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아하! 이 장소] 말라카 해협의 요충지… 도시 전체가 세계문화유산

입력 : 2017.08.01 03:03

말라카

우리나라는 석유의 대부분을 중동으로부터 수입해요. 석유를 가득 싣고 페르시아만에서 출발한 유조선은 말라카 해협을 지나 한국에 도착합니다. 말라카 해협은 말레이반도와 인도네시아 수마트라 섬 사이에 형성된 좁은 해협으로, 서쪽은 인도양, 동쪽은 남중국해와 연결돼 있어요. 오래전부터 동방과 서방을 연결해 온 해상 운송로였으며, 지금도 전 세계 해상 운송량의 20% 이상이 통과하는 중요한 바닷길이에요. 말라카 해협은 또 다양한 문명이 교류하던 통로였어요.

말라카 해협의 이름은 현재 말레이시아의 도시 말라카에서 유래했어요. 말라카는 현재의 싱가포르에서부터 북서쪽으로 약 220㎞ 떨어진 곳에 수마트라 섬을 마주 보고 있어요. 작은 어촌이었으나 15세기 이슬람 말라카왕국의 성장과 함께 국제 항구도시로 변화해요. 말라카는 향신료를 갖고 온 동남아시아 상인, 비단과 도자기를 갖고 온 중국 상인, 진기한 서역 물품을 갖고 온 중동 상인 등이 북적이는 거대한 중계무역항으로 발전합니다.

말레이시아 말라카의 ‘크리스트 교회’는 1753년 네덜란드인들이 세웠어요. 동서양 해상 교역의 교차로에 있는 말라카에는 유럽, 중동, 인도, 중국 등지에서 유래한 문명이 다양한 모습으로 공존하고 있어요.
말레이시아 말라카의 ‘크리스트 교회’는 1753년 네덜란드인들이 세웠어요. 동서양 해상 교역의 교차로에 있는 말라카에는 유럽, 중동, 인도, 중국 등지에서 유래한 문명이 다양한 모습으로 공존하고 있어요. /위키피디아
1511년 포르투갈이 말라카를 점령하면서 말라카는 유럽의 지배를 받아요. 당시 말라카에서 거래되던 향신료는 유럽인들에게 특히 인기 있는 상품이었는데, 유럽의 향신료 가격은 매우 비쌌죠. 중동 상인들이 유럽 시장으로 공급되는 향신료의 유통을 독점하고 있었기 때문이에요. 중동을 거치지 않고 향신료를 직접 유통하기 위해 새로운 항로를 찾아나선 포르투갈 항해사들이 무력으로 말라카를 점령한 것이죠. 이후 말라카는 1641년 네덜란드, 1824년 영국의 지배를 받으며 유럽 문화의 영향을 받아요.

19세기 말레이반도를 지배한 영국은 말레이시아의 주석을 캐기 위해 중국인 광산 노동자들을 끌어들여요. 말라카에도 중국인이 대거 유입됩니다. 또 20세기 초 고무가 백금이라고 불릴 정도로 가격이 높을 당시 남(南)인도의 고무 농장 노동자들이 대거 이주해 와 말라카의 인도인 비율도 높아지죠.

이렇게 복잡한 역사를 가진 말라카는 아시아의 대표적인 다문화 도시로 다양한 민족, 종교, 언어가 공존하는 장소입니다. 말라카를 여행하면 무슬림을 위한 모스크, 불교 신도를 위한 사찰, 힌두교도를 위한 힌두 사원, 기독교의 성당과 교회까지 쉽게 찾아볼 수 있어요. 다양한 민족의 다양한 문화가 혼재돼 문화 유적의 박물관과 같은 말라카는 2008년 도시 전체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됐답니다.



박의현 창덕여중 지리 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