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아하! 이 음식] 소금 간해 말린 조기… 유배 가서 왕에게 올렸다는 별미

입력 : 2017.10.10 03:07

굴비

조기를 소금 간해 말린 굴비는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생선 중 하나예요. 조선 영조 때 언어학자 황윤석이 쓴 '화음방언자의해(華音方言字義解)'에는 조기를 머릿속에 단단한 돌 같은 뼈가 있다고 해서 석수어(石首魚)라 불렀어요. 많은 사람이 조기를 사람의 기운을 돋우는 생선으로 생각했죠.

조기는 고온다습한 시기 전라남도 지방에서 대량으로 잡히기 때문에 쉽게 상하고 보관이 어려워요. 이 때문에 고려시대부터 소금으로 절여 염건품(鹽乾品) 형태로 가공하는 방법이 발달했죠. 조기의 몸 전체와 아가미에 소금을 뿌린 뒤 항아리에 담아 이틀쯤 절이고, 보에 싸서 하루쯤 눌러 놓았다가 뻣뻣할 때까지 잘 건조하면 맛과 향이 좋은 굴비가 만들어져요.

참조기를 보리쌀에 넣어 숙성한 보리굴비.
참조기를 보리쌀에 넣어 숙성한 보리굴비.

굴비가 유명해진 데에는 재미있는 일화가 있어요. 고려 인종(1109~1146) 때 문신이자 왕의 외척이던 이자겸(李資謙)이 반란을 일으키려다 실패한 사건이 있었는데요. 이자겸이 전남 영광의 정주(지금의 법성포)로 귀양을 가서 영광굴비를 먹어보고 그 맛에 감탄했다고 해요. 이자겸은 영광굴비를 인종에게 올리면서 자기 뜻을 굽히지 않겠다는 의미로 '굴비(屈非)'라는 글자를 써서 보냈죠. 이때부터 영광굴비가 임금님 수라상에 올라가게 됐고 일반에도 널리 알려졌다는 이야기가 전해져요.

굴비는 여러 종류의 조기로 만들 수 있지만 참조기로 만든 걸 제일로 쳐요. 산란을 위해 3월 중순 전남 영광 법성포 칠산 앞바다에 모인 참조기를 잡아서 소금 간해 말린 굴비를 영광굴비라 하죠. 영광 지역에는 "돈 실러 가세. 영광 법성으로 돈 실러 가세"라는 뱃노래가 있을 정도로 참조기 어업이 성행했어요. 지금은 참조기가 칠산 앞바다에서 잘 잡히지 않아 다른 지역에서 잡힌 참조기를 영광에서 말린 굴비가 대부분이에요.

보리굴비는 1년 이상 해풍(海風)에 말린 참조기를 보리쌀이 담긴 항아리에 넣어 숙성시킨 굴비예요. 이렇게 하면 굴비가 보리 향을 흡수해 비린내가 없어져요.

잘 숙성된 보리굴비는 아주 단단하기 때문에 보자기에 싸서 방망이로 두드린 후 꼬리 부분부터 쭉쭉 찢어 먹어야 맛있어요. 특히 여름철 차가운 녹차에 밥을 말아 보리굴비 살점을 얹어 먹으면 잃었던 입맛이 돌아올 정도로 맛있답니다.

굴비는 양질의 단백질과 비타민 A·D가 풍부해 야맹증과 피로 해소에 도움이 돼요. 지방질이 적고 소화가 잘돼 노인에게 좋은 음식이죠. 구이, 탕, 조림, 찜 등 다양한 조리가 가능한데, 칼집을 넣은 굴비를 간장 양념에 재운 다음 석쇠에 구운 굴비구이가 유명해요. 굴비 매운탕도 별미인데, 다른 생선에 비해 비리기 때문에 생강즙과 청주로 비린 맛을 잡아줘야 하고 내장을 잘 제거해야 쓴맛을 줄일 수 있답니다.

박현진 고려대 식품공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