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숨어 있는 세계사] 반환 20년 지났지만… '한 나라 두 체제' 끊임없는 마찰
[아편전쟁과 홍콩]
아편전쟁 후 영국에 할양된 홍콩, 155년간 서구 자본주의와 문화 정착
1997년 中 반환 때 자치 보장했지만 3년 전 홍콩 행정장관 선출 과정서
중국 정부 노골적 개입 의지 드러내… 시민들 '우산혁명'으로 반발했어요
"웡치펑(조슈아 웡)을 석방하라!"
지난 8월 20일, 홍콩 시민 수만 명이 거리로 쏟아져 나왔어요. 조슈아 웡을 비롯한 '우산혁명(Umbrella Revolution)' 지도부 3명이 법원에서 징역형을 선고받자 수많은 시민이 반발한 것이지요. '우산혁명'이란 2014년 9월 말 시작된 홍콩의 직선제 요구 시위인데, 중국 정부가 홍콩특별행정구 최고 지도자인 홍콩 행정장관 입후보자 자격을 친(親)중국계 후보추천위원회의 과반 지지를 얻은 인사 2~3명으로 제한하면서 촉발된 거예요. 홍콩 시민들은 행정장관 선출 방식을 직접선거로 바꿀 것을 주장했는데, 당시 당국의 최루탄 세례를 우산으로 막아내던 시위대 모습에서 '우산혁명'이란 이름이 붙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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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난 2014년 12월 홍콩 ‘우산혁명’ 당시 반(反)중국 시위대가 최루탄을 막기 위해 우산을 들고 홍콩 정부청사 앞에 모여 있어요. 중국 영토지만 1997년까지 155년간 영국의 지배를 받은 홍콩은 중국 정부의 지나친 개입에 불편한 심기를 감추지 않았어요. /Getty Images 코리아
이처럼 올해로 중국 반환 20주년을 맞은 홍콩은 아직까지 끊임없이 중국 정부와 마찰을 겪고 있어요. 최근 홍콩에 태풍 피해가 막심하자 중국 정부가 구호 차원에서 인민해방군을 파병하겠다고 했는데도 홍콩 시민들이 민감하게 받아들일 정도죠. 사실 홍콩은 1997년 중국 반환 후 '일국양제(一國兩制·1국가 2체제)' 약속에 따라 오는 2047년까지 외교와 국방에 대한 주권은 중국이, 행정·입법·사법권은 홍콩이 갖는 자치권을 보장받고 있어요. 그런데 대체 홍콩과 중국은 왜 이렇게 다른 체제로 갈라지게 된 걸까요?
◇아편 때문에… 중국, 홍콩을 잃다
지금으로부터 200여년 전인 19세기, 중국 청나라 왕조는 안정과 번영을 자랑하던 이전과 달리 서서히 쇠락의 길을 걷게 됩니다. 중앙정부와 지방 관리들의 부패로 백성의 원성이 높아졌고, 빈부 격차 같은 사회적 불균형도 커졌지요. 나라 곳곳에서 크고 작은 민란도 속출했어요.
이 시기는 영국을 중심으로 하는 서구 열강 세력들이 자유무역을 주장하며 군사력을 앞세워 아시아 여러 나라를 경제적으로 침탈하고 있었어요.
특히 영국은 청나라의 차(茶), 도자기, 비단, 면직물 등을 자국에 수입하고, 영국의 모직물이나 면화를 청나라에 수출해 이득을 보려 했죠. 하지만 영국에서 중국산 차 소비가 빠르게 늘면서 영국은 청나라와 무역에서 생각보다 큰 적자를 보게 됐고, 영국은 자국 식민지였던 인도에서 생산한 마약인 아편을 중국으로 밀수출하기 시작했어요.
아편은 중국 하층민부터 군인, 고위 관리들 사이로 빠르게 확산했어요. 아편 때문에 중국의 정치, 군대가 마비됐다는 말이 나올 지경이었죠. 청나라 황제가 결국 아편 수입·판매 금지령을 내렸지만 아편을 몰래 사고파는 사람이 꾸준히 늘어 아편 구입의 대가로 지급되던 은(銀)도 나라 밖으로 점점 많이 유출됐어요. 결국 1838년 청나라 도광제는 전국의 아편을 몰수하는 강경책을 취합니다. 당시 황제의 명을 받은 관리 임칙서는 2만여 상자에 담긴 아편을 전부 불태워 없애버리기도 했어요.
영국 자본가들은 크게 반발했어요. 청나라가 자유무역과 사유재산을 침해했다며 영국 정부를 압박했고, 이에 영국 정부가 군대를 파견해 중국 광저우를 점령합니다. 이것이 바로 유명한 '아편전쟁', 제1차 중영(中英) 전쟁이죠.
◇'불편한 동거'는 현재 진행 중
영국의 압도적인 해군력에 밀린 청나라는 1842년 영국에 절대적으로 유리한 '난징조약'을 체결합니다. 광저우 등 5개 항구를 영국에 개방하고 600만달러의 배상금을 지급하라는 내용이었지요. 바로 이때 중국 남동쪽에 있는 홍콩 섬이 영국에 귀속되게 됩니다.
영국은 난징조약 체결로 무역 적자 상태를 벗어날 수 있을 것이라 기대했어요. 하지만 영국 상품의 수출이 생각보다 크게 늘지 않자 또다시 조약 개정을 요구하기 시작합니다. 그러던 1856년 10월, 광저우에 정박해 있던 애로호(Arrow號)에 청나라 관리가 올라가 해적 혐의로 중국인 승무원을 체포한 사건이 벌어집니다. '애로호 사건'이죠.
영국은 당시 애로호 선장이 영국인이고 선적(船籍)이 홍콩에 있었으므로 중국이 허락 없이 영국 소유의 배에 올라가 주권을 침해했다며 중국과의 전쟁을 선포합니다. 제2차 중영전쟁이 시작된 거예요. 전쟁에서 패한 청나라는 1860년 개항장 수를 16개로 늘리는 등의 내용을 담은 제1차 베이징조약을 체결했어요. 이때 현재 홍콩의 주룽반도가 영국에 할양됐습니다.
이후 1898년 체결된 제2차 베이징조약에 따라 영국은 홍콩을 1898년 7월 1일부터 1997년 6월 30일까지 99년간 조차(租借·조약에 따라 타국의 영토를 유·무상으로 빌리는 행위)하기로 합니다.
90여 년이 흐른 1984년, 영국과 중국은 홍콩 반환협정을 체결하고 1997년 7월 1일, 홍콩은 155년에 걸친 식민지 시대를 끝내고 중국으로 반환됐어요.
그러나 150여 년에 걸쳐 형성된 영국식 법치제도와 시장경제 체제, 언어(영어) 등으로 인해 홍콩 시민들은 중국에 완전히 스며들지 못하고 있어요. 그 대표적 사건이 바로 '우산혁명'인 셈이고요. '홍콩은 홍콩 사람이 다스린다'는 '항인치항(港人治港)'의 진정한 의미를 홍콩 시민들은 지금도 스스로 찾아나가고 있는 중입니다.
☞우산혁명
2014년 9월 말부터 12월 중순까지 이어진 홍콩의 직선제 요구 시위. 당시 중국 정부가 홍콩 행정장관 입후보자 자격을 친(親)중국계 후보추천위원회의 과반 지지를 얻은 인사들로 제한하면서 홍콩 시민들이 반발해 일으켰어요. 당국의 최루탄을 우산으로 막아낸 시위대의 행동에서 본떠 '우산혁명(Umbrella Revolution)'이라는 이름이 나왔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