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재미있는 과학] 번개를 잡아 전기에너지로 쓸 수 있을까?
[번개와 에너지]
지상으로 내리치는 번개 '벼락'
구름과 지표면 사이 전류 이동 현상, 100W 전구 10만개 1시간 켤 수 있어
낙뢰 붙잡아 전기에너지로 활용 연구… 초기 단계지만 활발히 진행 중이에요
올 장마철에 우리나라 곳곳에서 천둥과 번개가 내리쳤어요. '번쩍' 하면서 하늘을 가르는 번개는 대대로 인류에게 공포와 경외 대상이었죠. 그리스 신화에서도 최고의 신 제우스는 바로 '번개의 신'이었어요. 과학이 발전하면서 번개는 전기에너지로 이뤄졌다는 사실이 밝혀졌죠. 요즘 원자력발전과 대체에너지에 관심이 높은데, 그렇다면 자연에서 발생하는 번개 에너지를 활용할 수 있지 않을까요? 번개는 어떻게 발생하는 것일까요?
◇구름의 충돌이 만든 현상 '번개'
한반도 아래쪽에 북태평양에서 올라온 무덥고 습한 공기 덩어리가 있고, 위쪽에는 오호츠크해에서 내려온 차갑고 습한 공기 덩어리가 있어요. 이 공기 덩어리가 만나 힘겨루기하면서 장마가 생기는 거죠. 구름을 형성하는 작은 물방울과 얼음 알갱이 가운데 작은 것은 전기적으로 음(-)전하(電荷), 큰 것은 양(+)전하를 띠어요. 이들이 서로 끌어당기거나 충돌하면서 전기가 방출되죠. 전기가 방출되는 현상이 바로 '번개'예요. 번개는 강력한 전하를 가진 구름 덩어리가 다른 구름 덩어리를 만날 때도 발생해요.
번개는 발생하는 형태에 따라 부르는 이름이 달라요. 구름과 구름 속에서 발생하는 불꽃 현상은 번개라 하고, 구름과 땅 사이에 발생하는 불꽃 현상은 벼락이라 불러요. 번개가 공기 중을 이동할 때 매우 높은 열이 나는데, 이때 나는 소리가 천둥이죠. 사실 번개와 천둥은 그 자체가 위험하진 않아요. 땅에 내리꽂는 벼락이 위험하죠. 우리나라는 벼락의 약 90%가 여름철에 발생해요.
- ▲ 그래픽=안병현
물이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르듯 번개도 전압이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흘러요. 이 때문에 전압이 높은 구름 사이에서 발생한 번개가 전압이 거의 없는 땅으로 떨어지는 것을 '벼락이 쳤다'고 해요. 낙뢰(落雷)라고도 하는 벼락은 특히 우박이나 강한 비가 내릴 때 발생할 가능성이 커요. 음전하를 띠는 큰 얼음 알갱이들이 구름 아래쪽으로 이동해 지표면에 양전하가 집중되는 지역(땅에서 솟아오른 고층 건물이나 나무)에 내리치면서 강한 전류를 흘려보내요. 그래서 건물 옥상 높이 피뢰침을 세우고 벼락을 그곳으로 유도해 인명 피해를 막기도 하죠.
◇럭비공처럼 튀는 벼락
벼락이 공급하는 전력량은 어느 정도일까요? 벼락은 빛 속도의 10분의 1 정도로 빠르며, 벼락이 지나간 주변 온도는 2만7000도로 태양 표면 온도의 4배나 돼요. 또 전압은 1억~10억볼트, 전류는 수만 암페어에 이르죠. 벼락이 한 번 내리칠 때 전기에너지는 100W짜리 전구 10만개를 약 1시간 동안 켤 수 있는 전력량(1시간당 1만kWh)과 맞먹어요. 수도권 전력 소비량의 약 20%를 공급하는 국내 최대 영흥화력발전소의 발전 용량이 80만kWh예요. 벼락이 80번 내리치면 영흥화력발전소를 1시간 가동한 만큼의 전기를 얻을 수 있는 거죠. 이처럼 벼락은 순간적이지만 엄청난 에너지를 품고 있답니다.
그렇다면 번개로 전기를 생산하는 시설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요? 여기엔 몇 가지 제약이 있습니다. 우선 번개는 '번개'처럼 사라질 뿐 전력을 생산할 만큼 꾸준히 발생하지 않아요. 번개의 지속 시간은 길어야 100분의 1초. 눈 깜빡할 시간 동안만 존재하기 때문에 인류가 산업적으로 쓸 수 있는 양은 많지 않아요. 기존 발전소를 대체하려면 1분에 한 번 이상은 벼락이 쳐야 해요.
또 벼락의 에너지를 붙잡아서 저장할 수 있어야 하는데, 벼락을 잡는 게 쉬운 일이 아니죠. 벼락 에너지를 온전히 붙잡으려면 전기저항이 0에 가까운 초전도 저장 장치가 필요해요. 하지만 벼락의 전기를 거의 무한대로 온전히 붙잡을 수 있는 소재는 아직 찾지 못했어요.
벼락이 어디에 내리칠지는 최신 기상 기술로도 예측하기 어려워요. 설사 예측한다 해도 그 지점마다 쫓아다니며 전력 생산 발전소를 만든다는 것은 현재로선 무리예요. 만약 인류가 벼락을 늘 일정한 장소에만 떨어지게 할 수 있다면 발전소를 세울 수 있겠죠. 하지만 아직 인류는 원하는 위치에 벼락이 치게 하는 기술을 개발하지 못했어요.
◇번개 발생 원리 활용한 발전기 개발
과학자들은 포기하지 않고 번개의 엄청난 에너지를 저장할 방법을 찾고 있는데, 의미 있는 진전이 지난해 10월 한국에서 있었어요. UNIST(울산과학기술원) 백정민 교수팀은 번개 원리를 이용해 전기를 생산하는 '마찰 전기발전기'를 개발해 국제 학술지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에 발표했어요.
연구진은 구름 안에서 수증기 분자가 얼음 결정과 마찰하는 과정에서 전하가 분리되고 축적됐다가 엄청난 에너지를 지표면으로 방출하는 점에 착안했어요. 그리고 수증기 분자와 얼음처럼 서로 마찰시킬 수 있는 신소재를 개발했죠. 이런 신소재로 3층 구조의 마찰 전기발전기 시스템을 구성했어요. 마찰 전기발전기 가운데에는 접지층을 삽입해, 마찰 시 발생하는 전하가 외부 회로로 이동할 때 전하가 손실되는 것을 막았어요. 이미 발명한 인공 번개 발전기보다 효율을 100배 정도 높였죠.
현재 연구진이 개발한 마찰 전기발전기로 저장되는 전력은 스마트폰과 스마트시계의 배터리를 충전하는 정도예요. 그러나 언젠가 전력 발생량을 높여 전기자동차를 움직이는 날도 오지 않을까 기대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