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경제 이야기] 원유 매장량 1위인데 파산 위기… 원인은 '포퓰리즘'

입력 : 2017.08.11 03:09

[위기의 베네수엘라]

원유·가스 등 자원부국 베네수엘라… '오일머니'로 선심성 정책 남발
무상복지와 해외원조 확대하면서 국가경쟁력 향상엔 투자 안 해
저유가로 수출 직격탄 맞고 '휘청'… 빚내서 국민 달래려다 더 악화

원유 매장량이 3022억배럴(2016년 기준)로 세계 1위. 그런데 경제성장률은 -10%, 물가상승률은 720%에 달하는 '이상한 나라'가 있어요. 아름다운 풍광으로 '남미의 이탈리아'라고 불리는 베네수엘라예요. 한때 중동 산유국만큼 많은 양의 원유를 수출하며 모두가 풍족하게 잘살았던 베네수엘라는 최근 국가 파산 위기에 빠진 데다 대규모 반(反)정부 시위로 흔들리고 있죠. 땅만 파면 돈이 나온다는 산유국인데 어째서 국민은 먹을 게 없어 쓰레기통을 뒤지는 일이 벌어졌을까요?

◇집·병원·교육… 차베스 "다 퍼줄게"

베네수엘라가 파산 위기를 맞게 된 직접적 원인은 원유 가격이 지속적으로 하락하는 저유가 현상 때문이에요. 국가 전체 수출의 90% 이상을 원유 수출에 의존하는 베네수엘라에 저유가는 큰 타격이었죠. 저유가 사태는 2008년 금융 위기 이후 세계 경기가 전체적으로 침체하면서 나타났어요. 한국은 물론 미국, 중국 등 대부분 지역에서 사람들은 소비를 줄였어요. 물건을 만들어 내는 기업들은 물건이 팔리지 않고 창고에 판매되지 않는 생산품만 쌓이게 되죠. 그 결과 기업들의 생산 활동을 줄이게 되고, 생산 활동에 필요한 석유 소비도 당연히 줄어든 것이죠. 여기다 셰일 오일 채굴 기술의 발전, 신·재생·대체 에너지 기술 개발 등의 이유도 저유가에 한몫했어요. 석유 수출이 국가 소득의 대부분을 차지했던 베네수엘라 경제는 흔들릴 수밖에 없었죠.

베네수엘라는 어떤 나라?
그런데 원유 생산국 중 유독 베네수엘라가 큰 타격을 입은 이유는 따로 있어요. 이 사태를 본질적으로 이해하려면 베네수엘라의 정치 상황을 살펴봐야 합니다. 베네수엘라 경제와 민생이 나락으로 떨어진 근본적 원인은 1999년 취임한 우고 차베스(1954~2013) 대통령의 포퓰리즘 정책에 있어요. 포퓰리즘은 대중이 원하고 다수의 지지를 얻기 위해 선심성 정책을 펼치는 것으로 '대중영합주의'라고도 해요.

좌파 차베스 정부는 석유 생산 및 판매에서 얻은 '오일머니' 대부분을 빈곤 퇴출과 복지에 쏟아부었어요. 병원 치료, 학교교육을 무료로 제공했고 집도 거의 공짜로 나눠주다시피 했어요. 베네수엘라 국민의 50%를 차지하던 빈민층에게는 기초 식료품과 생필품까지 무료 또는 원가 이하 가격으로 분배했죠. 도시의 상수도와 화장실, 냉난방 시설도 막대한 비용을 투입해 크게 개선했어요. 이것도 모자랐는지 차베스는 남미의 다른 좌파 국가들에도 혁명을 지원한다는 명목으로 재정 지원을 아끼지 않았고 심지어 미국과 영국의 빈민을 위해 돈을 내겠다는 통 큰 제안도 했어요. 오일머니의 과감한 분배로 이룬 차베스의 복지 정책은 '차비스모'(스페인어로 차베스주의)라고 불러요.

처음에 차비스모는 국민에게 열렬히 환영받고 실제로 국민의 생활수준을 크게 향상시켰어요. 베네수엘라의 빈곤 인구는 차베스 취임 후 2년 만에 50%에서 27%로 절반 가까이 줄었고, 차베스의 인기는 하늘을 찔렀어요. 서민의 절대적 지지를 업은 차베스는 2009년 국민투표로 대통령 연임 제한까지 폐지하고 내리 4선에 당선됐어요.

◇빚 얻어 복지 확대한 마두로

차비스모가 허상에 불과했음이 드러나기까지는 10년이 채 안 걸렸어요. 앞서 설명했듯 세계적인 경기 침체와 저유가로 베네수엘라 경제는 휘청이기 시작했죠. 차베스 정부는 원유 수출로 얻은 수익을 선심성 복지에만 쓸 뿐 석유 생산 시설에 재투자하거나 다른 산업을 발전시키는 데 투자하지 않았어요. 베네수엘라 국민은 세계 원유 매장량 1위라는 사실과 펑펑 퍼주는 정부만 믿고, 교육이나 직업훈련 등에 열심히 참여하지 않았어요. 10년 넘게 이어져온 포퓰리즘 정책이 국가와 국민 모두를 약하게 만든 것이죠. 이 상황에서 철석같이 믿었던 원유마저 가격이 떨어져 정부와 국민 모두를 위기에 빠뜨렸죠. 2013년 암으로 사망한 차베스의 뒤를 이어 대통령이 된 니콜라스 마두로는 위기를 벗어나기 위해 현실적인 해결책을 내놓기는커녕, 높아진 국민 불만을 잠재우기 위해 오히려 복지 정책을 확대했어요. 이때는 오일 머니가 모자라 외국에서 돈을 빌려야 했죠. 언젠가 유가가 다시 오르길 기대한 모양이에요. 하지만 저유가 사태는 예상보다 길게 이어졌고, 반복해서 빚을 내 복지를 확대한 결과는 참담했어요. 베네수엘라의 국가 빚은 눈덩이처럼 불어났어요. 결국 빚이 베네수엘라를 국가 파산 직전까지 내몰고 있는 실정이죠. 이제야 허상을 깨달은 국민들이 반정부 시위를 벌이고 있지만 마두로 대통령은 오히려 독재 야욕을 강화하고 있어요.

베네수엘라의 파산 위기는 끊임없이 변화하는 세계 변화에 대응하지 못하고, 정권 유지를 위해 국민 눈을 속이는 정책만 펼친 정부의 책임이 매우 커요. 결과는 원유 매장량 1위인데도 굶주리는 국민이라는 희대의 모순으로 이어졌죠. 한국도 두 번의 경제 위기를 슬기롭게 이겨낸 적이 있어요. 하지만 지금 이 시간에도 변화하는 세계적 흐름 속에서 생겨나는 다양한 위험 요소가 한국 경제를 위협할 수 있죠. 그래서 우리는 언제 닥칠지 모르는 새로운 위험에 대비해 제2의 베네수엘라가 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조운학 세명컴퓨터고 사회 교사 기획·구성=박승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