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경제 이야기] 월급이 오르면 그만큼 돈을 더 많이 쓸까요?

입력 : 2017.08.04 03:10

[소득 주도 성장론]

내년 최저임금 시간당 7530원 책정, 오름 폭은 16.4%로 예년의 3배 넘어
소득 늘려 중산층의 구매력 높이고 소비 확대와 경제 성장 기대하지만
기업은 생산 비용 증가 압박으로 투자와 고용 줄일 가능성도 있어요

최저임금이 많이 오른대요. 올해 최저임금은 한 시간에 6470원인데, 내년엔 한 시간에7530원으로 올해보다 무려 16.4%나 오를 전망이에요. 4~5년 전만 해도 매년 5%가량이던 최저임금 오름 폭이 내년엔 무려 세 배 이상으로 뛰는 거죠. 정부는 최저임금법을 통해 근로자가 최저 수준 이상의 임금을 받도록 정해 놓았는데요. 근로자들이 최저임금으로 일정한 수준 이상 생계를 보장받게 되면 사기가 올라가서 일의 능률을 높일 수 있죠. 기업 처지에서는 나라에서 정한 대로 적정한 수준의 임금을 지급하게 되니 공정한 경쟁을 할 수 있고, 나아가 경영 합리화의 계기도 마련하게 된답니다.

◇최저임금 올리면 소비가 늘어난다?

정부가 내년 최저임금을 많이 올린 것은 나라 전체의 소비가 늘어나길 바라기 때문이에요. 최저임금을 올리면 그만큼 근로자가 쓸 돈이 늘어나 소비를 늘리게 되고, 소비가 늘면 상품이 많이 팔려 생산도 늘리게 된다는 논리죠. 생산을 늘리려면 고용을 늘려야 하고, 고용이 느는 만큼 돈 쓰는 사람이 늘어나서 결과적으로 나라 경제가 성장한다는 것이에요. 최저임금 인상으로 저소득 근로자의 소비를 늘리면 그만큼 경제가 안정적으로 성장할 것이라 본답니다.

지난달 16일 서울 한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생이 상품을 정리하고 있어요. 정부는 내년부터 근로자의 최저임금을 시간당 7530원으로 인상하기로 결정했어요. 전반적인 소득을 높여 소비를 촉진한다는 ‘소득 주도 성장’ 정책의 일환이에요.
지난달 16일 서울 한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생이 상품을 정리하고 있어요. 정부는 내년부터 근로자의 최저임금을 시간당 7530원으로 인상하기로 결정했어요. 전반적인 소득을 높여 소비를 촉진한다는 ‘소득 주도 성장’ 정책의 일환이에요. /김연정 객원기자
그런데 최저임금이 갑자기 많이 오르면 힘들어지는 이들도 생기게 마련이에요. 인건비 부담이 지나치게 늘면 지불 능력이 부족한 영세기업들은 살아남기 어렵거든요. 그래서 소상공인이나 일부 중소기업은 경영 악화를 우려하고 있어요. 형편이 좀 나은 기업도 어렵기는 마찬가지예요. 최저임금을 올리면 연쇄적으로 모든 근로자의 임금을 올려야 하는 일도 생기거든요. 그래서 기업들의 수익성이 나빠지면 간신히 회복 기미를 보이고 있는 우리 경제가 또다시 어려워질 가능성도 높아요.

최저임금마저 제대로 받지 못하고 일하는 사람들도 걱정이에요.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회원국의 최저임금 미달자 평균 비율은 전체 근로자 가운데 5% 정도에 불과한데 한국에서는 이 비율이 15%(약 280만명)가량 되거든요. 최저임금이 아무리 올라도 이런 사람들은 실질적 혜택을 받지 못할 가능성이 높아요.

◇소비가 늘어나면 경제가 성장한다?

전통적인 경제 이론은 기업의 투자가 늘어야 경제가 성장할 수 있다는 것이에요. 투자를 늘리면 고용과 소비가 함께 늘어나서 경제성장이 이뤄지죠. 그런데 경제가 성장해도 양극화로 계층 간 소득 격차만 커질 뿐 저소득층과 중산층의 삶이 나아지지 않자 '소득 주도 성장론'이 등장했어요. 근로자의 임금 인상과 교육·복지 등 사람에 대한 투자 확대를 통해 저소득층과 중산층의 소득을 늘려야 소비가 확대되고, 기업 투자가 늘어나 자동적으로 성장이 이뤄진다는 거예요. 현 정부가 나서서 근로자의 임금 수준을 올리려는 것도 이 '소득 주도 성장론' 정책을 추진하는 차원이죠. 정부가 근로자의 몫을 제대로 챙겨줘야 소비가 늘고, 경제 전체의 수요가 늘어나 경제가 안정적으로 성장한다고 보는 이론입니다.

그렇지만 임금이 오르면 기업으로서는 곧바로 생산 비용이 늘어나는데, 세계시장에서 치열한 경쟁을 펼치고 있는 기업 처지에서는 생산 비용 증가를 제품 가격에 그대로 반영하기가 어려워요. 만약 가격을 인상하면 경쟁력이 나빠져 수익성이 떨어집니다. 근로자 임금이 오른 만큼 소비가 늘어난다 하더라도 투자 확대가 이뤄지려면 상당한 기간이 필요하기 때문에 현실성이 떨어져요.

또 소득이 늘면 그게 곧바로 소비로 이어진다는 주장에 대한 반박도 만만치 않아요.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 밀턴 프리드먼은 "사람들은 그때그때 소득이 아니라, 장기간에 걸쳐 벌어들일 소득을 고려해서 소비한다"고 했죠. 당장 월급이 올랐다고, 모든 사람이 거기에 비례해 씀씀이를 늘리지는 않아요. 추가 소득을 저축하는 사람들도 분명 있을 테니까요.

◇임금 인상은 '양날의 칼'

최근 국제노동기구(ILO)도 최저임금 인상을 통해 성장을 이룰 수 있다고 주장했어요. 임금 상승이 소비를 진작해 총수요를 유도하고 이는 다시 투자를 촉진해 고용과 성장이 가능하다는 것이죠. 최저임금 인상이 기업을 자극해서 산업 구조가 고부가가치 산업으로 바뀌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는 언급도 했어요.

그러나 ILO도 보고서에서 "최저임금을 올리면 고용이 줄어들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어요. 비용 압박을 받는 기업들이 투자를 줄일 경우 고용이 많이 줄어들 수밖에 없죠. 영세기업은 아예 문 닫을 우려가 있고, 대기업도 인건비를 줄이기 위해 임금 수준이 낮은 해외로 생산 기지를 옮길 수 있어요.

즉 임금 수준은 나라 전체로 보면 상품 구매력을 나타내지만, 동시에 기업에는 생산 비용이기도 해요. 임금 인상은 소비 증가로 내수 확대에 긍정적 영향을 미칠 수도 있지만, 생산 비용 증가로 투자를 꺼리게 만들 수도 있는 '양날의 칼'입니다.


천규승 미래경제교육네트워크 이사장 기획·구성=박승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