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숨어있는 세계사] 이슬람 최초의 쿠데타는 여성이 주도했어요
[이슬람 여성 인권]
7세기 무함마드, 女 베일 착용 요구… 성차별 관습 천년 넘게 이어졌지만
사우디 "여성운전 허용" 발표하는 등 최근 들어 여성 인권 개선되고 있죠
이슬람 국가인 사우디아라비아가 그동안 사실상 금지했던 여성의 자동차 운전을 허용하기로 했어요. 사우디아라비아의 살만 빈 압둘아지즈 국왕이 최근 칙령을 발표하고 내년 6월부터 여성들에게도 자동차 운전면허증을 발급하도록 한 거예요.
사우디는 지금까지 세계에서 유일하게 여성이 자동차 운전을 하지 못하는 나라였어요. 여성 운전을 금지하는 법은 없지만, 여성에게 운전면허증을 주지 않는 방법으로 여성 운전을 막아왔죠. 이는 남성과 여성을 격리해 궁극적으로는 여성의 정치·사회 진출을 제한하려는 성(性)차별적 이슬람 관습에서 비롯된 것이랍니다. 그렇다면 이슬람 문화에서는 어떻게 여성 활동을 제약하게 된 걸까요?
◇'여장부'의 남편이던 무함마드
이슬람교의 창시자이자 예언자인 압둘 와하브 무함마드(570~632)에게는 여러 배우자가 있었어요. 그중 첫째인 하디자는 부유한 상인의 딸로 이미 두 번이나 결혼한 40대 과부(寡婦·남편을 잃고 혼자 사는 여자) 사업가였답니다. 하디자는 자신의 종업원이었던 스물다섯 살 청년 무함마드의 비범함을 알아보고 뒷조사까지 한 다음 먼저 청혼해서 결혼한 과감한 여인으로 평가받습니다.
무함마드는 아내의 탄탄한 재력을 바탕으로 아무런 생계 걱정 없이 히라산(山) 동굴에 들어가 명상 생활을 시작합니다. 무함마드는 오랜 수련 끝에 대천사(大天使) 가브리엘을 통해 알라의 계시를 받게 됐다고 해요. 무함마드는 이 계시를 여러 사람에게 전파하기 시작했고, '알라 외에는 신이 없다'는 유일신 신앙을 굳게 믿게 됩니다. 이런 무함마드의 말을 적은 게 이슬람교의 경전인 '코란'이죠.
- ▲ 세계에서 유일하게 여성의 자동차 운전을 금지해왔던 사우디아라비아 정부가 내년부터 여성의 자동차 운전을 허용하기로 했어요. 사진은 2014년 사우디 수도 리야드의 한 고속도로에서 여성의 운전할 권리를 주장하며 여성 운동가들이 캠페인을 벌이는 모습이에요. /AP 연합뉴스
무함마드는 약 20년간 하디자와 살면서 둘째 아내를 들이지 않았어요. 하디자가 죽은 후에야 새로운 아내들과 가정을 꾸렸죠. 이렇듯 초기 이슬람 사회는 우리가 지금 아는 것처럼 가부장적 관습이 깊게 뿌리내리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어요.
그런데 점점 분위기가 바뀌기 시작합니다. 무슬림(이슬람교 신자) 여성들이 자기 얼굴과 신체를 가리는 베일을 쓰기 시작한 거죠. 사실 베일은 그리스·로마 시대에도 볼 수 있었던 풍습입니다. 예수의 어머니인 성모 마리아가 베일 같은 것을 머리에 쓰고 있었던 것만 봐도 알 수 있죠. 그런데 이를 여성의 정조를 상징하는 도구로 활용한 건 이슬람 시대부터랍니다.
628년 무함마드는 아내들에게 모두 베일을 쓰라고 요구합니다. 베일을 착용함으로써 다른 남성들을 향한 신체 노출을 최소화하고, 그 여성이 결혼을 했는지 안 했는지, 또 는 어느 집안 여성인지 보여줘 남성들이 함부로 그 여성을 대할 수 없도록 한 것이죠. 또 무함마드 스스로 여러 배우자를 뒀듯, 한 남성이 아내를 많게는 넷을 둘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을 '코란'에 명시합니다. 일부다처제(一夫多妻制·한 남성이 아내를 동시에 둘 이상 갖는 혼인 형태)가 이슬람 사회에서 일반적 결혼 형태로 자리 잡아가기 시작한 것이에요.
