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동물 이야기] 먹이 찾아 툰드라 大이동… '절벽에서 집단 투신'은 오해예요

입력 : 2017.08.03 03:07

레밍

레밍이라는 쥐가 최근 우리 사회에서 화제가 됐어요. 레밍이 집단으로 우르르 몰려다니다 절벽에서 떨어져 다 같이 죽는다며 그 모습이 마치 국민과 같다고 빗댄 정치인이 있었죠. 그러나 레밍에 대한 이런 선입견은 사실과 다릅니다. 먹이를 찾아 행군하다 많은 개체가 허약해지고 병들어 뒤처지고 죽어나갈 뿐이지 죽기 위해 몰려다니는 것은 아니거든요. 레밍이 집단으로 절벽에서 뛰어내린다는 오해는 과거 미국의 어느 TV 프로그램에서 만들어낸 게 널리 퍼진 것이라고 해요. 그렇게 대규모로 자살하는 동물은 없어요. 오히려 레밍은 생태계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동물입니다.

레밍
/위키미디어
북쪽 영구동토 '툰드라'에 분포하는 레밍은 몸길이 7~15㎝에 무게 30~110g으로 생쥐 정도 크기예요. 몸이 워낙 작아 얼기 쉽지만 생존하는 방법을 알고 있죠. 영하 수십 도로 기온이 내려가도 15㎝보다 깊은 눈속은 기온이 0도 정도예요. 레밍은 이보다 더 깊은 땅속까지 굴을 파고 살아요. 복잡하게 땅굴을 파고 출입구도 여기저기 뚫어놓아, 천적인 흰올빼미나 북극여우, 북방족제비로부터 도망가요. 툰드라의 춥고 긴 겨울은 눈에 파묻힌 풀과 이끼를 찾아 먹는 레밍에게도, 눈에 불을 켜고 레밍을 찾는 맹수에게도 하루하루가 죽음의 시련인 셈이죠.

레밍은 쥐와 같은 설치류로 작고 까만 눈, 귀, 짧고 뭉툭한 꼬리를 갖고 있어요. 부드럽고 긴 흑색과 갈색 털에 덮인 몸은 둥그스름해요. 발이 짧지만 납작한 첫째 발가락으로 눈을 파요. 넓적한 발바닥과 예리한 발톱으로 눈밭이나 얼음이 언 곳도 잘 다녀요. 뭉툭한 코를 털이 빼곡하게 둘러싸고 있어 체온 손실이 적고 숨 쉴 때 찬 기운도 막아줘요. 털가죽은 여우목도리 못지않게 좋은 모피 제품의 재료이기도 해요. 찍찍거리는 다른 쥐들과 달리 큰 소리로 짖을 수도 있어요. 적의 침입을 무리에게 알리고 경고하는 습성에서 발달한 특징이에요.

레밍은 생후 5~6주면 짝을 짓고 임신 기간은 20일이에요. 한 번에 새끼를 7마리 정도 낳는데 여름 한 철에 여섯 번까지도 낳아요. 개체 수가 급증해 풀과 이끼가 동나면 먹이를 찾아 대규모 이동을 해요. 이때 많은 개체가 이동 중 무더기로 죽어나가요. 강을 건너다 익사하거나 오랫동안 못 먹어 굶어 죽고 말죠.

레밍 집단은 약 4년마다 폭발적인 증식과 대붕괴가 번갈아 나타나요. 레밍의 붕괴로 풀과 이끼가 다시 자라나면 또 레밍이 폭발적으로 늘어나요. 레밍이 늘어나면 툰드라의 육식동물이 늘어나고, 레밍이 줄면 이들도 줄어들어요. 레밍이 툰드라의 식물과 식생을 조절하고 육식동물 개체 수마저 조절한다는 점에서 레밍을 툰드라 생태의 핵심 종이라고 보고 있어요.


김종민 박사(前 국립생태원 생태조사본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