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숨어 있는 세계사] 500년 전 혼인이 이룬 통합… 언어·문화 달라 갈등 쌓여

입력 : 2017.09.21 03:13

[카탈루냐 독립운동]

15세기 왕가 혼인으로 스페인 통일
카탈루냐, 고유 언어·제도 지켰지만 1714년 자치권 빼앗기고 불만 쌓여
내전 등 거치며 자치정부 다시 찾죠
GDP 20% 차지… 독립 욕구 더 커져… 중앙정부 "경제적 타격" 반대해요

지난 11일(현지 시각)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스페인으로부터 독립하겠다"고 주장하는 카탈루냐주(州) 주민들의 대규모 집회가 있었어요. 카탈루냐주는 스페인의 17개 자치주 가운데 하나로, 스페인 최대 산업도시인 바르셀로나가 있는 지역이기도 해요. 카탈루냐주 자치정부는 다음 달 1일 분리 독립을 위한 주민 투표를 시행하고 주민 과반수가 독립에 찬성할 경우 48시간 내에 독립을 선언하겠다고 밝혔는데요. 이에 대해 스페인 중앙정부는 "법적·정치적 수단을 동원해 투표를 막겠다"며 강경한 태도를 취하고 있어요. 스페인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요?

◇결혼으로 시작된 통일, 그러나…

15세기 중반 지금의 스페인은 크게 세 왕국으로 나뉘어 있었어요. 카스티야 왕국과 아라곤 왕국, 그라나다 왕국이었죠. 카스티야와 아라곤은 로마 가톨릭 국가였지만 그라나다 왕국은 이슬람을 믿었어요.

카스티야와 아라곤 왕국은 모두 이베리아 반도에서 이슬람 세력을 몰아내고 싶어 했어요. 그러던 1469년 아라곤의 페르난도 왕자와 카스티야의 이사벨 공주가 결혼하면서 '통일 스페인'의 기초가 만들어집니다. 1479년 페르난도 왕자가 아라곤 왕(페르난도 2세)으로 즉위하면서 두 왕국은 '아라곤·카스티야 연합왕국'이 되죠. 페르난도 2세 ·이사벨 1세 부부는 1492년 무슬림 국가였던 그라나다 왕국을 함락시키고 이베리아 반도를 로마 가톨릭 왕국으로 통일합니다. 이것을 국토회복운동 '레콩키스타(Reconquista)'의 완성이라고 불러요.

내달 1일 스페인 카탈루냐 자치정부의 분리 독립 주민투표를 앞두고 11일 바르셀로나에서 시민들이 카탈루냐 독립기 ‘에스텔라다’를 흔들며 시위를 벌이고 있어요.
내달 1일 스페인 카탈루냐 자치정부의 분리 독립 주민투표를 앞두고 11일 바르셀로나에서 시민들이 카탈루냐 독립기 ‘에스텔라다’를 흔들며 시위를 벌이고 있어요. /연합뉴스

1516년 페르난도·이사벨의 손자 카를로스 1세가 첫 통일 스페인 국왕 자리에 오릅니다. 그러나 지리적으로 이베리아 반도 정중앙에 있는 카스티야의 마드리드가 새 왕국의 정치적 중심지로 떠올랐고, 상대적으로 반도 변방에 위치한 아라곤의 카탈루냐 지역은 소외돼갔죠. 여기에 16세기 스페인의 신대륙 식민지 건설이 본격화되면서 대서양과 접하고 있던 카스티야 지역 사람들이 신대륙 무역에서 오는 막강한 부(富)를 독점하기 시작했어요. 반면 아라곤 시절부터 오랫동안 독자적인 의회·법률·언어를 가지고 있던 카탈루냐 사람들은 신대륙 건설로 인한 과도한 세금까지 떠안으면서도 아무런 경제적 혜택을 받지 못해 불만이 커져갔죠.

