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숨어있는 세계사] 반짝이던 다이아몬드, 핏빛으로 물들다

입력 : 2017.08.31 03:12

[시에라리온 내전]

세계 3대 다이아 매장국이자 최빈국
1991년 내전 일으킨 '혁명연합전선'
주민 강제 노동시켜 얻은 보석 팔아 무기 사고 소년병 키워 참전시키기도
실상 공개 후 다이아몬드 반감 커져… '클린 운동' 펼쳤지만 한계 드러났죠

시에라리온 지도

시에라리온의 수도 프리타운에 내린 집중호우로 산사태가 발생해 현재까지 사상자 1000여 명과 이재민 수천 명이 발생했어요. 우리 정부는 지난 21일 시에라리온에 30만달러(약 3억4000만원) 규모의 인도적 지원을 제공하겠다고 밝혔어요. 시에라리온에는 3년 전에 에볼라 바이러스가 퍼져 수천 명이 사망하기도 했는데요. 가난한 나라여서 정부에서 할 수 있는 조치가 거의 없어 더욱 피해가 컸다고 해요. 아프리카에서도 최빈국에 속하는 이 나라에는 사실 자원이 풍부해요. 특히 다이아몬드는 세계 3대 매장량을 자랑할 만큼 많아요. 이런 엄청난 자원을 보유하고도 왜 가난한 걸까요?

◇풍부한 다이아몬드, 재앙이 되다

1961년 영국으로부터 독립한 시에라리온은 여러 번의 쿠데타가 발생해 정치적으로 불안정했어요. 고위 관료들이 다이아몬드, 보크사이트, 철광석 등 값비싼 자원들을 독점하는 등 부정부패도 심각했어요. 이런 와중에 1991년 반군 '혁명연합전선(RUF)'이 내전을 일으켜 나라가 혼란에 빠졌죠. 다이아몬드 광산을 점령한 반군은 주민들에게 제대로 임금도 주지 않고 장시간 노동을 시켰어요. 그렇게 다이아몬드를 판 돈으로 세력을 키워 1999년 1월 프리타운에 대대적인 공격을 가해 수많은 사상자가 발생했어요.

RUF는 교전 과정에서 정부 진영 주민들의 손목을 도끼로 자르는 만행을 저질렀어요. 그 손으로 현 정부에 투표했다는 것이 이유였죠. 손목이 잘린 사람들은 농사를 지을 수도 없고, 다른 일도 할 수 없게 됐어요. 누군가에 의지해 살아갈 수밖에 없게 된 것이죠. 복수는 꿈도 꿀 수 없었고요. 소년병 징집도 일상화됐어요. RUF는 열 살을 갓 넘긴 아이들을 납치해 잔인한 전쟁영화를 보여주거나 마약을 먹였어요. 잡아온 포로의 손목을 자르게 하거나 죽이도록 명령하기도 했죠. 이렇게 키워진 아이들은 자기 마을을 공격해 부모와 형제, 이웃들을 죽였어요. 이후 돌아갈 곳이 없어진 아이들은 반군의 전사로 성장해나갔죠. 죄 없는 아이들의 일상은 전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모두 파괴됐어요.

1990년대 시에라리온 내전 당시 소년병들이 기관총과 각종 무기를 들고 있어요. 반군인 ‘혁명연합전선’은 열 살 남짓한 소년들을 납치해 잔인한 전쟁영화를 보여주거나 마약을 먹여, 살상을 일삼는 소년병으로 만들었어요.
1990년대 시에라리온 내전 당시 소년병들이 기관총과 각종 무기를 들고 있어요. 반군인 ‘혁명연합전선’은 열 살 남짓한 소년들을 납치해 잔인한 전쟁영화를 보여주거나 마약을 먹여, 살상을 일삼는 소년병으로 만들었어요. /Getty Images 코리아

