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경제 이야기] 나랏일 줄어도 공무원 수는 늘어나게 돼 있다?

입력 : 2017.08.18 03:15 | 수정 : 2017.08.23 08:24

[파킨슨의 법칙]

英, 1950년대 식민지 크게 줄었어도 담당 공무원 수 19년간 4배나 늘어
파킨슨 "정부가 세금 올릴 수 있는 한 공무원 수는 업무량과 무관하게 증가"
공무원 급여는 결국 국민들 세금… 60년 전 파킨슨 경고 되새겨 봐야

'파킨슨의 법칙'을 아시나요? "공무원의 수는 업무량과 관계없이 증가하고, 세금을 올릴 수 있는 한 공무원의 숫자는 계속 늘어날 것"이라는 이론이에요. 전 세계의 공무원들이 가장 듣기 싫어하는 이론이라고 하는데요. 최근 정부가 청년 실업 문제 해결을 위해 공무원 수를 늘리는 방안을 추진하자 경제 전문가들이 파킨슨의 법칙을 들어 우려의 목소리를 내고 있어요.

◇일은 줄었는데 공무원은 계속 늘어난다

영국의 역사학자이자 경제학자인 C 노스코트 파킨슨(1909~1993)은 1955년 '이코노미스트' 잡지에 '파킨슨의 법칙'을 발표했어요. 그는 "공무원의 수는 실제 해야 할 일과 무관하게 증가하고, 세금을 올릴 수 있는 한 공무원의 숫자는 무한정 늘어난다"고 주장했어요. 공무원 수가 증가하는 것은 할 일이 점점 많아지기 때문이라고 믿고 있는 대부분의 국민, 그리고 일부 열심히 일하는 공무원으로서는 받아들이기 쉽지 않은 주장이었죠. 그러나 오랜 연구와 경험, 통계에 기반한 파킨슨의 주장은 60년이 지난 지금까지 인정받고 있어요.

정부서울청사에서 공무원들이 점심시간을 맞아 밖으로 나가고 있어요. 최근 정부는 청년 실업 해소를 위해 공무원 채용 규모를 확대하겠다고 밝혔어요. 영국의 역사학자 파킨슨은 1950년대 공무원 수를 늘리는 정부 정책을 비판하며 ‘파킨슨의 법칙’을 주장했죠.
정부서울청사에서 공무원들이 점심시간을 맞아 밖으로 나가고 있어요. 최근 정부는 청년 실업 해소를 위해 공무원 채용 규모를 확대하겠다고 밝혔어요. 영국의 역사학자 파킨슨은 1950년대 공무원 수를 늘리는 정부 정책을 비판하며 ‘파킨슨의 법칙’을 주장했죠. /성형주 기자

파킨슨은 2차 세계대전 당시 영국 해군에 근무하면서 인력구조 변화에 의문을 갖게 됐어요. 1914년에서 1928년까지 14년 동안 해군 장병은 14만 6000명에서 10만명으로, 군함은 62척에서 20척으로 줄었어요. 그런데 같은 기간 해군본부에 근무하는 공무원의 숫자는 2000명에서 3569명으로 오히려 80퍼센트 가까이 늘어났죠. 파킨슨은 이를 이해할 수 없었어요.

1935년과 1954년 사이 영국 식민성의 행정직원 증가도 파킨슨에게 의문투성이였어요. 1940년대 영국은 인도를 포함한 대부분 식민지를 잃어 관리할 지역도 크게 줄었죠. 그런데 식민성의 직원 수는 1935년 372명에서 1954년 1661명으로 매년 꾸준히 5~6%씩 증가했어요.

◇한번 늘린 공무원은 줄일 수 없다

파킨슨은 일과 상관없이 공무원 수가 늘어나는 현상에 대해 두 가지 원인을 제시했어요. 첫째, 공무원은 부하 직원을 늘리려 하는 반면 경쟁자가 늘어나는 것은 바라지 않는다는 점, 즉 '부하 배증의 법칙'입니다. 스스로 업무가 많아서 힘들다고 생각하는 공무원(정말로 그런지 여부와 상관없이)은 다른 부서로 옮기거나 동료를 늘리기보다 부하 직원을 늘리려 한다는 것이에요. 부하 직원을 두면 본인의 지위가 좀 더 확고해질 뿐만 아니라, 업무를 나눠 여러 부하 직원에게 분담시킴으로써 전체 업무를 모두 알고 있는 유일한 사람이 되는 이점을 갖기 때문이죠. 부하 직원 역시 자신의 부하 직원을 두려 하기 때문에 처음의 공무원은 자연스럽게 승진을 하게 됩니다. 이런 과정을 거쳐, 한 사람이 하던 일을 일정 시간이 지나면 여럿이 하게 돼요.

생산성과 관계없이 증가하는 공무원 그래프
둘째, 공무원은 서로를 위해 일거리를 만들어 내는 경향이 있다는 점이에요. 이를 '업무 배증의 법칙'이라고 하죠. 처음 한 사람이 일을 할 때나 같은 일을 여러 사람이 나누어서 할 때나 결과는 같다는 것입니다. 즉, 업무의 본질은 변하지 않지만, 지시, 감독, 보고, 승인 등의 부수적 업무가 늘어나 업무량이 증가하는 것이죠. 결국 공무원 수가 계속 늘어나는 이유는 일이 많아져 사람이 필요한 게 아니라, 사람이 많기 때문에 일이 늘어나고 있는 것입니다. 이 때문에 또 사람이 더 늘어나죠. 그래서 파킨슨은 공무원 수가 절대 줄어들지 않는다고 분석했어요.

◇경제 파탄의 원인 될 수도

여러 선진국이 복지 확대, 고용 안정 등을 추구하며 공무원을 늘리는 정책을 펼쳤지만 대부분 실패했고 일부 국가의 경우 경제 위기로 이어지기도 했어요. 대표적인 사례가 그리스입니다. 2010년 그리스는 인구 1100만명 중 공무원이 85만명이었어요. 노동인구 넷 중 한 명이 공무원이었던 것이죠. 85만 공무원에게 주는 급여만 해도 국내총생산(GDP)의 53%를 차지했어요. 그리스 정부가 실업률을 낮추기 위해 2004년부터 5년 동안 7만5000명을 더 뽑았기 때문이에요.

공무원의 급여와 복리후생비, 연금은 오롯이 국민의 세금에서 나와요. 공무원 수가 늘어나면 국가의 재정이 늘어나야 하고, 국민이 내는 세금도 그만큼 늘어나야 하죠. 그런데 돈 벌어 세금을 낼 사람에 비해 세금으로 월급 받는 사람이 너무 많다면 어떻게 될까요? 그리스 경제가 망가진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어요. 기업가, 근로자, 자영업자처럼 시장 경쟁을 통해 이윤이나 임금을 벌어 세금을 내는 사람은 늘지 않는데 국민의 세금에서 월급을 받는 사람만 갑자기 늘어났으니 어려워질 수밖에 없었던 것이죠.

사회가 복잡해지면서 국가가 해야 할 일이 더 많아졌고, 우리나라의 경우 OECD 국가들에 비해 공무원 수가 적은 것도 사실입니다. 안정적인 직장을 꿈꾸는 청년들에게 공무원은 선망의 대상입니다. 그러나 공무원 증원이 가져올 영향을 장기적 관점에서 본다면 60년 전 파킨슨의 경고를 되새겨볼 필요가 분명 있을 것 같습니다.

심묘탁 (사)청소년교육전략21 사무국장(경제교육 강사) 기획·구성=박승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