄 수 있어요. 억새는 넓게 집단을 이뤄 살고 있는데, 서늘하게 불어오는 가을 바람에 자신의 몸 줄기를 차르르 흔들어요. "으아~ 으악새 슬피우니 가을인가요" 하는 옛 가요 가사 중 으악새가 새의 이름이 아니라 억새를 뜻하는 사투리라는 주장이 많을 정도로 스치는 소리가 구슬퍼요.

이처럼 억새는 우리나라 고유의 가을 풍경을 만들어주는 벼과(科) 식물이에요. 우리나라와 일본, 중국 일부 지역에서만 만날 수 있는 자생종이랍니다. 메마르고 볕이 적은 척박한 환경에서도 쉽게 번식하고 빨리 자라요.

억새는 키가 2m까지 자라는 기다란 풀이에요. 매년 9월 말이면 사람 손바닥보다 큰 새하얀 꽃을 피워 가을이 왔음을 알려요. 하얀 털이 붙은 작은 꽃들이 촘촘히 모여 커다란 꽃이삭(벼과 식물에서 꽃이 피고 열매가 열리는 끝부분)을 이루는데, 이때 억새꽃은 하얗다기보다는 자줏빛에 가까워요. 하늘을 향해 꼿꼿하게 머리를 세웠다가 벼처럼 고개를 점점 숙이며 은빛으로 변한답니다. 이때는 줄기도 황톳빛으로 말라 하얀 꽃이 더욱 쓸쓸하게 느껴지지요.

억새는 갈대·달뿌리풀과 비슷하게 생겼어요. 흔히 사는 곳을 기준으로 산에서 만나면 억새, 강가에서 만나면 갈대, 냇가에서 만나면 달뿌리풀로 구별하기도 하지만, 사실 물가에 사는 '물억새'도 있어 자세히 모습을 살펴봐야 해요.

억새의 꽃이삭은 부채처럼 생기고 색깔도 자줏빛 또는 은빛이지만, 갈대의 꽃이삭은 원뿔 모양이고 갈색에 더 가까워요. 또 억새의 줄기는 속이 차 있지만, 갈대 줄기는 속이 비어 있지요. 달뿌리풀도 이들과 비슷하게 생겼는데, 꽃이삭이 억새나 갈대에 비해 엉성하고 휑해 대머리 직전처럼 보여요.

지금은 우리 주변에서 흔히 만날 수 있는 억새이지만, 옛날에는 나름대로 의미있는 식물이었답니다. 억새 뿌리는 겨울에 채취해 약으로 썼고, 줄기와 잎은 가축에게 사료로 주거나 지붕을 단단하게 잇는 끈으로 사용했어요. 꽃이 떨어진 후엔 한데 묶어서 빗자루로 쓰기도 했고요.

최근 억새는 강한 생명력과 빠른 성장 속도 때문에 새로운 에너지원으로 주목받고 있답니다. 억새를 잘라 납작하게 눌러서 주택과 비닐하우스 등에서 난방용 연료로 만드는 거죠. 또 억새에서 섬유질만 추출해 친환경 에너지인 바이오 에탄올을 생산하기도 해요.

매년 10월 중순이면 서울 하늘공원을 비롯해 명성산, 천관산, 민둥산 등에서 억새 축제가 열려요. 또 한강 주변 근린공원에서도 억새를 쉽게 만날 수 있어요. 이번 주엔 가족·친구와 함께 억새밭을 찾아 가을 정취에 한껏 빠져들어 보는 건 어떨까요?


최새미 식물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