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재미있는 과학] 99년 만의 우주쇼… 과학자에겐 거대한 실험 기회

입력 : 2017.09.06 03:11

[개기일식]

태양-달-지구 일렬로 서는 일식 때 평소의 1000분의 1로 하늘 어두워져
태양 주위 빛의 산란 현상 '코로나'… 밝기·온도 등 데이터 수집하기 좋아
아인슈타인의 일반 상대성 이론도 1919년 개기일식 덕분에 증명됐죠

파란 하늘이 순식간에 어두워졌어요. 지난달 21일 오전 10시 20분(현지 시각) 미국 서부 오리건주(州)에서 달이 태양을 가리는 개기일식 현상이 일어났어요. 오리건에서 시작된 개기일식은 미국 전역을 비스듬하게 가로지르며 약 1시간 30분 동안 지속했는데요. 미국 전역에서 개기일식을 보기 위해 수백만 명이 움직였고, 특히 개기일식이 시작된 오리건에는 100만명 가까이 모였답니다. 그뿐만 아니라 개기일식은 과학적으로도 무척 중요한 현상이에요. 과학자들에게 개기일식은 어떤 의미일까요?

◇코로나의 비밀 풀어줄 열쇠, 개기일식

개기일식은 달이 태양을 완전히 가려 달의 그림자가 지구를 가로지르며 발생하는 현상이에요. 대략 1~2년마다 한 번씩 발생해요. 생각보다 자주 발생하지만 지구 전체 표면적의 1%도 안 되는 작은 지역에서만 관찰할 수 있기 때문에 관찰하기가 쉽지 않아요. 미국에서도 대륙을 통과하는 개기일식이 관측된 것은 99년 만이랍니다. 태양의 일부만 가려지는 부분일식은 개기일식보다 조금 더 넓은 지역에서 관측할 수 있어요.

[재미있는 과학] 99년 만의 우주쇼… 과학자에겐 거대한 실험 기회
/그래픽=안병현
개기일식이 일어나면 하늘의 밝기는 평상시의 1000분의 1 정도로 어두워져요. 이렇게 어두워진 하늘에서는 평소 보기 힘들었던 태양의 '코로나'를 관찰할 수 있어요. 코로나는 태양 주위의 전자나 먼지에 의해 태양빛이 산란돼 태양 주변으로 빛이 뻗어나가는 모양이에요. 태양과 가까운 곳에서 생기는 코로나가 가장 밝고 바깥쪽으로 갈수록 어두워져요. 태양 주변의 밝은 코로나는 평상시 하늘의 밝기와 비슷하기 때문에 평소에는 관찰이 어렵답니다. 개기일식이 일어나 하늘이 어두워지면 코로나를 선명하게 볼 수 있어요.

코로나는 온도를 비롯해 온통 미스터리투성이예요. 얼핏 보면 핵융합이 일어나는 태양이 코로나보다 뜨거울 것 같지만 실제로는 코로나가 태양보다 더 뜨겁답니다. 과학자들도 아직 정확한 이유를 알지 못하고 다양한 가설만 세우고 있어요. 이번 개기일식을 계기로 데이터를 수집해 코로나의 비밀을 풀 수 있길 기대하고 있어요.

미 국립기상연구소(NCAR)는 부자들이 전용기로 많이 쓰는 제트기 '걸프스트림'을 개조해 13.7㎞ 상공에서 일식을 관측했어요. 비행기를 이용하면 지상에서 관측하는 것보다 더 오래 개기일식을 관측할 수 있죠. 시속 1100㎞로 하늘을 날면 지상보다 긴 4분 정도 코로나를 관측할 수 있답니다. 미 항공우주국(NASA) 연구팀은 존슨우주센터의 연구용 비행기 WB-57 두 대를 띄워 초당 30장씩 태양을 고속 촬영했어요. 한 대는 적외선, 다른 한 대는 가시광선 카메라로 코로나를 관측했어요.

◇개기일식으로 증명된 일반 상대성 이론

상대성 이론으로 유명한 아인슈타인도 개기일식의 도움을 받은 적이 있어요. 아인슈타인은 1915년 일반 상대성 이론에 대한 논문을 처음으로 발표했는데요. 아인슈타인이 발표한 일반 상대성 이론은 복잡한 수식을 사용했기 때문에 직관적으로 이해하기 매우 어려웠어요. 당연히 실험을 통해서 증명하는 것도 무척 힘들었답니다.

이런 상황이 크게 달라진 것은 1919년의 일식 관측 덕분이었어요. 일반 상대성 이론에 따르면 무거운 물체 옆을 지날 때는 빛이 그 물체의 중력에 의해 방향이 바뀌는데요. 태양계 내에서는 태양이 가장 질량이 크므로 태양 주위를 지나는 빛이 가장 많이 휘어야 하죠. 아인슈타인은 태양이 있을 때와 없을 때를 비교해 1.6초(1초는 3600분의 1도)의 각만큼 차이가 날 것으로 예상했어요. 천문학자 아서 에딩턴은 실제로 태양을 지나는 빛이 휘는지를 관측했어요. 에딩턴은 개기일식이 일어나는 브라질 해안 근처와 서아프리카 해안으로 원정대를 보냈고, 원정대는 개기일식이 일어나는 동안 별빛이 휘어지는 것을 관측하는 데 성공했어요. 평상시에는 태양 주위를 지나가는 빛과 밝은 태양빛을 구분하기 힘든데, 개기일식이 일어나는 동안은 태양을 지나가는 빛을 정확하게 구분할 수 있어요.

여기서 반전은 에딩턴의 관측 결과가 신뢰할 수 없는 결과였다는 점이에요. 에딩턴이 일식을 관측한 서아프리카의 프린시페섬은 당시 날씨가 매우 좋지 않아 정밀도가 무척 떨어졌어요. 또 정확한 비교를 위해서는 같은 장소에서 태양이 없는 별자리의 사진을 찍어야 했는데, 그러자면 반년을 기다려야 했어요. 시간이 없었던 원정대는 런던에서 미리 찍은 사진을 비교해 결과를 발표했답니다.

이런 실수가 있었지만 에딩턴 덕분에 아인슈타인은 세계적인 스타 과학자가 됐어요. 뉴욕타임스는 같은 해 11월 10일 개기일식 동안 관찰된 결과로 일반 상대성 이론이 증명되며 과학의 패러다임이 바뀌었다고 밝혔어요. 뒤이은 정상 실험에서도 아인슈타인의 예측과 0.1% 이내로, 일반 상대성 이론이 틀리지 않았음이 증명됐어요. 만약 개기일식이 없었다면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이 널리 받아들여지는 데는 더 많은 시간이 걸렸을 거예요.

다음 개기일식은 2019년 7월 2일 칠레와 아르헨티나에서 관측할 수 있어요. 한반도에서는 조선 고종 24년이었던 1887년 8월 19일에 개기일식이 나타났고, 다음 개기일식은 2035년 9월 2일 오전 9시 40분쯤 북한 평양 부근과 강원도 일부 지역에서 관측이 가능해요. 서울에서는 부분일식을 관측할 수 있어요.


송준섭 과학 칼럼니스트 기획·구성=박승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