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이명옥의 명작 따라잡기] 로댕, 누드로 강렬한 감정과 생명력 표현했어요

입력 : 2017.09.16 03:07

[테이트 명작展 - 누드(NUDE)]

역사·종교 등 시대상 녹아 있는 누드… 수천 년 '서양 미술의 꽃'으로 불려
고전 미술, 이상적 아름다움 표현… 20세기엔 현실적인 여성 누드 많아
인간 보는 관점 변화 읽을 수 있죠

누드화는 벌거벗은 사람 몸을 그린 그림을 말해요. 사람 몸을 그리거나 조각하는 것은 인류가 미술 활동을 시작한 때부터 찾아볼 수 있는데요. 이후 수천 년 동안 서양 미술에서 누드는 매우 중요한 주제였어요. 역사와 신화, 종교, 철학, 문학 등 다양한 삶의 이야기가 녹아 있어 '서양 미술사의 꽃'이라고도 하죠.

19세기 영국 화가 프레더릭 레이튼은 고대 그리스 신화를 누드화에 담았어요. 작품1은 아름다운 공주 프시케가 황금 궁전에서 목욕하는 장면을 그린 거예요. 프시케는 사랑의 신 큐피드(에로스)의 연인이죠.

이 그림은 균형과 조화, 비례, 대칭을 통해 육체의 이상적 아름다움을 표현한 누드화의 걸작으로 꼽혀요. 이상적 아름다움이란 말 그대로 이상(理想)에 불과한, 현실에는 찾아보기 힘든 허구의 아름다움이죠. 레이튼은 여러 미인의 얼굴과 몸에서 가장 아름다운 부분만을 모아 '인공 미인' 프시케를 만들었어요. 현대 여성들이 미인이 되려고 성형 수술로 신체 부위를 고치듯, 붓과 물감이라는 도구로 그림 속 여성을 '성형'한 거죠.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미녀 프시케를 누드화 주인공으로 선택한 것도 현실 속 여성을 통해선 이상미를 표현할 수 없기 때문이에요. 이 그림은 여성 누드가 고전 미술의 핵심인 이상적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중요한 수단이었음을 알려줍니다.

(왼쪽)작품1 - 프레더릭 레이튼, ‘프시케의 목욕’, 1890년. (오른쪽)작품2 - 앨리스 닐, ‘키티 피어슨’.
(왼쪽)작품1 - 프레더릭 레이튼, ‘프시케의 목욕’, 1890년. (오른쪽)작품2 - 앨리스 닐, ‘키티 피어슨’, 1973. /테이트미술관

반면 20세기 미국 여성 화가 앨리스 닐은 실재하는 여성 누드를 작품2에 표현했어요. 누드화 모델은 앨리스 닐과 친한 친구인 키티 피어슨이에요. 그림 속 실내 공간도 닐이 실제 살았던 뉴욕의 아파트입니다. 닐은 여성 누드를 이상적으로 미화하던 미술의 전통을 거부하고 친구의 벗은 몸을 있는 그대로 그림에 담았어요.

화가는 왜 현실 속 여성 누드를 솔직하게 그렸을까요? 세상 모든 여성에게 몸의 주인은 여성 자신이며, 자기 몸을 생긴 그대로 사랑하자는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서였어요.

닐은 여성들이 이상적 아름다움을 표현한 비현실적 누드화를 보며 여성의 몸에 대해 편견이나 왜곡된 인식을 갖게 된다는 점을 주목했어요. 그래서 여성들이 이상적 누드화가 강요하는 완벽하게 아름다운 몸의 기준에 얽매이지 않고 자신의 몸을 아끼고 소중하게 다뤄야 한다는 생각을 그림에 담은 거죠.

'조각의 신'으로 불리는 프랑스 조각가 오귀스트 로댕은 남녀 간 사랑을 누드 조각상에 담았어요. 두 연인이 다정하게 입맞춤하는 작품3은 사랑의 감정을 조각으로 표현한 걸작이라는 찬사를 받고 있어요. 독일의 위대한 시인이자 한때 로댕의 비서이기도 했던 라이너 마리아 릴케는 이 작품을 보고 깊은 감동을 받아 다음과 같은 글을 남기기도 했죠.

작품3 - 오귀스트 로댕, ‘키스’, 1901~1904.
작품3 - 오귀스트 로댕, ‘키스’, 1901~1904. /테이트 미술관

"우리는 이 조각상에서 아름다운 예감, 힘의 전율이 온 피부를 통해 두 육체 속으로 파도쳐 밀려 들어가는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 키스는 떠오르는 태양 같고 그 찬란한 빛은 사방에 깔린다."

로댕은 어떻게 눈에 보이지 않는 사랑의 감정을 대리석 조각상에 담을 수 있었을까요? 비결은 로댕 특유의 '몸의 언어'예요.

키스하는 남녀의 근육과 움직임, 자세, 손을 살펴보세요. 모든 근육, 팽팽하게 비틀린 몸, 매끈한 피부가 백 마디 말보다 진한 감정을 전달해요. 로댕은 이처럼 누드로 강렬한 감정과 운동감, 생명력을 표현하는 새로운 조각의 길을 열었어요. 이 때문에 오늘날 미술 전문가들은 로댕에게 '근대 조각의 아버지'라는 이름을 붙여주었답니다.

작품4 - 알렉산더 아키펜코, ‘머리 빗는 여인’, 1915.
작품4 - 알렉산더 아키펜코, ‘머리 빗는 여인’, 1915.

우크라이나 출신 미국 조각가 알렉산더 아키펜코는 누드를 혁신적 실험 도구로 활용했어요. 작품4는 머리 빗는 여성 누드상인데요. 이 여성 누드상은 전혀 사실적으로 표현되지 않았어요. 하체는 아주 단순하게, 얼굴과 어깨·팔은 추상적으로 표현됐어요. 얼굴은 아예 빈 공간이고 어깨 부분은 오목하게 조각했어요. 이렇게 표현한 작가의 의도는 무엇일까요?

아키펜코는 아름다움과 진실, 감정을 전달하려는 목적으로 여성 누드상을 만들지 않았어요. 인체의 빈 공간과 가득 채워진 곳, 오목하게 파인 부분과 볼록하게 튀어나온 부분이 결합되면 어떤 시각적 효과가 나타나는지 관심을 가졌죠. 즉 음(陰)과 양(陽)이 조화를 이루는 새로운 기법을 여성 누드를 통해 구현한 거예요.

지금까지 소개한 작품들은 오는 12월 25일까지 서울 소마미술관에서 열리는 '영국 국립미술관 테이트 명작전―누드'에서 볼 수 있답니다. 주말을 이용해 가족과 함께 전시관을 찾아 명작 122점을 감상해보세요. 작품 보는 눈이 훌쩍 자라는 것은 물론, 서양 미술사를 이해하는 데도 많은 도움이 될 거예요.

[영국 국립미술관 테이트 명작전-누드]

장소: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 내 소마미술관(지하철 8호선 몽촌토성역 1번 출구)

입장료: 성인 1만3000원, 65세 이상 6000원, 청소년 9000원, 어린이 6000원.

문의: (02)801-7955, www.tateseoul.com



이명옥 사비나미술관장 기획·구성=박세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