◇'낙타 전투'의 주인공은 여성
재미있는 건 무함마드의 셋째 아내였던 아이샤가 아주 주체적인 성격의 여장부였다는 사실입니다. 아이샤는 평소 남편 무함마드와 수많은 전투에 동행했고, 심지어 낙타를 하도 험하게 몰아 무함마드에게 자주 핀잔을 들었다고 전해져요. 나아가 무함마드가 사망하고 난 다음인 656년 벌어진 '낙타 전투(이슬람 최고 지도자 알리와 그 반대 세력인 아이샤 간 전쟁)'에도 직접 참여해 이슬람 최초의 '정변(政變·혁명이나 쿠데타 등으로 발생한 정치적 큰 변화)'을 주도하기도 했답니다. '낙타 전투'라는 이름 역시 아이샤가 낙타를 몰고 전장에 나가 군사들을 독려했기 때문에 붙은 이름이에요.
하지만 반(反)알리 세력이 낙타 전투에서 패배하자 남자들은 아이샤에게 책임을 돌립니다. 아이샤의 정치적 무능과 미숙한 행동 때문에 전쟁에서 졌다는 주장이었죠. 이 때문에 무슬림 사이에서 여성의 정치 참여를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인식이 확산됩니다. 실제 낙타 전투 이후 무슬림 여성의 정치적 참여나 사회적 활동이 엄격히 제한되죠.
물론 이런 몇 가지 사례가 이슬람 사회에 성차별적 관습이 뿌리내리게 된 배경을 모두 설명할 순 없을 거예요. 그러나 이런 사건들이 당시 이슬람 정치·경제적 상황과 맞물리면서 가부장적 문화를 만들어내기 시작한 것이랍니다. 여성을 정치·사회에서 격리하는 관습은 거대 이슬람 제국이던 오스만 제국 말기인 20세기 초까지 이어지죠.
약 1200년 넘게 이어져 온 가부장적 문화에 균열을 낸 건 터키의 국부(國父·국민에게 존경받는 위대한 지도자)로 불리는 무스타파 케말(Mustafa Kemal·1881~1938)이랍니다. 무스타파 케말은 20세기 초 기울어가던 오스만 제국의 개혁을 이끌어 지금의 터키 공화국을 출범시킨 터키 초대 대통령이에요. 그는 1935년 여성의 베일 착용을 금지하고 여성에게 불리했던 이혼법과 상속법 등을 개정해 여성의 지위를 높이고자 노력합니다.
그런데 일부 전통주의자는 이런 개혁이 '서구 문화=진보'라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지나치게 급진적으로 추진됐다는 비판을 하기도 합니다. 무슬림 여성들이 베일을 착용한 건 이슬람 공동체 안에서 그 나름대로 합리적 '선택'일 수 있다는 주장이죠. 그래서 여전히 터키·유럽 등에서는 이슬람식 베일을 고수하는 무슬림 여학생과 베일을 쓰지 못하게 하는 정부 간 갈등이 불거지기도 한답니다.
이번에 사우디 정부가 여성의 운전을 허용한 것은 모하마드 빈살만 왕세자가 추진하는 개혁안에 따른 것입니다. 이 개혁안은 탈(脫)석유 시대를 대비해 여성의 사회 활동을 확대할 수 있도록 하고 있죠. 변화하는 시대에 사우디도 여성 노동력이 필요하다는 얘기이기도 합니다.
☞이슬람 여성들이 착용하는 베일
부르카(Burka)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모두 가리고 눈 부위도 망사로 덮는 복장이에요. 니캅(Niqab)은 눈은 내놓고 나머지 신체를 가리는 옷이고, 차도르(Chador)는 얼굴은 드러내되 나머지를 가리는 옷이에요. 히잡(Hijab)은 가장 대중적인 이슬람 전통 의상으로 머리카락과 목 등을 감싸는 일종의 헤어 스카프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