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재미있는 과학] 위험한 화학물질?… '있다' '없다' 아닌 양이 문제

입력 : 2017.09.13 03:11

[일상생활 속 화학물질]

최근 생리대서 독성 물질 검출 논란… 연이은 파문에 화학물질 공포 커져

매일 쓰는 학용품·샴푸·물휴지 등 대부분 인공 화학물질 포함돼 있어
편리하지만 많이 쓰면 독이 될 수도

최근 여성 필수품인 생리대에서 독성 물질이 나온다는 주장이 퍼지면서 일상생활 속 화학물질에 대한 공포감이 커지고 있어요. 이런 주장은 김만구 강원대 교수팀과 시민 단체인 여성환경연대가 국내에서 판매 중인 일회용 생리대 열 가지를 조사한 결과 모든 제품에서 독성 물질로 알려진 '휘발성 유기화합물(VOCs)'이 검출됐다고 발표하면서 시작됐는데요. 가습기 살균제 유해 파문에 이어 살충제 계란 파동까지 겪은 소비자들은 매일 불안감을 호소하고 있어요.

◇기름 녹이고 때 벗기고… 편리한 화학물질

여러분은 '화학물질'이 뭔지 알고 있나요? 사실 이 세상에 화학물질이 아닌 것은 거의 없어요. 화학물질은 수소, 산소 등 원소 118종으로 구성된 결합체를 말하기 때문이에요. 심지어 물(H₂O)도 수소와 산소가 결합한 '화학물질'이죠. 화학물질은 석유나 석탄, 뱀의 독같이 자연 상태에서 원래 있었던 '천연 화학물질'과 샴푸, 비누, 살충제같이 사람이 공장에서 만들어낸 '인공 화학물질'로 구분해요. 요즘엔 바로 이 '인공 화학물질'을 가리켜 '화학물질'이라고 말하는 거죠.

[재미있는 과학] 위험한 화학물질?… '있다' '없다' 아닌 양이 문제
/그래픽=안병현
농·의약품을 제외하고 실제 시장에서 유통되는 화학물질은 세계적으로 약 12만종이나 돼요. 효용성과 안전성 평가를 거쳐 시장에 새롭게 나오는 화학물질도 매년 2000종에 달해요. 여러분이 쓰는 장난감이나 학용품은 물론, 집과 학교, 운동장, 놀이공원 등 주변 장소의 거의 모든 사물이 화학물질로 이뤄져 있답니다.

그렇다면 왜 화학물질을 쓰는 걸까요? 화학물질마다 제각각 장점이 많기 때문이에요. 불이 잘 안 붙게 한다거나, 기름이 잘 녹게 한다거나, 가볍고 단단한 물건을 만들어준다거나, 물건을 말랑말랑하게 해준다거나, 표면에 잘 달라붙게 한다거나, 묵은 때를 잘 벗겨준다거나 하는 성질이죠. 그렇기 때문에 화학물질의 특성을 잘 알고 쓰면 우리가 편리하게 사는 데 큰 도움이 되는 거예요. 예를 들어 볼까요?

여러분은 과거 우리 조상이 창포물에 머리를 감았다는 이야기를 알고 있죠? 화학 산업이 없던 옛날에는 창포물에 머리를 감아 머릿결을 부드럽고 건강하게 유지했어요. 하지만 20세기 산업이 발달하면서 많은 사람이 맹물이나 창포물 대신 비누나 샴푸로 머리를 감아야 훨씬 머리카락을 깨끗이 잘 닦을 수 있다는 걸 알게 된 거죠.

이때 들어가는 화학물질이 바로 '합성 계면활성제(SLS)'예요. 머리를 감다가 샴푸가 눈에 들어가면 눈이 따가운 것도 이 때문인데, 계면활성제는 비누 거품이 잘 일어나게 하고 묵은 때를 잘 빠지게 하는 기능이 있어요.

