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아하! 이 장소] 신대륙-유럽 잇던 관문… 시간 멈춘 듯한 '세계문화유산'

입력 : 2017.10.03 03:07

쿠바 아바나

아바나 시내 모습.
아바나 시내 모습. /조선일보DB
얼마 전 초강력 허리케인 '어마(Irma)'가 카리브해를 덮쳤어요. 쿠바 수도인 아바나(Habana)가 아주 큰 피해를 입었죠. 엄청난 비로 도시 곳곳이 물에 잠겼고, 해안가에 줄지어 서 있던 일부 리조트도 강풍에 무너져 내렸어요. 1932년 이후 가장 강력한 허리케인을 만난 아바나는 복구를 위한 재정이 부족한 상황이라고 외국 언론들은 전하고 있어요.

아바나는 카리브해에서 가장 큰 항만 도시예요. 원주민이던 타이노족의 추장 아바구아넥스에서 이름을 따왔죠. 1492년 타이노족이 살던 땅(지금의 쿠바)에 탐험가 크리스토퍼 콜럼버스가 도착해요. 금과 향료가 가득한 신대륙을 찾던 콜럼버스는 쿠바를 '이제까지 본 곳 중 가장 아름다운 땅'이라고 외쳤다고 해요. 곧이어 스페인이 이 지역을 점령하죠.

신대륙 진출을 위한 기지가 필요했던 스페인은 아바나를 건설합니다. 이후 아바나는 아메리카와 유럽, 아프리카를 연결하는 무역의 중심지로, 아메리카 내에선 식민지 간 주요 항구를 잇는 거점으로 성장했답니다.

아바나가 전략적 요충지로 선택된 건 북대서양 해류 때문이에요. 북대서양 해류는 시계 방향으로 순환하는데, 멕시코만에서 생성된 난류인 멕시코만류를 이용하면 아메리카 대륙에서 유럽까지 손쉽게 갈 수 있었거든요. 아바나는 카리브해 여러 항구 가운데 아메리카 대륙과 유럽 대륙을 왕복하는 시간이 가장 짧은 항구였죠.

많은 선박이 유럽으로 가는 지름길로 가기 위해 아바나에 집결했어요. 진기한 상품들, 식민지에서 채굴한 은(銀) 등이 아바나를 통해 스페인에 실려갔죠. 이 선박들은 당시 카리브해 해적들의 주요 공격 대상이었기 때문에 스페인은 플로타(flota)라고 하는 호송 전함 체제를 운영했어요. 스페인으로 가는 선박들을 한데 모아 스페인 해군의 호위를 받으며 대서양을 건너는 시스템이었어요.

380년 넘게 스페인 지배를 받던 쿠바는 1898년 미국의 도움을 받아 독립해요. 쿠바 공화국이 건설되자 아바나는 수도가 됩니다. 그 후 60년간 미국 기업과 관광객들이 아바나로 몰려들었고, 아바나는 미국 여느 도시 모습을 닮아가요. 특히 1920년대 미국에서 금주법(禁酒法)이 시행되면서 술과 향락을 찾는 미국인들이 아바나를 많이 방문했어요. 하지만 피델 카스트로와 체 게바라 등 혁명가들이 1959년 사회주의 혁명을 성공하면서 아바나의 성장은 잠시 멈춥니다.

최근 아바나는 관광업을 중심으로 새로운 성장을 꾀하고 있어요. 공원과 광장, 유적지 등이 몰려 있는 올드 아바나(Old Havana) 지역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돼 전세계 관광객들을 끌어모으고 있어요. 콜럼버스의 유해가 묻혔던 성 크리스토발 대성당을 비롯해 시간이 멈춘 듯한 옛 시가지, 바로크 양식의 오래된 건물들, 독특한 영감을 주는 쿠바 예술도 만날 수 있어요. 아바나가 허리케인의 아픔을 딛고 다시 일어서길 바라요.

박의현 창덕중 지리 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