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이명옥의 명작 따라잡기] 쇼핑, 내가 산 물건들이 나를 말해준대요

입력 : 2017.10.14 03:07 | 수정 : 2017.10.16 10:48

[미술 작품 속 '쇼핑']

쇼핑의 의미 다양하게 표현한 작가들… 드가는 소비욕 빠진 신흥 부자 그렸죠
과소비 비판, 시대상·행복감 표현 등 물건 사는 행위에 대한 해석 보여줘요

영어로 '물건을 사는 행위'라는 뜻을 가진 쇼핑(shopping)은 일상생활에서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어요. 대부분 실용적인 목적으로 쇼핑하지만 때로는 즐거움을 위해 쇼핑하기도 해요. 그래서 인간은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늘 쇼핑하는 존재라는 말도 생겨났어요.

프랑스 화가 에드가르 드가(1834~1917)는 부유한 시민 계급(부르주아)의 쇼핑 문화를 작품1에 담았어요.

작품1 - 에드가르 드가, 모자 가게, 1882.
작품1 - 에드가르 드가, 모자 가게, 1882.

한 여성이 모자 가게에서 쇼핑하는 장면입니다. 화려한 꽃 장식의 최신 유행 모자를 써보고 있는 고객은 18세기 말 프랑스대혁명 이후 자본력을 바탕으로 신흥 부자가 된 시민 계층(부르주아) 여성입니다. 당시 파리 시내에는 유행 상품을 파는 상점들이 줄지어 문을 열었어요. 나폴레옹 3세 때 파리 지사로 임명된 오스만 남작에 의해 대대적인 도시 재개발이 이뤄진 이후 중앙 거리가 번화한 쇼핑가로 변모한 거죠. 상점에 진열된 고급 상품은 시민들의 소비 욕구를 자극했어요.

새롭게 생겨난 쇼핑 명소와 쇼핑객으로 붐비는 상점 풍경은 도시민의 일상생활에 관심이 많았던 드가에게 창작의 영감을 주었어요. 드가는 근대화된 도시와 쇼핑의 달콤한 유혹을 모자 가게 그림에 담은 겁니다. 패션 모자를 사고 싶은 소비자의 욕구를 실감 나게 표현하려고 상점 유리창 바깥에서 안을 들여다보는 구도를 선택했어요. 마치 그림을 감상하는 관객이 쇼핑객 입장에서 상점을 들여다 보는 듯한 느낌이 들도록 말이죠. 이 작품은 부르주아 계층 여성이 소비문화를 이끄는 새로운 세력으로 등장했다는 사실을 알려줍니다.

미국 조각가 두에인 핸슨(1925~1996)은 현대인의 과소비 문화를 작품2에 표현했어요.

작품2 - 두에인 핸슨, 수퍼마켓 레이디, 1969~1970.
작품2 - 두에인 핸슨, 수퍼마켓 레이디, 1969~1970.

중년 여성이 밀고 가는 쇼핑용 손수레(카트)를 살펴보세요. 쇼핑 카트에 물건이 가득 쌓였어요. 두에인 핸슨은 왜 과소비하는 여성을 조각에 표현했을까요? 불필요한 소비를 부추기는 잘못된 사회 풍조가 충동적으로 물건을 사는 구매자, 병적으로 물건을 많이 사는 쇼핑 중독자를 만들어냈다고 경고하는 겁니다.

이 인물 조각은 살아 있는 모델의 몸을 석고·왁스 등으로 직접 본뜬 뒤 떼어내는 '라이프 캐스팅' 기법으로 매우 사실적으로 조각됐어요. 조각상이 입은 옷과 신발, 장신구, 소품, 쇼핑 카트도 실제 물건들이에요. 게다가 실물 같은 조각상을 좌대(조각품을 얹어놓는 받침대)가 아닌 전시장 바닥에 놓았어요. 관객이 조각상을 수퍼마켓에서 물건을 산 소비자로 착각하도록 말이죠. 바로 자신의 경제적 능력을 넘어서는 쇼핑은 현명한 소비가 아니라는 점을 일깨워주기 위해서입니다.

한국의 여성 조각가 김경민은 착한 소비, 행복한 쇼핑을 작품3에 담았어요. 자전거를 타고 집으로 가는 가족을 조각한 이 작품은 김경민표 조각상의 특징이 잘 나타나 있어요. 그것은 평범한 시민의 일상생활을 이야기로 전달하는 스토리텔링과 가늘고 긴 팔다리를 가진 인체 표현, 밝고 화사한 색을 사용해 유쾌하게 연출하는 기법을 말해요.

작품3 - 김경민, 집으로Ⅱ(go home), 2015.
작품3 - 김경민, 집으로Ⅱ(go home), 2015.

이 가족상은 한눈에도 단란하고 행복해 보입니다. 자전거를 타는 아빠도, 뒷자리에 앉은 엄마도, 아빠 어깨에 목말을 탄 어린 딸도 모두 기쁜 표정을 짓고 있거든요. 특히 자전거 짐받이에 실린 선물 꾸러미는 가족 나들이가 무척 즐거웠다고 알려줍니다.

실제로 심리학자들은 쇼핑이 기분을 좋게 하는 효과가 있다고 말합니다. 필요한 물건이나 마음에 드는 상품을 샀을 때 만족감이 높아진다고 해요. 행복한 쇼핑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가족상은 쇼핑의 긍정적인 면을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가 되겠어요.

미국의 여성 작가 바버라 크루거에게 쇼핑은 개인의 정체성을 의미합니다. 작품4의 흑백사진에 누군가의 오른손이 나타났어요. 화면을 가득 채운 커다란 손은 붉은 글귀가 적힌 흰색 사각형 판을 정면으로 보여주고 있어요.

작품4 - 바버라 크루거, 무제(I shop therefore I Am), 1987.
작품4 - 바버라 크루거, 무제(I shop therefore I Am), 1987.
바버라 크루거는 왜 광고판처럼 느껴지는 작품을 만들었을까요? 또 17세기 프랑스 철학자 데카르트의 명언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에서 따온 글귀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쇼핑이 단순히 물건을 사는 행위가 아니라 한 개인의 성격, 가치관, 취향, 욕구 등을 나타낸다는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서예요. 누군가가 산 물건은 그가 누구인지, 무엇을 필요로 하고 또 원하는지 알려주거든요. 즉 나 자신도 잘 모르는 나의 존재를 쇼핑이 대신 말해준다는 뜻이죠. 바버라 크루거는 쇼핑이 정체성을 발견하는 행위라는 작품 의도를 강조하고자 독특한 기법을 개발했어요. 그래픽디자이너로 활동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사진과 문장을 조합해 작품을 구성했어요. 강렬한 색상의 문장을 활용한 것은 관객의 눈길을 집중시키는 가장 강력하고, 경제적이고, 효과적인 수단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지금껏 쇼핑이 주제인 작품들을 감상했어요. 이번 기회에 나는 어떤 물건을 샀고 왜 구입했는지, 그 물건이 나 자신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 생각해보는 시간을 갖도록 하세요.


이명옥 사비나미술관장 기획·구성=박세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