가습기 살균제 유해 성분으로 널리 알려진 클로로메틸이소티아졸리논(CMIT)과 메틸이소티아졸리논(MIT)도 물건이 상하거나 성분이 변하는 걸 막아주는 특성이 있어 치약, 화장품, 세정제, 물휴지 등에 쓰여요. 포름알데히드는 다른 물질과 잘 결합하는 성질 때문에 단열재나 가구 등을 붙이는 데 주로 쓰고, 장난감이나 튜브 등에도 물체를 말랑말랑하게 만들어주는 프탈레이트가 포함돼 있답니다.

◇과학적 기준치 이하로 써야

문제는 이처럼 생활에 편리한 화학물질을 권고기준 이상으로 많이 쓸 때 생겨요. 기준치 이상의 화학물질을 쓸 경우, 유해한 성분이 인체에 나쁜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죠. 그래서 정부는 유해 화학물질에 대해 일정한 기준치를 정해놓고 그 이하로 쓰도록 유도하고 있어요. 이를 어기는 제품은 시장에서 모두 퇴출당하죠.

예를 들어 집 안이나 차 안의 나쁜 냄새를 없애려고 쓰는 탈취제나 방향제에는 '메틸이소티아졸리논'과 '클로록실레놀(PCMX)' 등이 들어가요. 이런 물질을 기준치 이상으로 쓰면 호흡기에 나쁜 영향을 줄 수 있어요.

단열재나 가구 접착에 쓰는 포름알데히드도 많이 쓰면 두통이나 눈, 코, 목의 따가움, 피부 가려움 등을 유발해요. 올 초 우리나라 정부는 이런 화학물질을 기준치 이상으로 많이 넣은 방향제와 접착제 등 생활 화학제품 28종을 시장에서 전부 거둬들이기도 했어요.

이처럼 장단점이 동전의 앞뒷면처럼 함께 있다 보니, 시장에서 퇴출당한 화학물질이 재평가받은 경우까지 생겼답니다. 1939년 독일에서 만든 '기적의 살충제' DDT가 대표적이에요. DDT는 해충 박멸은 물론 말라리아, 발진티푸스 발병률까지 크게 떨어뜨린 화학물질이었지만 많은 사람이 "멀쩡한 야생동물까지 죽게 만든다"고 주장하면서 1960~1970년대 아예 생산이 금지됐어요. 하지만 일부 개발도상국에서 DDT를 쓸 수 없게 되자 말라리아가 크게 번졌고, 이에 2006년 WHO(세계보건기구)는 결국 개도국의 DDT 살포를 허용했죠.

이번에 논란이 된 일회용 생리대에는 벤젠, 스타이렌, 톨루엔 등이 포함돼 있어요. 인체에 유해성이 있는 '휘발성 유기화합물'이기 때문에 기준치 이하로 써야 해요. 전문가들은 이런 물질이 생리대 접착제에 들어간 것으로 추정하는데, 얼마나 들어갔는지, 또 실제 여성 인체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는 아직 밝혀지지 않은 상태예요. 연구팀도 이런 화학물질의 수치를 모두 따로 재면 양이 너무 적어 오차가 생길 수 있기 때문에 개별 화학물질을 모두 합한 총휘발성 유기화합물(TVOC)로 표시했다고 해요.

안전성을 따져야 하는 물질이 계속 늘어난다는 건 우리 생활이 조금씩 편리해지고 있다는 의미이기도 해요. 이런 편리함을 제대로 누리려면 화학물질을 얼마나 써야 안전한지 따져보고, 그 기준치를 과학적으로 정해서 써야 해요. 또 가능하면 화학물질을 사용할 때 충분히 환기하고 손발을 깨끗이 씻어야 안전하죠. 정확한 정보를 바탕으로 우리 스스로 안전을 지킬 수 있도록 생활 속 화학물질에 대해 공부해보면 어떨까요?

박태진 과학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