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클래식 따라잡기] 베토벤 '고별'… 천재가 친구에게 준 감사의 노래
[헌정곡(獻呈曲)]
슈만·브람스·디트리히 공동 작업곡, 최고 바이올리니스트 위해 바쳤죠
쇤베르크 제자 베르크, 생일 선물로 파격 '12음기법' 협주곡 작곡했어요
추석 연휴가 바로 코앞이네요. 이번 연휴는 길어서 오랫동안 만나지 못했던 가족과 친지를 만나 즐길 수 있는 시간이 충분해 더욱 설렙니다. 멋진 가을 풍경과 맛있는 음식이 함께하는 한가위, 우리가 지녀야 할 가장 중요한 마음은 '감사'이겠죠.
음악가들도 그들이 가진 가장 소중한 보물인 음악 작품들로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했답니다. 이를 '헌정곡(獻呈曲·다른 사람에게 선물하는 곡)'이라고 해요.
◇베토벤, 격렬한 감정을 담다
누구도 생각지 못한 실험 정신으로 탁월한 작품을 만들어온 베토벤(1770~1827)도 한결같은 마음으로 작품을 후원하고 응원해주는 사람들이 곁에 있었죠. 그중 가장 오랫동안 베토벤을 후원한 사람은 루돌프 대공이었습니다.
루돌프 대공은 오스트리아 황제 레오폴드 2세의 막내아들이에요. 10대 때부터 20년 가까이 베토벤에게 작곡과 피아노를 배우며 가까워졌죠. 음악을 통해 둘도 없는 친구가 된 루돌프 대공과 베토벤은 전쟁 때문에 잠시 떨어져 있게 돼요. '나폴레옹 전쟁'이 한창이던 1809년 프랑스군이 오스트리아 빈을 침공했기 때문이죠. 루돌프 대공은 피란을 떠났고, 빈에 남게 된 베토벤은 떠나간 친구를 생각하며 피아노 소나타 26번 '고별'을 만듭니다.
- ▲ 루돌프 대공, 루트비히 판 베토벤. /위키피디아
모두 세 악장으로 구성된 이 곡은 베토벤이 만들었던 기존 피아노 소나타와는 차이가 있었어요. 베토벤의 기존 소나타가 절대음악, 즉 음(音) 자체에 의미를 두고 음과 음의 조합을 통해 아름다운 선율을 내는 데 집중했다면 '고별' 소나타는 친구를 잃은 허무함, 친구에 대한 그리움, 친구를 다시 만난 기쁨 등 인간의 감정을 격렬하게 묘사한 작품이랍니다. 그가 느낀 적나라한 감정이 마치 오페라나 문학작품 줄거리처럼 표현되어 있는 거죠.
베토벤이 악장마다 붙인 제목도 '고별'(1악장), '부재(不在·2악장)'인데 루돌프 대공이 무사히 돌아오자 베토벤은 뛸 듯한 기쁨을 '재회'(3악장)에서 묘사합니다.
세 사람이 힘을 합쳐 고마움을 표현한 재미있는 음악 작품도 있답니다. 'F.A.E. 소나타'라는 독특한 제목의 작품인데요. 당대 유명 작곡가였던 디트리히, 슈만, 브람스가 한 악장씩 만들어 1853년 완성한 바이올린 소나타예요.
세 사람은 당시 최고 바이올리니스트였던 요제프 요아힘(1831~1907)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담아 이 작품을 만든 거죠.
세 사람이 한 악장씩 맡은 덕에 한 곡 안에서 세 작곡가의 뛰어난 개성을 모두 느낄 수 있어요. 1악장은 화려한 스케일을 자랑하는 디트리히가, 2악장과 4악장은 서사적이고 문학적인 작품을 만들어온 슈만이, 3악장은 엄격한 형식주의를 추구해온 브람스가 만들었답니다.
그 중 브람스가 만든 3악장 '스케르초'는 특히 유명해서 지금도 많은 연주자가 무대에 올리는 명곡이 됐어요.
그렇다면 'F.A.E.'는 무슨 뜻일까요? 독일어 'Frei Aber Einsam'의 앞 글자만 딴 것인데, '자유롭게 그러나 고독하게'라는 뜻이에요. 요아힘이 즐겨 쓰던 격언(格言)이죠. 세 작곡가는 이 알파벳들이 악보에서 의미하는 음인 파(F)-라(A)-미(E)를 각 악장의 첫머리마다 배치하는 재치를 선보이기도 했답니다.
◇파격 담아 고마움 표현하기도
스승에 대한 감사를 담은 곡도 있어요. 20세기 초 오스트리아 빈을 중심으로 활약했던 아널드 쇤베르크, 안톤 베베른, 알반 베르크 등 세 사람은 '신(新) 빈 악파'라고 하는 작곡가들이었는데요. 신 빈 악파는 조성(調性)과 화음을 중시했던 기존 작곡 기법을 깨고 어떤 음이 지배적인 으뜸음인지 알 수 없도록 하는 파격적인 방법으로 곡을 만들었답니다.
예를 들어 도·레·미·파·솔·라·시 중 어느 특정한 음을 많이 써서 화음과 분위기를 만드는 게 기존 작곡 방식이었다면, 신 빈 악파는 한 곡 또는 한 악장에 모든 음을 똑같은 횟수로 사용해 조성과 화음을 없애는 실험을 한 거죠. 이를 '12음 기법'이라고 해요.
- ▲ 오스트리아 작곡가 아널드 쇤베르크(오른쪽)와 제자인 알반 베르크. 베르크는 스승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담아 쇤베르크의 생일 선물로 ‘실내 협주곡’을 작곡했답니다. /게티이미지코리아
이 곡은 모두 세 악장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피아노가 주로 활약하는 1악장은 '우정', 바이올린이 홀로 연주하는 2악장은 '사랑', 두 악기와 관악기가 모두 합세하는 3악장은 '세계'예요. 부제 역시 두 사람의 음악관과 영감의 교류를 표현하고 있어요.
위대한 작곡가의 작품은 언제 들어도 훌륭해요. 하지만 정성껏 써 내려간 작품 속에 숨어있는 사랑과 우정, 존경의 마음을 발견하게 되면 지금 듣는 음악이 더욱 특별하게 다가올 것 같아요. 아름다운 계절, 작곡가들이 선물하려 했던 아름다운 마음을 한번 느껴보는 건 어떨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