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경제 이야기] 138년 전 "토지 소득 환수" 주장, 현대에도 통할까

입력 : 2017.09.15 03:12

[헨리 조지와 부동산 보유세]

19세기 미국 경제사상가 헨리 조지 "토지로 번 불로소득이 불평등 원인"
땅에만 과세하는 '토지가치세' 주장

현 정부 부동산 규제에 인용하자
"소득 없이 땅 가질 사람 없을 것… 시대에 맞지 않는 사상" 반박 나왔죠

19세기 미국의 경제사상가 헨리 조지
이달 초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국회에서 19세기 미국의 경제사상가 헨리 조지(He nry George·1839~1897·작은 사진 )를 언급해 눈길을 끌었어요. 추 대표는 "생산력이 아무리 높아져도 지대(地代·땅의 사용료)가 함께 높아진다면 임금과 이자는 상승할 수 없다"는 헨리 조지의 말을 인용하며 사실상의 '부동산 보유세(부동산을 갖기만 해도 내야 하는 세금)'인상을 제안했죠.

생산력이 높아져도 지대가 늘면 임금과 이자는 상승하지 않는다? 이를 이해하기 위해선 헨리 조지의 사상을 알아봐야 해요. 그는 과연 어떤 사람이었기에 130여 년이 지난 지금도 거론되고 있는 걸까요?

◇"토지서 얻는 소득은 모두 과세해야"

헨리 조지는 1839년 필라델피아의 가난한 집에서 태어났어요. 14세 때 학교를 중퇴하고 선원, 인쇄공, 금 채굴공 등을 전전하며 힘겹게 생계를 이어갔죠. 그는 1871년 캘리포니아에 철도 건설 붐이 이는 걸 목격하면서 중대한 '사회적 모순'을 발견합니다. 철도 건설과 도시 개발로 인구는 점점 늘고 경제는 발전하는데 대중의 삶은 여전히 비참했던 거예요.

헨리 조지는 이런 불평등이 '개인의 토지 소유'에서 비롯됐다고 봤어요. 예를 들어 당시 캘리포니아는 도시 개발로 인해 주변 땅의 가치와 지대(rent)가 큰 폭으로 상승하고 그로 인해 기존 토지 소유자들이 엄청난 이득을 보고 있었어요. 반면 도시 노동자들의 임금 인상 폭은 그보다 훨씬 낮은 수준이었죠.

토지, 자본, 노동은 '생산의 3요소'로 꼽힌답니다. 공장을 세울 돈과 공장을 지을 땅, 공장에서 일할 사람이 있어야 물건이나 서비스를 만들 수 있다는 경제학 이론이에요. 토지에서 나오는 소득을 지대, 자본에서 나오는 소득을 이윤, 노동에서 나오는 소득을 임금이라고 말하죠. 헨리 조지는 이윤·임금은 사람이 열심히 노력한 대가로 얻은 소득이라 개인이 소유해도 되지만, 지대는 자연상태에 있던 것을 먼저 취해서 거저 얻은 소득이기 때문에 개인이 독점하는 것이 부당하다고 생각했어요. 한마디로 지대를 불로소득(不勞所得·일하지 않고 버는 돈)이라고 본 것이죠.

따라서 헨리 조지는 토지를 사유 재산으로 인정하되, 토지에서 벌어들인 모든 소득을 세금으로 거둬 정부 재정으로 충당해야 한다고 주장했어요. 대신 임금이나 이윤에 붙던 세금은 모두 없애자고 했죠. '토지가치세(토지단일세)'란 개념이 탄생한 것이에요. 이렇게 되면 세금 면제 혜택을 받은 노동자들이 더 활발히 일하고 자본가들도 더 많이 투자하게 될 거라고 믿었어요. 또 지대를 전부 국고로 환수함으로써 시세 차익을 노리는 땅 투기도 차단돼 사회 전체적으로 공정하고 지속적인 발전을 이룰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죠.

