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이주은의 미술관에 갔어요] 새우·병아리 등 친숙한 대상 그린 中 '국민 화가'
입력 : 2017.08.12 03:05
피카소도 인정한 中 화가 치바이스
가난해서 미술 교육 받은 적 없지만 목수로 일하면서 틈틈이 그림 몰두
"고귀한 대상만 그릴 필요는 없어" 쉽고 솔직한 그림으로 사랑받았어요
유럽에 피카소가 있다면, 중국에는 이 사람이 있습니다. 바로 치바이스(齊白石·1860~1957)인데요. 피카소와 같은 시대에 살았던 중국의 유명한 화가죠. 실제 피카소는 "중국에 치바이스가 있는데, 왜 중국인이 프랑스 파리에 와서 그림을 배워야 하지?"라는 말을 남겼어요. 예술의전당에서는 한·중 수교 25주년을 기념해 10월 8일까지 '치바이스, 목장(木匠)에서 거장(巨匠)까지' 전시회를 열고 있습니다.
치바이스의 그림들을 한번 구경해볼게요. 작품1을 보세요. 열 마리의 병아리가 전부 한 방향을 보며 걸어가고 있네요. 오른편 글씨 사이에 그려진 병아리 두 마리는 미처 화폭 안으로 들어오지도 못했군요. 병아리들이 향하고 있는 왼쪽 방향에 무슨 구경거리라도 있나 해서 자세히 살펴보니 풀벌레 한 마리가 구석에 몰려 있습니다. 이 호기심 많은 병아리들은 알에서 깨어난 지 얼마 되지도 않은 것 같은데, 이 풀벌레를 먹잇감으로 알아차리긴 한 것일까요? 풀벌레가 펄떡 뛰면 오히려 병아리들이 놀라 종종거리며 도망갈 것 같은데요.
- ▲ (사진 왼쪽부터)작품1 치바이스, ‘병아리와 풀벌레’, 1940년경 / 작품2 치바이스, ‘새우’, 1948 / 작품4 치바이스, ‘고주도해(孤舟渡海)’, 연도 미상. /예술의전당 서예박물관‘치바이스, 목장(木匠)에서 거장(巨匠)까지’展
작품3은 치바이스의 새우를 생각하며 우리나라의 화가 사석원이 그린 새우입니다. 고등학생 때 우연히 치바이스의 그림을 본 사석원은 멋진 붓질에 반해 자신도 화가가 되기로 결심했다고 해요. 이 그림에서는 먹물이 아닌 유화물감을 썼지만, 빈틈 없이 덧칠을 하는 방법 대신 치바이스의 그림에서 본 대로 과감하게 몇 번의 획만으로 새우를 그려냈어요. 붓이 지나간 모양새가 새우의 몸에 그대로 남아 있는 것을 볼 수 있죠.
- ▲ 작품3 사석원, ‘독도 새우’, 2017. /예술의전당 서예박물관‘치바이스, 목장(木匠)에서 거장(巨匠)까지’展
평소에 흔히 볼 수 있는 개구리나 새우, 풀벌레 등을 간략하면서도 실감 나게 그린 그의 그림은 쉬우면서도 솔직하고 표현이 풍부해, 앞서 중국의 옛 선비들이 그린 관념적인 그림들과는 전혀 다른 느낌을 줍니다.
나이 서른다섯이 되도록 고향 밖을 벗어난 적 없던 치바이스는 어느 날 먼 여행을 결심하는데요. 그 이유는 화가로서 한 단계 더 나아가고, 큰 자연 속에서 마음도 더 성숙해지기 위해서였지요. 작품4는 혼자서 배를 타고 바다 위를 둥둥 떠가는 자신의 모습을 그린 것이에요. 그림 오른편에는 이런 시를 써놓았습니다.
'쉼 없이 호수 건너고 바다를 건너, 원하던 걸 이루며 맘껏 돌아다녔네. 고향으로부터 만 리 길 걸을 때까지, 고난을 함께한 것은 배 한 척뿐이네.'
가난한 집 마룻바닥에서 혼자 교본을 보고 따라 그리던 치바이스가 드디어 고생 끝에 화가로서 너른 바다를 만난 모양입니다. 자기만의 새로운 창작의 세계가 열린 순간이겠죠. 치바이스는 오늘날 중국의 국민화가로 불립니다.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포기하거나 멈추지 않고 한 걸음씩 앞으로 나아가 마침내 자신이 원하던 꿈에 도달한 사람이니까요. 변화가 많아 적응하기 힘들고 불안하던 시기에 그는 중국 사람들에게 희망의 등불이 된 예술인이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