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숨어 있는 세계사] 귀족 위한 '곡물법' 폐지 등 고비마다 변화의 길 찾았어요

입력 : 2017.08.10 03:09

[영국의 보수 정당]

토리당에서 출발한 영국 보수 정당… 원래는 기득권층 이익 대변했지만
19세기 중간계급으로 선거권 확대, 20세기 복지 제도 정착에 앞장서
시대적 요구에 부응하는 정책 마련… 300년 정당 지속해온 원동력이죠

자유한국당 홍준표 대표가 이번 여름휴가 기간 동안 영국 보수당의 혁신에 관한 책을 읽었다고 해요. 영국 보수당의 재건 과정에 대해 공부해 한국당의 혁신에 접목시키겠다는 취지로 전해졌어요. 현재 영국의 대표적인 보수 정당으로는 '보수당(Conserva tive)'과 그의 옛 동지이자 적이었던 '자유민주당(약칭 자유당·Liberal Democrats)'이 있습니다. 300년 이상 그 존재를 인정받아온 영국 보수 정당들의 역사 속에서 우리는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요.

◇시대의 변화를 수용한 보수

17세기 무렵부터 영국의 양대 정당으로 자리매김한 토리당과 휘그당은 원래 왕에 맞서 귀족과 기득권층의 이익을 대변했어요. 산업혁명 이후 정치 지형이 크게 바뀝니다. 새로 성장한 자본가, 도시 중간계급이 중요한 정치 주체로 등장한 것이죠. 토리당의 총수 로버트 필(1788~1850)은 새 계급의 중요성을 간파했어요. 그는 이들의 지지를 구하기 위해 수입 곡물에 높은 관세를 매기던 '곡물법'의 폐지를 주장했죠. 이는 토지 소유 귀족(지주)들의 반발을 샀고, 보수당 내에서도 심각한 분열을 일으켰어요. 이때 갈라져 나온 정파가 1859년 휘그당과 연대해 '자유당'을 탄생시켰죠. 고통은 있었지만, 곡물법 파동은 귀족들 편에만 서던 토리당이 산업 자본가와 시민계급으로 외연을 확장하는 계기가 돼요.

영국 보수당 소속의 데이비드 캐머런 전 영국 총리가 의회에서 연설하고 있어요.
영국 보수당 소속의 데이비드 캐머런 전 영국 총리가 의회에서 연설하고 있어요. 17세기 토리(Tory)당에 뿌리를 두고 있는 영국 보수당은 300년이 넘는 세월 동안 부침과 분열을 거듭하면서도 전통과 애국이라는 가치를 중심으로 영국 정치를 이끌어왔어요. 보수당 출신 총리는 윈스턴 처칠, 마거릿 대처, 그리고 현직인 테리사 메이 등이 있어요. /영국 의회
1874년 총리가 된 디즈레일리(1804~1881)는 이런 기조를 더욱 강화했어요. 그는 처음에 곡물법 폐지에 반대했지만 점차 자유무역에 동조하면서 곡물법 폐지로 입장을 바꿨어요. "보수당은 엘리트나 어느 특정 계급의 당이 아니라, 전 국민의 당이 돼야 한다"는 그의 연설에서 알 수 있듯, 디즈레일리는 계급을 초월해 영국인의 '애국심'에 지지를 호소했어요.

보수당은 1860년 자유당보다 개혁적인 선거법 개정안까지 통과시키면서 선거권 확대를 주도해 나갔어요. 시대의 요구를 수용하면서 중간계급을 포섭하고, 아울러 애국심으로 뭉친 '보수적 노동자'까지 끌어안는 데 성공했어요. 이후 보수당과 자유당은 곡물법 파동과 다섯 차례의 선거법 개정을 거치면서 귀족 중심 정치에서 벗어나 자유주의의 확산에 기여했어요.

◇복지 제도의 틀을 놓다

20세기 대중 민주주의 시대로 접어들며 자유당을 제치고 보수당의 새로운 맞수로 떠오른 것은 바로 노동당(Labour Party)이에요. 서민과 노동자 계급의 지지를 업고 진보적 가치를 추구하는 노동당은 1929년과 1945년 총선에서 잇따라 보수당을 누르고 집권당이 되기도 했죠. 위기를 느낀 보수당은 스스로 변화의 길을 찾아나섰어요.

1808년경 영국 하원의 모습을 그린 그림이에요.
1808년경 영국 하원의 모습을 그린 그림이에요. 영국 의회에는 이보다 훨씬 전인 17세기 무렵부터 정당들이 등장해 의회민주주의의 토대를 닦았어요. /위키미디어
보수당은 진보적 경제학자 윌리엄 비버리지가 작성한 '비버리지 보고서'에 기반해 사회보장제도를 획기적으로 개선하는 데 앞장섰어요. 야당 시절인 1947년 '산업헌장'을 발표하고 정부의 시장 개입, 노사 협력, 국민의료보험(NHS) 설립 등 복지에 대한 국가 책임 등을 받아들였죠. 이런 개념들은 당시 보수당으로선 혁명적이었어요. 윈스턴 처칠은 '산업헌장'이 "사회주의적"이라고 비판했다고 해요.

1951년 다시 집권한 후에도 보수당은 노동당이 추진한 사회보장 및 복지 제도 도입 노력을 이어갔어요. 이렇듯 보수당은 영국이 현대적인 복지 시스템을 확립하는 데 노동당 못지않게 중요한 역할을 하면서 다시금 국민의 마음을 얻는 데 성공했죠. 이후 현재까지 영국은 보수당과 노동당이 번갈아 집권하면서 양당 체제를 형성하고 있어요. 참고로 자유당은 선거에서 고전을 면하지 못하고 지지율 한 자리 숫자대를 유지하는 정도에 머물러 있습니다.

보수당과 자유당은 둘 다 19세기까지 사회적 약자보다 기득권층의 이익을 대변하던 정당이었어요. 그럼에도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영국 보수 정당들이 라이벌 정당과의 경쟁 속에서도 시대적 변화를 읽고, 국민의 요구를 수용하면서 궁극적으론 영국의 발전을 위해 끊임없이 개혁을 해왔다는 점입니다.


[토리당과 휘그당]

영국 보수 정당의 기원은 17세기 토리당(Tory Party)과 휘그당(Whig Party)의 탄생에서 찾을 수 있어요. 1670년 왕위 계승 문제를 둘러싸고 귀족들은 국왕 쪽 의견을 옹호하는 파와 의회 쪽 의견을 옹호하는 파가 서로 대립했는데요. 서로를 '도둑'이나 '악당'에 빗대다가 국왕파는 '토리', 의회파는 '휘그'라 불리게 돼요. 토리(Tory)는 아일랜드어로 '산적'을 지칭하고, 휘그(Whig)는 스코틀랜드어로 '말 도둑'을 의미해요. 서로를 비방하기 위해 쓰던 말이 점차 파벌을 지칭하는 용어로 굳어지게 된 것이죠. 두 정당은 서로 경쟁하는 와중에도 힘을 합쳐 명예혁명(1689년)을 성공시키고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의 통일(1707년)을 이루는 등 영국 입헌군주제의 토대를 마련해갔어요.


이정하 천안 계광중 역사 교사 박승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