정부가 부동산 투기를 억제하고 실제 집을 구하는 수요자를 보호하기 위해 각종 부동산 정책을 쏟아내고 있어요.
정부가 부동산 투기를 억제하고 실제 집을 구하는 수요자를 보호하기 위해 각종 부동산 정책을 쏟아내고 있어요. 19세기 미국의 경제사상가 헨리 조지도 땅에서 나오는 소득을 국가가 거둬 투기를 막아야 한다고 주장했어요. /김연정 객원기자
그의 이런 생각은 1879년 '진보와 빈곤(Progress and Poverty)'이라는 책으로 출간됐어요. 책은 세계 각국으로 번역됐고 당시 무려 300만부가 팔려나갔을 정도로 큰 인기를 끌었죠. 급속한 경제성장 속 빈곤에 시달리던 대중은 조지의 주장에 박수를 보냈고, 수많은 지식인이 토지가치세를 추종하는 '조지스트'가 됐어요. 영국의 유명 극작가 조지 버나드 쇼, 러시아 대문호 톨스토이, 중국의 혁명가 쑨원, 미국의 흑인 인권운동가 마틴 루서 킹 주니어 등이 대표적인 추종자들이었답니다.

◇"현대 산업 사회에 안 맞는다" 비판도

20세기 초중반 유럽 일부 나라에서는 헨리 조지의 사상을 제도화하려는 시도가 있었어요. 1909년 영국 자유당은 토지가치세 도입을 골자로 하는 법안을 상정해 보수당과 격렬한 대립을 벌이기도 했죠. 1952년 덴마크에선 토지에 세금을 매기고 대신 노동·자본에 대한 세금을 감면해주는 정책을 펼쳤어요. 여기에 세계 각국의 환경 보호주의자들이 토지(자연)를 공공 재산으로 보는 헨리 조지의 사상을 본떠 '환경세'를 부과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어요.

하지만 헨리 조지의 주장에 동의하지 않는 이도 많아요. 우선 토지에서 나오는 모든 소득을 세금으로 거둬들이면 개인이 부동산 투자를 통해 돈을 벌 기회가 사라지고, 결국 아무도 부동산을 소유하려 들지 않게 될 것이라는 주장이에요. 이렇게 땅의 시장 가치가 사라지면 헨리 조지가 바랐던 '토지의 이상적인 배분 기능'은 기대하기 어렵고 결국 경제 발전이 더뎌질 것이라는 얘기죠.

경제 발전의 과실(果實)을 모두 토지 소유자가 가져간다는 문제의식이 시대착오적이라는 반박도 있어요. 현대 산업이 고도화되면서 전통적인 생산 요소인 땅의 가치보다 다른 생산 요소들의 가치가 훨씬 더 빠른 속도로 상승하고 있다는 것이죠. 예컨대 헨리 조지가 살던 130여 년 전에는 토지가 가장 중요한 자산이었지만, 현대 산업에선 첨단 공장 설비나 기계 시설은 물론 온라인·모바일 등 통신 네트워크, 최신 과학 기술이나 경영 기법, 문화, 예술 같은 유·무형의 가치가 훨씬 중요한 자산이 되고 있어 헨리 조지의 주장이 맞지 않다는 얘기예요.

이렇듯 현재 우리 사회에서 논의되고 있는 부동산 보유세 도입 논란에는 19세기 서구 산업사회의 어두웠던 이면과 헨리 조지라는 경제학자의 문제의식이 깔려있답니다. 중요한 건 이러한 근대 사상을 4차 혁명시대를 앞둔 21세기 대한민국에 그대로 적용할 수 있는 것인지 여부일 거예요. 여러분 생각은 어떤가요?

☞부동산 보유세

부동산을 가진 사람이 내야 하는 세금. 우리나라에는 크게 재산세와 종합부동산세가 있어요. 재산세는 토지·주택·건물 등을 가진 사람에게 지자체가 부과하는 세금이고, 종합부동산세는 일정 가격 이상을 초과하는 토지·주택 소유자에 한해 나라가 별도의 누진세율을 적용해 세금을 더 내도록 하는 제도예요.

천규승 미래경제네트워크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