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핫 피플] 비운의 삶 살다간 영국의 '국민 세자빈'

입력 : 2017.09.01 03:12

다이애나

다이애나 스펜서
20년 전 오늘 영국 왕실의 왕세자빈이었던 다이애나 스펜서〈사진〉가 갑작스러운 교통사고로 사망했다는 뉴스가 전해졌어요. 찰스 왕세자와 이혼한 지 1년 만이었죠. 영국 국민의 사랑을 받았던 다이애나는 아직 어린 두 아들 윌리엄(당시 15세)과 해리(당시 11세)를 남긴 채 36세 나이로 눈을 감았어요.

다이애나는 1961년 영국의 귀족 집안에서 셋째 딸로 태어났지만 어린 시절이 순탄치 않았어요. 일곱 살 때 부모가 이혼하고 양육권 다툼을 벌여 외로움을 많이 탔다고 해요. 평범한 성적으로 학교를 졸업한 다이애나는 열여덟 살에 런던으로 가 유치원 보조교사, 보모, 댄스강사 등으로 일했어요. 넉넉하진 않았지만 친구들과 함께 런던의 아파트에서 살던 이때가 "처음으로 행복했던 시절"이었다고 그는 회고했어요.

찰스 왕세자와의 만남은 열아홉 살 때 왕실 행사에 참여하면서 자연스럽게 이뤄졌어요. 다이애나의 집안은 예전부터 왕실과 가까운 사이여서, 가족들이 왕실 행사에 종종 초대받았어요. 열세 살 연상인 찰스 왕세자는 어리고 순진한 다이애나에게 반해 끈질기게 청혼했어요. 결국 1981년 7월 런던 세인트폴 성당에서 '세기의 결혼식'이 거행됐죠. 7억5000만명이 다이애나와 찰스의 결혼식 생중계를 지켜봤어요.

행복해야 할 결혼은 불행의 시작이었어요. 다이애나는 찰스 왕세자가 전 연인이었던 카밀라와 결혼 후에도 몰래 관계를 유지한다고 의심했어요. 1984년 둘째 해리 왕자가 태어날 즈음 다이애나와 찰스의 관계는 이미 회복할 수 없는 수준이었다고 해요.

가정에서 행복을 찾지 못한 다이애나는 인도주의와 자선 활동에 전념했어요. 대인지뢰 피해자 돕기부터 에이즈·암 등 난치병 퇴치, 빈민 구호 등 다양한 활동에 나섰어요. 워낙 언론의 주목을 받는 다이애나였기에, 그가 관여하는 자선 활동에 수많은 후원자가 모여들었어요. 왕세자빈이라는 타이틀도 도움이 됐지만 다이애나 개인에 대한 대중의 호감이 워낙 높아 가능했던 일이었어요.

마침내 다이애나는 1996년 찰스와의 이혼도 확정 짓고 왕세자빈의 직위를 스스로 반납했어요. 새로운 사랑도 찾아나섰죠. 영국 최고급 백화점 '해러즈'를 운영하는 이집트 부호의 장남 도디 알 파예드와 데이트를 시작했어요.

하지만 1997년 8월 31일 프랑스 파리에서 다이애나는 운전기사가 카메라 기자들을 따돌리려고 과속하다 사고를 내, 현장에서 숨지고 말았어요. 영국 왕실은 "이미 왕실을 떠난 사람"이라며 별다른 애도의 뜻을 밝히지 않아 국민의 지탄을 받았어요. 여왕이 사는 버킹엄궁 앞에 다이애나의 죽음을 추도하는 꽃다발이 산더미처럼 쌓였죠. 이에 놀란 왕실은 관례를 깨고 다이애나의 장례식을 왕실장으로 치르도록 했어요. 영국인들은 왕실에서 불행하게 살다 비극적으로 숨진 다이애나를 '국민 세자빈'이라 부르며 추모했어요.

박승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