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숨어있는 세계사] 내전이 남긴 상처 파고든 '백인우월주의'

입력 : 2017.08.24 03:11

[미국의 인종주의]

건국이래 갈등 빚은 美 북부·남부, 노예제 문제로 4년간 '남북전쟁'
패한 남부, 인종주의로 분노 표출… KKK 등 백인우월주의 단체 힘 커져
20세기 후반에 잦아드는 듯했으나 트럼프 취임 후 활개치고 있어요

미국 버지니아주 샬러츠빌에서 지난 12일 인종주의 단체들이 폭력 시위를 일으켰어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이들의 폭력적 행동을 적극적으로 비판하지 않아 소속 정당에서조차 비평을 받았죠. 다인종국가이며 흑인 노예제도를 운영했던 미국에서 인종주의란 넘어선 안 되는 선으로 여기는데, 트럼프 대통령이 이런 정서를 무시했다는 관측이 나왔어요. 샬러츠빌 시위 이후 미국 각지에서는 옛 남부연맹을 상징했던 동상과 기념비 등이 빠른 속도로 철거되고 있습니다. 오늘은 미국의 '아킬레스건' 인종주의의 역사에 대해 알아볼게요.

◇KKK, 내전으로 폐허 된 남부에서 득세

1861년 미국 내전 발발 당시 지도

미국은 17세기 초 영국 이주민들이 정착하면서부터 아프리카에서 흑인 노예를 들여왔어요. 노예는 목화밭 등 큰 농장이 있는 남부에 주로 많았죠. '남북전쟁'이라 불리는 미국 내전 직전인 1860년경 노예 인구는 약 400만으로 추정돼요. 북부의 산업자본가들은 노예제에 묶인 노동력을 원했고, 공화당 대선 후보 링컨은 이런 표심을 의식해 노예제 폐지를 공약으로 내걸었어요. 마침내 링컨이 대통령에 당선되자 남부 11개 주(州)는 '남부 연합(Confederate States)'을 구성해 미합중국에서 탈퇴를 선언합니다. 사실 북부와 남부는 건국 이래 노예제뿐 아니라 보호무역과 자유무역, 연방주의와 분권주의 등 정치·경제적 이해관계에 따라 갈등을 빚어왔어요. 링컨의 당선은 오랜 갈등에 불을 붙인 셈이었어요.

1861년 4월 남부 연합군의 섬터 요새 공격으로 시작된 내전은 1865년 봄 애포머톡스 전투로 끝났어요. 종전 직전 링컨은 노예제를 폐지하고(수정헌법 13조) 해방된 노예들에게 시민권을 부여했어요(수정헌법 14조). 내전 후 해방된 흑인 표심에 힘입어 북부는 정치권력을 독점했어요. 또 성장하는 북부의 자본가 계급은 남부 경제가 어려운 틈을 타 땅을 투기하고 철도를 부설하고 광산을 개발하는 등 막대한 이익을 누렸어요. 내전 패배로 남부는 정치·경제 모든 면에서 막대한 타격을 입은 것이죠.

이런 분위기 속에서 남부의 백인들, 특히 전쟁 후 '패배자'로 낙인찍혔던 퇴역 군인들 주도로 1866년 테네시주에서 KKK가 창설됐어요. KKK라는 이름은 그리스어로 원 또는 집단을 뜻하는 키클로스(kyklos)에 씨족·가족을 뜻하는 클랜(clan)을 조합한 'Ku Klux Klan'을 뜻해요. KKK를 비롯한 백인우월주의자들은 내전 후 패배감과 열등감을 사회적 약자를 향한 공격으로 표출했어요. 그리고 내전 당시 남부군의 영웅이었던 로버트 리 장군이나 제퍼슨 데이비스 남부 연합 대통령의 동상·기념비를 세우기 시작했어요.

◇21세기에 다시 고개 드는 백인우월주의

남부 여러 주 의회는 일명 '짐 크로 법'이라 불리는 인종차별 법을 제정해 흑·백인 사이의 결혼은 물론 공공장소에서 흑인이 백인과 어울리는 것을 금지했어요. 짐 크로(까마귀)는 흑인을 비하해서 부르는 말이에요. KKK는 남부 각 주로 급속히 세력을 넓히고 흑인 및 흑인 해방에 동조하는 백인들까지도 구타하거나 집을 불태우는 등 테러 활동을 벌였어요. 1차 세계대전에 승리하고 애국적 보수주의가 전국을 휩쓸면서 KKK 회원 수는 한때 450만명을 넘어섭니다. 1925년에는 5만명 이상의 KKK 단원들이 워싱턴 중심가를 행진하며 위세를 부리기도 했어요.

그럼에도 미국에는 인종의 평등과 자유, 진보의 가치를 지지하는 사람이 더 많았어요. 2차 세계대전 후 트루먼 대통령은 군대에서 흑백 차별을 금지하고, 아이젠하워 대통령이 인종차별을 위헌으로 공식 규정하면서 KKK의 활동도 제약을 받았죠.

1960년대 들어 마틴 루서 킹으로 대표되는 흑인 민권운동이 본격화하면서 미국 내에서 흑인에 대한 모든 정치적 사회적 차별 철폐를 규정한 시민권법이 의회를 통과했어요. 비폭력 저항으로 노벨평화상까지 받은 킹은 결국 남부 테네시주에서 백인우월주의자의 총탄에 목숨을 잃고 말았어요.

이후 KKK를 비롯한 백인우월주의 단체들이 산발적으로 활동은 했지만 그 위세가 예전 같지는 않았어요. 하지만 최근 극단적 자국 중심주의를 옹호하는 트럼프 대통령이 집권하자 옛날의 '좋았던 시절'을 그리워하는 일부 극우 백인층이 다시 고개를 들고 있어요.

미국 버지니아주(州) 샬러츠빌 해방공원에 세워진 로버트 리 장군 동상 앞에서 백인우월주의 단체 회원들이 모여 시위를 벌이고 있어요. 이 중 일부는 옛 남부연합기와 심지어 나치 상징물을 휘날리기도 했어요. 결국 시위가 폭력적으로 번져 1명이 숨지고 수십명이 다쳤어요.
미국 버지니아주(州) 샬러츠빌 해방공원에 세워진 로버트 리 장군 동상 앞에서 백인우월주의 단체 회원들이 모여 시위를 벌이고 있어요. 이 중 일부는 옛 남부연합기와 심지어 나치 상징물을 휘날리기도 했어요. 결국 시위가 폭력적으로 번져 1명이 숨지고 수십명이 다쳤어요. /AFP 연합뉴스
이번에 폭력 시위가 발생한 샬러츠빌은 3년 전 전미경제연구소(NBER) 조사에서 미국에서 '가장 행복한 도시' 가운데 하나로 뽑혔어요.

또 버지니아는 독립선언문을 쓴 토머스 제퍼슨의 고향이기도 합니다. 1776년 토머스 제퍼슨은 미국 독립선언문에 "모든 사람은 평등하고 삶과 자유에 대한 권리, 행복을 추구할 권리가 있다"고 썼죠. 그런 곳에서 백인우월주의 극우단체들은 '하일 히틀러(히틀러 만세)'와 '지크 하일(승리 만세)'을 연상케 하는 '하일 트럼프' '하일 빅토리'를 외쳤어요. 과거 악명을 떨쳤던 백인우월주의자들이 역사를 거꾸로 돌리려고 발버둥치는 듯합니다.


이정하 천안 계광중 역사 교사 기획·구성=박승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