전문가들은 아프리카 국가 대부분이 무기를 생산할 능력이 부족해 내전이 장기화하기 힘들다고 봤어요. 그런데 시에라리온을 비롯한 아프리카 국가의 내전들은 대부분 장기화했어요. 왜냐하면 이웃 나라 지도자들이 여러 가지 이유로 반군을 지원해줬기 때문이에요. 특히 서아프리카 지역에서는 리비아의 독재자 무아마르 카다피의 지원으로 훗날 내전을 일으킬 인물들이 서로 교류하며 성장했어요. RUF를 조직한 포다이 상코와 라이베리아 독재자 찰스 테일러가 그랬어요. 그들은 리비아의 게릴라 훈련 캠프인 '타주라 군사학교'에서 함께 공부했어요. 테일러는 1989년 '라이베리아민족애국전선'을 조직해 무장 게릴라 활동을 벌였고, 반대파를 무자비하게 숙청하면서 1997년 라이베리아 대통령이 됐어요. 권좌에 오른 그는 시에라리온의 다이아몬드를 받는 대가로 내전 기간 RUF에 무기를 지원해줬어요.

◇'클린 다이아몬드' 운동의 한계

시에라리온의 다이아몬드 광산에서 인부들이 진흙을 퍼내며 다이아몬드를 채굴하고 있어요.
시에라리온의 다이아몬드 광산에서 인부들이 진흙을 퍼내며 다이아몬드를 채굴하고 있어요. /위키피디아
국제사회가 손 놓고 있었던 것은 아니에요. 유엔은 시에라리온의 반군에 무기를 팔지 못하도록 제재했지만 냉전 체제가 붕괴되며 쓸모없어진 동유럽 지역의 무기들이 라이베리아를 통해 RUF에 넘어갔어요. 뒤늦게 그 사실을 알게 된 유엔이 추가로 제재 조치를 취했지만 이미 수많은 사람이 희생당한 후였죠.

당시 전 세계 다이아몬드 시장의 80%가량을 독점했던 다국적 기업 드비어스는 시에라리온과 라이베리아의 저렴한 다이아몬드를 사줬어요. 분쟁 지역에서 판매된 자원이 전쟁에 이용될 것을 알면서도 이익에 눈이 멀었던 것이죠. 이렇게 시에라리온 내전은 권력을 장악하려는 사람들과 돈을 벌겠다는 사람들의 욕망이 연결돼 장기화했던 거예요.

시에라리온 내전은 1999년 정부군과 반군 사이에 평화협정이 체결되면서 일단락됐어요. 그러나 기나긴 전쟁의 상처는 너무나 깊었어요. 10여 년간 지속된 전쟁으로 20만명이 사망하고, 여성 25만명이 유린당했으며, 소년병 7000명이 양성됐고, 4000명이 사지가 절단됐어요. 그리고 인구 3분의 1인 200만명이 난민으로 전락해버렸죠. 2001년 영국의 국제 인권 단체 '글로벌 위트니스'가 다이아몬드를 둘러싼 시에라리온 내전의 실상을 폭로하자 전 세계는 충격에 빠졌어요. 이를 소재로 '로드 오브 워' '블러드 다이아몬드' 같은 영화도 제작돼 다이아몬드 소비에 대한 반감이 높아졌죠.

위기에 처한 다이아몬드 다국적 기업들은 '클린 다이아몬드 운동'을 전개했어요. 그리고 2003년에 분쟁 지역에서 생산된 다이아몬드가 국제시장에 유통되는 것을 막기 위한 원산지 추적 제도인 '킴벌리 프로세스'를 도입했어요. 킴벌리 프로세스에는 현재 한국을 비롯한 75국이 참여하고 있으며, 인권에 반하는 수단으로 생산되는 다이아몬드 거래를 규제하고 있어요.

10여 년이 지난 지금은 킴벌리 프로세스의 실효성이 한계에 부딪혔다는 평가가 나와요. 아직도 짐바브웨 같은 곳에서 광산 노동자들이 하루 500원도 채 안 되는 임금을 받으며 다이아몬드를 캐고 있기 때문이죠. 일부 인간의 욕망이 타인의 삶을 파괴하지 않고, 서로 공존하며 살아갈 수 있는 지혜가 필요한 시점이에요.



공명진 숭문중 역사 교사 기획·구성=박승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