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클래식 따라잡기] 세고비아, '거리의 악기'를 클래식 무대로 올리다

입력 : 2017.09.09 03:06

[기타와 플루트]

세계적 클래식 기타리스트 세고비아
떠돌이 악사들의 악기였던 기타로 까다로운 클래식 연주해 주목받아
독주회 성공시키며 영역 넓혀갔죠

의대생 출신 플루티스트 랑팔, 다양한 장르 협업으로 이목 끌어

올해는 스페인이 낳은 세계적 클래식 기타리스트 안드레스 세고비아(1893~1987)가 세상을 떠난 지 30년이 되는 해예요. 세고비아는 '클래식 기타의 선구자'로 지금까지도 많은 음악인들에게 존경받고 있죠. 기타가 연주할 수 있는 곡 범위를 확장해 '기타의 재발견'을 이뤘기 때문이에요. 오늘은 이처럼 묻혀질 뻔했던 악기의 가능성을 발견한 음악인들에 대해 알아볼까요?

◇목수의 아들, 기타를 클래식 반열에 올려놔

기타는 언제 누가 만든 것인지 역사를 따지기가 어려울 정도로 아주 오래된 악기예요. 역사가들은 기원전 4500년 중동의 수메르 문명까지 거슬러 올라간다고 말하기도 하죠. 비슷하게 생긴 '사촌'도 많은데, 이탈리아의 만돌린, 하와이의 우쿨렐레, 러시아의 발랄라이카 등이 대표적이에요.

요즘은 기타가 명실상부한 독주(獨奏·혼자 연주) 악기로 자리 잡았지만 처음부터 그랬던 건 아니랍니다. 기타 소리가 다른 악기보다 워낙 작았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바이올린이나 첼로 등 다른 악기와 함께 연주하기(앙상블) 역시 사실상 불가능했어요. 이 때문에 20세기 초까지 기타는 주로 작은 사교회장에서 연주자가 혼자 연주한다거나, 다른 악기가 연주하는 곡을 반주해주는 기능에 머물렀습니다.

하지만 안드레스 세고비아는 기타가 피아노나 바이올린처럼 우수한 클래식 악기라는 것을 세계에 알렸어요.

세계적 클래식 기타리스트 존 윌리엄스가 미국의 공연장인 카네기홀에서 기타 독주회를 하고 있어요. 기타의 진가가 알려진 건 고작 100년 남짓밖에 되지 않았답니다. /Getty Images 코리아
세계적 클래식 기타리스트 존 윌리엄스가 미국의 공연장인 카네기홀에서 기타 독주회를 하고 있어요. 기타의 진가가 알려진 건 고작 100년 남짓밖에 되지 않았답니다. /Getty Images 코리아

세고비아는 1893년 스페인 안달루시아 지방에서 가난한 목수 아들로 태어났어요. 세 살 때 큰아버지 집에서 자라면서 처음 기타를 접했는데, 큰아버지가 조카인 세고비아 앞에서 손수 기타를 치며 민요를 들려준 거죠. 세고비아는 나중에 피아노와 첼로도 배웠지만, 결국 기타를 자신의 운명으로 선택했어요.

당시 유럽에서 기타는 '떠돌이 악사들이 연주하는 악기' 같은 이미지였어요. 그래서 세고비아는 기타를 거의 혼자 배우다시피 해야 했죠. 세고비아가 유명해진 건 서른한 살이던 1924년 프랑스 파리에서 기타 독주회를 성공시키면서부터예요. 이때 바이올린 명곡이자 음악가들에게 까다롭기로 유명했던 바흐의 샤콘을 기타로 혼자 연주했기 때문이죠.

파리의 성공을 바탕으로 세고비아는 1925년부터 음반 녹음을 시작하고 기존 기타리스트들과는 비교할 수 없는 큰 주목을 받습니다. 기타 연주 음반으로는 처음으로 판매량 100만장이 넘는 진기록을 세우기도 했어요. 또 명성에 만족하지 않고 페페-앙헬 로메로 형제, 나르시소 예페스 등 이제는 모두 전설이 된 기타 연주자들을 제자로 기르기도 했답니다.

◇의대생이 플루티스트로

[클래식 따라잡기] 세고비아, '거리의 악기'를 클래식 무대로 올리다

보잘것없는 위치에 있던 악기를 발굴한 선구자는 또 있어요. 프랑스 출신의 플루티스트 장피에르 랑팔(1922~2000)이에요. 플루트도 기타처럼 역사가 오래지만, 작은 음량 때문에 한정된 레퍼토리에서만 연주했죠. 이런 플루트로 본격 독주회를 꾸민 사람이 장피에르 랑팔이에요.

프랑스 마르세유에서 태어난 장피에르 랑팔은 플루티스트였던 아버지 조셉을 따라 어린 시절 일찌감치 플루트를 접했어요. 하지만 의사가 되길 원하는 부모님 뜻에 따라 의과 대학에 진학했지요.

그러던 중 제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면서 군인으로 참전했고, 그 기간 특별 허가를 받아 파리음악원에서 본격적으로 플루트를 공부하게 돼요.

랑팔은 뛰어난 실력을 자랑하며 불과 5개월 만에 파리음악원을 수석 졸업했고 전쟁이 끝나자 곧바로 파리 오페라 극장에서 플루티스트로 일하게 됩니다.

그가 이름을 떨친 건 1947년 스위스 제네바 국제 콩쿠르에서 우승하고, 1949년 3월 프랑스 파리에서 처음으로 플루트 독주회를 열면서부터예요. 특히 파리 독주회는 그 전까지 작고 존재감 없던 플루트의 무궁무진한 가능성을 완벽하게 입증한 음악계의 '사건'으로 평가되죠. 세고비아가 기타 독주회로 기타의 가능성을 만천하에 보여준 것과 비슷하죠?

랑팔은 기존 클래식 연주곡을 플루트 연주용으로 편곡하고, 잊혔던 과거 작품들을 찾아내는 데도 노력을 많이 기울였어요. 지금은 친숙한 비발디의 플루트 협주곡도 랑팔이 아니었다면 완전히 잊힐 뻔했던 작품이에요. 또 재즈 피아니스트인 클로드 볼링과 함께 연주한 앨범인 '플루트와 재즈피아노 트리오를 위한 모음곡'으로 플루트 연주의 영역을 크게 넓혔답니다. 이 앨범은 발표 당시 빌보드 클래식 차트에 무려 530주 동안 오르는 대기록을 세우며 클래식 음악과 대중음악 간 장르를 넘나드는 협업의 모범을 보여줬어요.

기타와 플루트, 두 악기의 진가가 알려진 건 고작 100년 남짓이지만, 세고비아와 랑팔은 묻힐 뻔한 악기들의 가능성을 발견하고 더 밝은 빛을 발할 수 있도록 했어요. 오늘은 이들에게 특별히 감사하는 마음을 품어보면 어떨까요.

 

김주영 피아니스트 기획·구성=박세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