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재미있는 과학] 영하 196℃에서 해동을 기다리는 사람들

입력 : 2017.08.02 03:08

[냉동 인간]

야구 선수 테드 윌리엄스 등 190명… 사망 후 시신을 초저온 냉동 처리
온몸 체액 빼내고 부동액 채운 다음 액화질소에 넣어 급속 냉각해 보관
아직 해동 기술 완성되지 않았지만 언젠가 무사히 깨어날 날 기다려요

온몸을 꽁꽁 얼렸다가 수십 년이 지난 뒤에 깨어나는 게 가능할까요? 오랫동안 늙지도 않고 그대로 보존돼 있다가 깨어나서 미래에서 사는 거죠. 이런 꿈같은 일이 현실에서 추진되고 있어요. 놀랍게도 최초의 '냉동 인간'은 이미 50년 전인 1967년에 탄생했답니다. 물론 아직 냉동 인간을 깨울 수 있는 기술은 완성되지 않았어요. 그렇지만 지금처럼 기술이 발전한다면 언젠가는 깨어난 냉동 인간을 만나게 될지 몰라요.

◇영하 196℃에서 불멸을 꿈꾸다

현재 미국의 알코어(Alcor) 생명연장재단은 냉동 인간 190여 명을 보존하고 있어요. 대부분 뇌졸중이나 심장병 같은 불치병으로 사망한 사람들인데요. 나중에 이런 병을 고칠 기술이 개발되면 해동시켜서 병을 고치기를 기대하면서 냉동 인간의 길을 택했어요. 이 중에는 지난 2016년 사망한 중국의 여성 작가인 두훙(杜虹)과 2002년 사망한 미국 메이저리그 야구 선수 테드 윌리엄스 같은 유명인도 있어요. 작년 11월에는 14세 말기 암 환자였던 영국 소녀가 냉동 인간의 길을 선택해 화제가 되기도 했죠.

[재미있는 과학] 영하 196℃에서 해동을 기다리는 사람들
/그래픽=안병현
이들의 시신은 영하 196℃의 액체질소가 담긴 용기에 보관돼 있는데요. 이건 미국의 물리학자인 로버트 에틴저가 생각해낸 인체 냉동 보존 아이디어예요. 그는 1962년 '냉동 인간'이라는 책에서 기체 상태인 질소가 액체로 변하는 영하 196℃가 시체를 몇백 년 동안 보존하는 데 적합하다고 제안했어요. 이 책을 계기로 '인체 냉동 보존술'이라는 기술이 세상에 알려졌고, 1967년 1월 미국에서 첫 번째로 인간을 냉동 보존하기 시작했어요.

인간을 꽁꽁 얼렸다가 되돌리는 게 가능하다고 믿는 이유는 세포 단계에서 성공한 적이 있기 때문이에요. 1946년 프랑스의 생물학자 장 로스탕은 개구리의 정자를 얼렸다가 원래대로 되돌렸는데요. 이때 그는 세포액을 글리세롤이라는 동결 억제제로 바꿔 넣었어요. 세포는 대부분 물로 이뤄져 있어서 얼리게 되면 뾰족뾰족한 얼음 결정이 만들어져요. 이 결정이 세포막을 찌르면 세포가 손상되죠. 물 대신 글리세롤 같은 동결 억제제가 들어가게 되면 얼음 결정이 생기지 않아 세포를 보호할 수 있어요.

현재 과학자들은 DMSO라는 동결 억제제를 사용해 세포를 얼렸다가 녹여서 원래대로 되돌리고 있어요. 세포를 글리세롤이나 DMSO에 담그면 삼투압 현상이 일어나 세포 내에서 물이 빠져나오고 그 자리에 동결 억제제가 들어가게 돼요. 이걸 이용해서 과학자들은 1950년부터는 소의 정자, 1954년부터는 사람의 정자까지 냉동하고 해동할 수 있게 됐어요. 특히 정자는 수분이 적고, 정자를 이루는 단백질(프로타민)이 냉기에 강해 냉동이 쉬운 편이에요. 난자는 정자보다 냉동시키기 어렵긴 하지만 두 생식세포 모두 얼렸다가 녹여 수정란을 만들 수 있답니다.

◇해동 기술은 아직 미완성

세포 하나에 비해 인체를 전부 냉동시키는 건 훨씬 까다로운 일이에요. 미꾸라지 같은 작은 생명체는 액체질소에 넣었다 빼는 간단한 과정만으로 잠깐 얼었다가 원래대로 돌아올 수 있어요. 하지만 사람처럼 복잡한 생명체는 오랫동안 얼렸다가 되돌리는 데 훨씬 정교한 과정이 필요해요.

알코어 생명연장재단은 이런 복합 과정을 처리하면서 냉동 인간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어요. 우선 냉동 보존을 신청한 사람이 사망하면 시신에 심폐 소생 장치를 연결해 호흡과 혈액순환 기능을 되살려요. 그런 다음 정맥주사를 놓아서 세포를 썩지 않도록 막는 처리를 해요. 이 시신을 회사 본부로 옮긴 뒤에는 가슴을 열고 갈비뼈를 분리해요. 다음으로는 몸속의 피를 비롯한 모든 체액을 빼내고 동결 억제제 DMSO를 채워 넣어요. 이렇게 처리한 시신을 영하 196℃로 급속 냉각한 질소 탱크에 넣는 것이죠.

냉동 인간을 만드는 것까지는 성공했지만, 아직 이들을 원래대로 되돌릴 수 있을지는 몰라요. DMSO에 독성도 있고, 장기나 조직마다 얼고 녹는 속도가 달라서 그 과정에서 세포가 상할 수 있기 때문이에요. 또 우리 몸에서 가장 중요한 뇌를 냉동 상태로 제대로 보존하고, 해동시킨 뒤에 뇌세포를 복구할 수 있을지 확신할 수 없어요.

하지만 희망은 있어요. DNA 기술을 비롯한 생명공학과 뇌 과학이 빠르게 발달하고 있기 때문이죠. 신체를 복제하는 길이 열리고, 사람의 장기를 따로 배양해서 만들 수 있는 날이 오면 냉동 인간 기술도 빛을 발할 수 있죠. 우선 신체를 해동한 뒤에 필요한 장기를 대체할 수 있으니까요.

뇌의 경우 냉동했다가 해동하면서 기억과 정보를 온전히 되살리기 어려울 수 있어요. 하지만 이것도 뇌 속 뉴런의 연결을 재구성해 인공 뇌를 만들 수 있는 기술이 개발되면 해결될지도 몰라요. 물론 이런 기술들이 모두 개발되려면 조금 더 시간이 걸리겠지만요.

'불멸'을 꿈꾸며 냉동 인간을 선택한 사람들이 깨어날 미래가 언제가 될지, 또 그날이 오면 세상은 어떤 모습일지 상상해보면서 과학기술의 발전을 지켜보기로 해요.


박태진 과학칼럼니스트 기획·구성=박승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