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이 주의 책] "하늘이 보고 있습니다"… 사관은 王이 가장 두려워한 사람

입력 : 2017.08.04 03:06

조선왕조실록―목숨을 걸고 기록한 사실

왕이 말을 달려 노루를 쏘다가 말이 거꾸러져 떨어졌으나 상하지는 않았다. 왕이 좌우를 돌아보며 말하기를 "사관(史官)이 이 일을 알게 하지 말라" 했다(태종실록 7권).

조선 3대 임금이었던 태종은 사냥에 나갔다가 굴러떨어졌다는 사실이 전해지지 않기를 바랐어요. 요즘 말로 '쪽팔리는' 일이니까요. 그렇지만 역사를 기록하는 사관들은 알리지 말라는 말까지 죄다 받아 적었군요. 그래서 왕 입장에서는 눈엣가시 같은 신하가 사관이었어요. 알리고 싶은 일도, 알리고 싶지 않은 일도 시시콜콜한 사건도 모두 글로 남기니까요. 이들은 조선 태조부터 철종까지 25대(代), 472년 역사를 적었어요.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조선왕조실록'(국보 제151호)은 그렇게 만들어진 것이죠. 덕분에 우리는 태종이 말에서 굴러떨어졌던 것처럼 당시 벌어졌던 일을 알 수 있게 됐지요. 사관 덕분에 강력한 권력을 가진 왕도 스스로 몸가짐을 조심해야 했답니다.

기사 관련 일러스트
/사계절

'조선왕조실록 목숨을 걸고 기록한 사실'(사계절)은 실록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사관들은 어떻게 선발됐고 어떻게 역사를 기록했는지에 초점을 맞춘 책이에요. 100년에 걸친 왕과 사관의 대립, 실록을 어떻게 보관했는지에 대한 이야기, 실록을 고쳐 써 달라는 왕의 요구에 어떻게 대처했는지 등이 담겼어요. 처음 예로 들었던 태종은 사관을 꺼렸어요. 요즘으로 치면 청와대 대통령 집무실에 사관이 들어오는 걸 막았답니다. 공식 회의에만 참석하면 된다고 이야기했어요. 실제로 나라를 다스리기 위한 주요 결정은 집무실에서 내리면서요. 사관들은 "전하, 하늘이 보고 있습니다"라고 은근히 협박조로 말해요. 이런 대립이 100년을 이어져온 끝에 사관들은 임금 옆에서 역사를 기록할 권리를 얻어내요. 사실 그대로의 기록이 가지는 힘이 어떤 것인지 생각하게 한답니다.

실록에 대한 깨알 같은 지식도 줘요. 조선왕조실록을 모두 쌓아올리면 15층 아파트 비슷한 높이(35m)가 돼요. 1893권 888책 분량이지요. 권과 책이라니 무슨 뜻이냐고요? 요즘은 한 권, 두 권 하듯 책 개수를 셀 때 '권'이라고 하지요. 그런데 여기서는 권이 장(章)이라는 의미로 쓰였어요. 요즘 말로 하면 "1893개 주제를 책 888권에 나눠 묶었다"는 뜻이겠네요. 왜 다른 주제를 한데 묶었을까요. 당시에는 종이를 실로 꿰매서 책을 만들었기 때문에 일정 두께가 되어야 책으로 묶을 수 있었기 때문이에요.

우리말로 번역한 실록 원문은 인터넷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어요. 어린이 눈높이에 맞게 쉽게 풀어낸 이야기 조선왕조실록 책도 많지요. 그런데 실제로 실록은 어떻게 쓰였고, 사관들은 어떤 사람들이었을까요? 이 책은 그 궁금증을 풀어준답니다.

 

양지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