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아하! 이 식물] 여름내 100일간 개화… 기후변화로 서울서도 잘 자라죠
입력 : 2017.09.26 03:11
배롱나무
- ▲ /김민철 기자
배롱나무는 여름의 시작과 끝을 알리는 나무예요. 꽃은 한번 피면 열흘 정도 후에 떨어지지만 뜨거운 여름 내내 끊임없이 새로운 꽃망울을 틔워요. 이렇게 초여름인 7월부터 늦여름인 9월까지 100일 동안 꽃을 피운다고 배롱나무의 꽃을 '백일홍'이라고 부른답니다. 국화과에 속하는 한해살이풀인 백일홍과 구분해서 '목백일홍' '백일홍 나무' 등으로도 부르죠. 백일홍 나무에서 일부 발음이 탈락해 지금의 배롱나무가 됐다는 설명도 있어요.
배롱나무 줄기와 가지가 자라는 모습은 참 멋있는데요. 거칠고 두꺼운 나무껍질을 가지고 있는 다른 나무와 달리 배롱나무 나무줄기는 껍질이 얇아 매끈한 담갈색을 자랑한답니다. 이 때문에 일본에서는 배롱나무를 가리켜 '원숭이가 미끄러지는 나무'라고 부르기도 해요. 배롱나무 키는 최대 5m로 비교적 작은 편이지만, 가지는 사방으로 구불구불하게 뻗어있어 초라하지 않아요. 매끈한 줄기와 가지가 어우러져 나무 전체를 동그란 모양으로 만든답니다.
이렇게 아름답다 보니 배롱나무는 옛날부터 선비들의 사랑을 듬뿍 받았어요. 조선시대 사육신(단종 복위를 위해 목숨을 바쳤던 6명의 신하) 가운데 한 명인 성삼문은 "지난 저녁 꽃 한 송이 지고, 오늘 아침 꽃 한 송이 피어, 서로 일백일을 바라보니, 너를 대하여 한잔하리라"라는 시를 통해 배롱나무에 대한 애정과 단종에 대한 일편단심을 드러냈답니다. 경상북도 안동 병산서원의 배롱나무는 안동시 보호수로 지정돼 지금까지도 사람들의 아낌없는 사랑을 받고 있죠.
배롱나무는 사실 추위에 약한 대표적인 남방계 식물이에요. 한반도 남쪽인 경상도나 전라도에서 주로 만날 수 있었죠. 실제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배롱나무는 부산시 부산진구 양정동에 있답니다. 나이가 팔백 살이나 돼 1965년 천연기념물 168호로 지정됐어요. 전라북도 남원이나 순창에서는 오래전부터 배롱나무를 가로수로 가꿔 지역의 대표 나무로 지정하기도 했죠.
그런데 최근엔 서울에서도 배롱나무를 쉽게 찾아볼 수 있어요. 기온에 민감한 배롱나무가 서울에 뿌리를 내릴 수 있게 된 이유는 기후변화가 꼽히는데요. 전문가들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평균기온이 지난 100년간 세계 평균기온 상승분보다 두 배나 높은 1.8도가 올랐다고 합니다. 또 식생과 밀접한 나비들 서식지도 매년 북쪽으로 이동했죠. 배롱나무가 살 수 있는 한계선이 북쪽으로 더 넓어졌다는 뜻이에요. 이 때문에 한겨울 나무 밑동에 짚옷만 입혀주면 배롱나무도 서울에서 충분히 추운 겨울을 날 수 있게 됐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