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이 주의 책] 구덩이 속에서 찾아낸 스탠리 가문의 비밀

입력 : 2017.09.08 03:08

구덩이

앞으로 읽어도 뒤로 읽어도 똑같은 발음이 나는 이름을 가진 스탠리 옐내츠(Stanley Yelnats). 스탠리는 '초록호수 캠프'에서 삽 한 자루를 들고 구덩이를 파요. 18개월 동안 폭 1.5m, 깊이 1.5m의 구덩이를 매일 하나씩 파는 게 임무예요. 스탠리는 유명 야구선수가 신던 신발을 훔쳤다는 누명을 썼거든요. 소년원과 캠프 중 '캠프'라는 말에 이곳을 선택했을 뿐이에요. 캠프라는 말과 초록호수라는 이름에 속으면 안 돼요. 초록빛 숲도 호수도 없는 사막 한복판에 있는 곳이에요. 심지어 캠프도 아닌 곳이죠. '구덩이 파는 곳'일 뿐.

'인격 수양'을 이유로 구덩이를 파게 하는 이 캠프에는 비밀이 있어요. 캠프 소장은 땅을 파다가 '특이한 물건'을 발견하면 꼭 보고를 하라고 으름장을 놓아요. 사회에서 잘못을 저지른 아이들이 반성하도록 구덩이를 파라는 게 아닌 것이죠. 캠프 관계자들은 공짜로 아이들을 부려 먹으면서 뭔가를 찾고 있어요.

[이 주의 책] 구덩이 속에서 찾아낸 스탠리 가문의 비밀
/창비
사실 스탠리네 가족은 운이 매우 없기로 유명해요. 주식으로 떼돈을 벌었던 증조할아버지는 강도를 만나 전 재산을 털렸고, 스탠리 아버지는 매번 실패만 거듭하는 가난한 발명가죠. 이번에는 스탠리마저 좀도둑으로 몰려버렸어요. 왜 이렇게 됐을까요. 증조할아버지부터 스탠리까지 4대에 걸친 이 집안 독자(獨子)들은 '아무짝에도-쓸모없고-지저분하고-냄새-풀풀-나는-돼지도둑-고조할아버지'를 탓해요. 한때 FBI 요원을 꿈꾸던 스탠리가 지금 고생하는 것도, 다 고조할아버지 때문이라는 거죠. 읽을수록 궁금증은 커져요.

저자는 스탠리의 이야기, 고조할아버지의 이야기, 그리고 아직 초록호수 마을이 번창하던 100년 전 캠프 자리에서 벌어졌던 이야기 세 가지를 그물처럼 엮어내요. 치밀한 복선을 책 초반부터 배치하고 마침내 모든 비밀이 밝혀지는 순간 짜릿함을 느끼도록 배치했어요. 읽는 재미를 주는 것은 기본. 백인과 흑인이 결코 사랑해서는 안 됐던 역사 속 미국 인종차별, 빈부 격차 같은 사회문제도 생각하게 하는 책이에요.

미국 아동문학가 루이스 새커가 1998년 썼어요. 쉽고, 재밌고, 의미 있는 책이라는 세 가지 목표를 동시에 달성하는 흔치 않은 작품이에요. 국내에는 2007년 번역본이 나왔는데, 사실 공부 좀 하는 아이와 학부모들 사이에서는 출간 전부터 입소문이 퍼졌던 책이에요. 영어로 더듬더듬 읽어도 재밌다며 영어 교육 시장에서 널리 쓰였거든요. 그 정도로 흥미로운 이야기라는 방증이 되기도 하겠지요. 미국에서 청소년문학상 '뉴베리 상'과 '전미도서상'을 수상했어요.

책에 숨겨진 반전에 대한 작은 단서를 하나 드릴게요. '약속은 꼭 지킬 것'. 그 이유는 책에서 찾아보세요.


양지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