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핫 피플] 평범한 사람들이 전쟁통 8만명 구했어요

입력 : 2017.08.25 03:12

시리아 '하얀 헬멧'

시리아 민간구호단체 '하얀 헬멧'이 만해평화대상을 받은 지난 12일. 단체 대표 자격으로 한국에 온 라이드 알 살레(33)의 휴대폰이 다급히 울렸어요. 메시지는 '괴한의 총격으로 하얀 헬멧 대원 7명이 피살됐다'는 내용이었죠. '하얀 헬멧'이 평화를 위해 공헌한 공로로 만해대상을 받는 날, 비극의 소식이 들려오면서 시리아 내전의 참상이 우리 국민에게도 전해진 순간이었어요. 살레 대표는 시상식이 끝난 직후 남은 일정을 모두 취소하고 "동료들을 사지(死地)에 두고 혼자 여기 있을 수 없다"면서 총성과 포탄이 난무하는 시리아로 돌아갔어요.

순수 자원봉사자들로 이뤄진 시리아 구호 단체‘하얀 헬멧’대원들이 공습으로 무너진 폐허 속에서 부상자를 옮기고 있어요.
순수 자원봉사자들로 이뤄진 시리아 구호 단체‘하얀 헬멧’대원들이 공습으로 무너진 폐허 속에서 부상자를 옮기고 있어요. /‘하얀 헬멧’공식 사이트
'하얀 헬멧'은 시리아 내전이 격화한 2012년 말 국제구호단체들이 철수하자 시리아 시민들이 스스로 결성한 구호단체예요. 이들은 전투나 폭격이 벌어진 현장에 뛰어들어 정부군, 반란군 가리지 않고 부상자를 도왔어요. 전자제품 가게를 운영하던 살레 대표도 "공습을 받아 살던 집이 무너졌는데, 도와달라고 할 곳이 없었다"고 했어요. 그는 동네 친구들끼리 피해 현장으로 달려가 맨손으로 콘크리트 더미를 파헤치며 구조 활동을 시작했어요. 빵을 굽다가 사고가 터지면 트럭에 삽을 싣고 현장에 달려가는 식의 구조대였죠. 동료들도 살레와 마찬가지로 교사, 제빵사, 대학생, 택시 운전사 등 평범한 직업을 가진 평범한 사람들이에요.

살레와 친구들은 2014년 정식으로 '하얀 헬멧'을 설립했어요. 국제구호단체의 지원을 받아 대원들은 터키에서 긴급 구조 훈련을 받았죠. 내전이 한창일 땐 하루도 거르지 않고 구조 현장으로 달려갔어요. 2014년 시리아 북부 알레포에서 정부군 전투기 공습으로 3층짜리 건물이 무너졌을 때는 '하얀 헬멧' 대원들이 건물 잔해를 16시간 동안 파헤쳐, 콘크리트 가루에 묻혀 우는 열 살짜리 아이를 건져내기도 했어요. 하얀 헬멧은 이런 식으로 지난 3년간 8만명의 목숨을 구했어요.

이들의 구조 활동이 세계에 알려지면서 '하얀 헬멧'은 시리아의 희망으로 떠올랐어요. 세계 각지에서 동참하겠다는 희망자가 늘었어요. 수십 명에 불과했던 조직이 단기간에 알레포, 다마스쿠스, 이들리브 등 8개 지역에 사무소 100여 개를 둔 3000명 규모 단체로 커졌어요. 자원해서 온 대원들은 대부분 20~30대 남성이지만, 가족을 잃은 50대 부모도 적지 않다고 해요. 여성들도 히잡(이슬람식 스카프) 위에 흰 헬멧을 쓰고 현장에 나가 응급 치료를 돕고 있어요. 이들의 바람은 시리아에 하루빨리 평화가 찾아와, 더 이상 '하얀 헬멧'을 쓰지 않아도 될 날이 오는 것이에요.


박승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