1701~1714년 벌어진 '스페인 왕위 계승 전쟁'은 스페인과 카탈루냐 간 갈등에 불을 지핍니다. 1700년 스페인 국왕 카를로스 2세가 아들 없이 죽자, 사돈 가문인 프랑스 부르봉 왕가의 앙주 백작(펠리페 5세)이 왕 자리를 차지했어요. 하지만 오스트리아는 이를 인정하지 않고 영국·네덜란드와 동맹을 맺어 스페인·프랑스에 전쟁을 선포합니다.

왕위 계승 전쟁은 1714년 프랑스 국왕 루이 14세가 '스페인과 프랑스를 결코 합병하지 않겠다'고 약속하면서 끝이 납니다. 오스트리아가 카탈루냐에 주둔시킨 군대를 철수시키면서 카탈루냐는 스페인에 완전히 함락되죠.

◇산업의 중심지로 우뚝 선 카탈루냐

카탈루냐 지도

펠리페 5세는 13년에 걸친 왕위 계승 전쟁을 치르며 카탈루냐 문제에 아주 예민해졌답니다. 그래서 카탈루냐 문제를 뿌리뽑기 위해 칙령을 선포하고 마드리드를 수도로 하는 강력한 중앙집권체제를 구축합니다. 카탈루냐주 자치정부를 해체해 중앙정부에 귀속시키고 바르셀로나 의회 요인들을 전부 마드리드 인사들로 바꾸죠.

펠리페 5세는 카탈루냐에 카스티야 언어와 관습을 강요했고, 기존 토착 유지들의 재산도 몰수해버렸어요. 여기에 전쟁 책임 배상금까지 떠안으면서 카탈루냐는 재정난에 허덕이게 됩니다.

그런데 18~19세기 산업혁명이 유럽을 휩쓸면서 전세가 뒤바뀌게 됩니다. 바르셀로나가 면직 공업으로 비약적인 경제성장을 이루며 스페인 산업의 중심지로 우뚝 선 거죠. 1931년 스페인 공화주의자들이 공화국을 출범시키면서 카탈루냐도 잠시 자치권을 회복하게 됩니다. 이때 카탈루냐 주정부에서 카탈루냐 공화국을 정식 선포하고 헌법을 제정하려다 중앙정부의 반대에 부딪혀 무산되기도 했죠.

그러던 중 파시스트(전체주의자)인 프란시스코 프랑코 장군이 정부에 반란을 일으키면서 '스페인 내전'(1936~1939)이 벌어집니다. 프랑코 군대는 1939년 바르셀로나를 점령하고 "카탈루냐의 자치를 용납하지 않겠다"고 선언하죠. 이때부터 공공장소에서 카탈루냐어 사용이 금지되고 정치·사회·군사 통제권까지 전부 박탈됩니다. 1975년 프랑코 정권이 붕괴하면서 카탈루냐주 자치정부가 복원됐지만, 현재 카탈루냐 주민들은 스페인으로부터 완전한 분리 독립을 원하고 있는 상태랍니다.

많은 전문가들이 스페인 총생산의 20%를 차지하고 있는 카탈루냐 지역이 독립하면 스페인 경제가 큰 타격을 입을 것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결국 분리 독립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는 경제인 셈이죠. 카탈루냐의 숙원은 이뤄질 수 있을까요? 전 세계인의 눈과 귀는 이제 엘 클라시코(FC바르셀로나와 FC레알마드리드 간 축구 경기)처럼 스페인과 카탈루냐에 집중되고 있답니다.

☞유럽 내 분리 독립 운동

유럽에는 스페인 카탈루냐처럼 분리 독립을 원하는 지역이 많아요. 2014년 주민투표가 부결된 영국 스코틀랜드를 비롯해 벨기에 북부 플랑드르, 스페인 북부 바스크, 독일 남부 바이에른주, 이탈리아 북부 롬바르디아주, 덴마크 그린란드 등이 경제·문화적인 이유로 중앙정부로부터의 분리 독립을 요구하고 있어요. 카탈루냐의 분리 독립이 실제 이뤄질 경우 독립을 원하는 이들의 움직임도 거세질 것으로 보여요.





 

이정하 천안 계광중 역사 교사 기획·구성=박세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