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뉴스 속의 한국사] 게장과 생감 함께 먹여 왕을 독살했다?

입력 : 2017.08.08 03:15

[식중독에 걸린 경종]

유독 병치레 잦고 허약했던 경종
아픈 와중에 게장·생감 함께 먹더니 복통과 설사 심해져 결국 숨져
'영조가 독살했다' 소문 퍼졌지만 식중독 증세 악화로 사망 추측돼요

최근 폭염과 습한 기후 탓에 식중독 발생 건수가 늘고 있어요. 식품의약품안전처에 따르면 2014년부터 지난해까지 발생한 전국 식중독 환자 중 45%가 6월에서 8월 사이에 발생했다고 하니, 각별히 주의해야겠어요. 지금처럼 냉장고가 없었던 옛날에는 더운 여름철에 음식이 상하기가 쉬웠을 거예요. 상한 음식을 먹고 식중독에 걸리는 경우 역시 더 많았을 것이고요. 조선의 제20대 왕 경종도 식중독 때문에 사망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는데, 어떤 일이 있었는지 알아보기로 해요.

◇장희빈의 아들, 당쟁에 시달리다

1688년 10월 27일 숙종의 후궁 장씨가 첫 왕자 '윤'을 낳았어요. 장씨는 조선왕조실록에 "자못 얼굴이 아름다웠다"고 기록된 장희빈이었죠. 당시 후사가 없었던 숙종은 왕자 윤을 원자로 삼으려 했어요. 원자(元子)란 아직 왕세자에 책봉되지 않은 임금의 맏아들을 말해요. 송시열 등 서인 측 신하들은 "윤은 후궁이 낳은 왕자이며, 중전이 아직 젊어 충분히 아이를 낳을 수 있을 땐 기다렸다가 원자를 정하는 게 왕실의 법도"라며 반대하고 나섰어요. 희빈 장씨에게 푹 빠져 있던 숙종은 반대하는 신하들을 귀양보내고, 서인의 딸인 왕비 인현왕후 민씨를 중전 자리에서 물러나게 한 뒤 희빈 장씨를 새 왕비로 삼았어요. 그리고 1690년 윤을 세자로 책봉했죠.

그런데 숙종과 희빈 장씨 사이는 곧 멀어졌어요. 숙종은 인현왕후를 다시 왕비로 삼고, 희빈 장씨는 예전처럼 빈으로 강등시켰는데 1701년 인현왕후가 병을 얻어 죽고 말아요. 이내 희빈 장씨가 무당을 불러 인현왕후를 저주했다는 혐의를 받게 됐죠. 이때 소론과 노론으로 갈려 당쟁을 일삼던 서인들은 각기 다른 주장을 했어요. 소론은 세자를 생각해 희빈 장씨를 용서해달라 했고, 노론은 큰 죄를 지었으니 벌을 내리라고 했어요. 결국 숙종은 희빈 장씨에게 사약을 내렸고 희빈 장씨를 감쌌던 소론 측 인물들을 조정에서 내쫓았어요.

세자 윤은 허약한 체질에다 어머니의 죽음에 큰 충격을 받고 시름시름 앓는 경우가 많았어요. 숙종은 노론의 우두머리 이이명을 조용히 불러 또 다른 후궁 숙빈 최씨가 낳은 왕자 연잉군을 세자의 후계자로 삼아 정치를 배우게 하라고 지시했죠. 1720년 숙종이 60세의 나이로 죽음을 맞자 그를 이어 몸이 허약한 세자 윤이 왕위에 올랐는데 그가 바로 경종이에요. 경종이 서른 살이 넘었는데도 뒤를 이을 왕자가 없자 노론 측에서는 연잉군을 세제(世弟)로 삼게 했어요. 1724년 경종이 죽자 연잉군이 왕위를 이어 조선의 21대 왕 영조가 되죠. 그런데 소론 측 사람들은 경종의 죽음에 의심을 품었어요.

◇음식 잘못 먹어 병세 악화

1724년 8월, 경종의 병이 갑자기 악화돼 음식을 넘기기 어려울 정도였는데 게장과 생감을 올리자 뜻밖에도 맛있다고 하며 잘 먹었대요. 그러나 다음 날부터 심한 복통과 설사로 의식을 잃었죠. 경종은 밤새도록 가슴과 배가 뒤틀리는 고통을 겪었다고 해요. 세제 연잉군은 경종의 기운을 회복시키기 위해 인삼과 부자를 처방하라고 했어요. 경종에게 인삼과 부자를 먹이자 눈빛이 안정되고 콧등이 따뜻해지며 기운이 돌아오기 시작했지만 그것도 잠시, 새벽 즈음이 되자 경종의 병세는 다시 위독해졌고 결국 세상을 떠나고 말지요.

기사 관련 일러스트
/그림=정서용

경종의 병세가 설사와 복통이 심했다는 기록으로 봐서 식중독이 아닐까 짐작해요. 단백질이 풍부한 게장과 탄닌이라는 성분이 들어있는 감을 함께 먹으면 복통과 설사, 식중독을 일으키기 쉽다는 것이 한의사들의 설명이죠. 16세기 명나라 약학서 '본초강목'은 "게를 감과 함께 먹으면 복통이 나고 설사가 난다"고 전했어요. 게와 감이 만나면 독이 된다는 것이죠.

경종이 죽은 뒤 한동안 경종에게 게장과 생감을 먹으라고 한 사람이 영조였다는 소문이 퍼졌어요. 영조가 왕위에 오르는 것을 반대했던 소론 측 인물들이 퍼뜨린 이야기죠. 소론 측 인물로 영조 때 반란을 일으킨 이인좌는 경종의 죽음에 영조가 관련돼 있다고 주장했어요. 역시 소론 측 인물로 반란을 일으켜 영조에게 심문을 받던 신치운은 영조 앞에서 영조가 왕이 된 뒤로 자신은 게장을 먹지 않는다고 말했어요. 영조가 준 게장을 먹고 경종이 죽었다는 것을 비꼬아 한 말이지요.

영조는 경종에게 게장과 생감을 올리라고 한 것은 자신이 아니라 수라간에서 올린 것이라고 해명했지만, 경종을 따르던 소론 측 사람들은 이를 믿지 않았던 것이죠. 게장이나 생감이 경종의 죽음에 직접적 원인이 됐는지는 정확하게 알 수 없지만, 허약해진 몸이 식중독 같은 병에 걸리고 식중독 치료에 도움보다는 오히려 해가 되는 음식을 먹어 불행을 당한 것은 확실한 것 같아요. 식중독은 여름철에 걸리기 쉬운 만큼, 조심 또 조심해야겠어요.

☞조상들이 즐겨 찾던 식중독 특효약

조상들이 예로부터 식중독을 막기 위해 즐겨 먹은 음식은 매실과 생강, 후추예요. 생강은 고려시대 문헌인 ‘향약구급방’에 약용 식물로 기록돼 있어 일찍부터 한반도에서 재배된 것으로 짐작해요. 식중독균을 죽이는 살균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죠. 매실도 식중독을 일으키는 여러 세균에 저항하는 효능이 있는데 고려 초기부터 약재로 쓰였어요. 후추 역시 고려시대에 전해졌어요. 민간에서는 아침마다 후추를 먹으면 더위와 추위를 타지 않는다고 생각했대요. 여름에는 후추 한 알만 먹어도 식중독 등 배탈이 나지 않는다고 믿었다고 해요.

지호진·어린이 역사저술가 기획·구성=박승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