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이 주의 책] 비겁하고, 탐욕스럽고… 신화엔 없는 '트로이 전쟁' 이야기

입력 : 2017.10.13 03:13

일리아스

그리스 신화 속 영웅 아킬레우스의 무용담, 오디세우스가 꾀를 낸 트로이의 목마 이야기를 들어본 적 있나요? "호메로스가 쓴 대서사시 '일리아스' 이야기"라는 답이 들려오는 듯 하네요. 그럼 지금부터 참·거짓 질문을 몇 개 해볼게요. 다음 내용 중 '일리아스'와 관련해 맞는 설명은 몇 개일까요?

"일리아스는 트로이 함락으로 끝난다"/ "아킬레우스는 발뒤꿈치를 제외하면 천하무적이다"/ "일리아스는 트로이 전쟁 10년사를 다룬다"/ "그리스 최고의 미녀 헬레네가 트로이로 떠난 이유가 밝혀진다"

[이 주의 책] 비겁하고, 탐욕스럽고… 신화엔 없는 '트로이 전쟁' 이야기
/살림
정답은 '없다'입니다. '일리아스'는 트로이가 그리스군에 함락되는 모습을 그리지 않아요. 트로이의 목마도 나오지 않지요. 아킬레우스가 발뒤꿈치의 약점만 빼면 불사신이라는 설정도, 뒤꿈치에 화살을 맞는 장면도 나오지 않아요. '일리아스'와 '그리스 신화'를 혼동할 때 벌어지는 착각이랍니다.

고대 그리스 시인 호메로스가 지은 '일리아스'는 기원전 1250년쯤 실제 있었던 '트로이 전쟁'을 소재로 했어요. 그리스 연합군과 트로이 왕국이 10년에 걸쳐 싸웠고, 마침내 그리스군이 승리했다는 전쟁이지요. 트로이 전쟁이 끝나고 약 500년이 지나서 호메로스는 인간과 신이 함께 트로이 전쟁에 참여했을 것이라 상상해 '일리아스'를 지었어요.

그리스 신화와는 사뭇 다른 영웅·신들의 모습에 놀랄 수도 있을 거예요. 신화에선 외모가 뛰어나면 성품도 완벽한 것처럼 묘사하지요. '일리아스'는 그렇지 않아요. 미모를 자랑하는 헬레네 왕비는 전쟁의 원인을 제공하고선 두 남자(남편인 메넬라오스 왕과 애인인 파리스 왕자) 사이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여성이에요. 트로이 왕자이자 뛰어난 미남인 파리스는 헬레네를 그리스로 데려오면서 조국을 위기로 몰아넣지만, 책임감은 찾아보기 어렵지요. 결투에서 패배하면 헬레네를 그리스군에 돌려주겠다고 하고서 끝내 약속을 지키지 않고요.

그런가하면 그리스군 최고 지휘관인 아가멤논은 탐욕적이고 권위적이에요. 그리스군 최고 장수인 아킬레우스를 상대로 자존심 싸움을 한 끝에 아킬레우스가 기분이 상해 전장에서 이탈하게 하죠. 아킬레우스는 아가멤논의 말을 따르기 싫다면서 동료 전사들이 목숨을 잃는데도 그저 지켜보기만 해요. 신화 속 완벽한 영웅들과 달리 평범한 인간으로서 그려지는 거죠. '일리아스'는 인간적이기에 더욱 위대한 영웅들의 모습을 보여준답니다.

사실 분량이 상당해요. 천병희 선생이 그리스어 '일리아스'를 한글로 온전히 옮긴 책은 800쪽이 넘어요. 그래도 내용을 짧게 줄인 축약본도 많답니다. 최근에는 한국문학번역원장을 지낸 진형준 홍익대 문과대학장이 '일리아스'를 새로 번역하기도 했어요.


양지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