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경제 이야기] "정부 해결책은 대부분 나쁘다"는 자유주의 경제학자

입력 : 2017.07.28 03:08

[밀턴 프리드먼]

시장 합리적 선택 신뢰한 프리드먼 "정부 개입은 오히려 악영향" 주장
주류였던 케인스주의 정면 반박해

자유시장 옹호한 '시카고학파' 이론… 레이거노믹스 정책 밑거름 됐어요

밀턴 프리드먼
/위키피디아
모든 학생이 원하는 학교를 골라 갈 수 있게 해주면 어떨까요? 학생들에게 '교육 바우처'를 나눠주고 자유롭게 가고 싶은 학교를 선택할 수 있게 하는 거예요. 학교는 학생에게서 받은 바우처를 정부에 제출해 돈을 받고요. 많은 학생이 선택한 학교일수록 정부로부터 돈을 많이 받게 되므로 학교들이 서로 경쟁할 것이고, 자연히 전체 교육의 질이 높아질 수 있어요.

이런 주장을 한 사람은 1976년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 밀턴 프리드먼(1912~2006·사진)입니다. 시장은 원래 안정적이므로 정부가 개입해서는 안 되며, 시장에 있는 개인은 합리적으로 행동하므로 시장의 미래를 합리적으로 예측할 수 있다고 믿은 자유주의 경제학자예요. 앞의 사례는 시장과 개인 선택의 자유를 중시하는 그의 신념이 잘 반영된 주장이죠.


◇케인스주의를 반박하다

프리드먼은 1929년 대공황 이후 주류 경제 이론으로 군림하던 케인스주의를 반박하는 데 앞장섰어요. 케인스주의는 정부가 시장에 개입해 경기를 조절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이론이에요. 케인스주의 학자들은 "사람은 각자 돈을 버는 정도에 따라 돈을 쓰므로 경기가 어려울 때 세금을 깎아주면 소비가 늘어난다"고 생각했어요. 소비를 늘려 경제 회복을 꾀할 수 있다는 거죠.

프리드먼의 생각은 달랐어요. 사람들은 매달 월급 규모에 따라 돈을 쓰는 게 아니라 앞으로 쭉 장기간에 걸쳐 벌 수 있는 돈(이것을 '항상소득'이라고 불러요)을 계산해서 소비를 한다고 봤어요. 그는 연구를 통해 호황이나 불경기나 일반 사람의 소비 차이가 크지 않다는 사실을 증명하기도 했죠. 즉, 정부가 일시적으로 세금을 깎아주더라도 소비가 증가하는 효과는 크지 않고 경제 회복에도 도움이 되지 않을 거라고 프리드먼은 주장했어요.

프리드먼이 본격적으로 주목받기 시작한 것은 1970년대예요. 당시 미국 경제는 경기 침체에 인플레(물가 상승)까지 겹쳐 몸살을 앓았어요. 일반적으로 경기가 좋으면 물가가 상승하고 경기가 나쁘면 물가가 안정되는데, 이때는 엎친 데 덮친 격이었죠. 이 현상을 '스태그플레이션'이라고 해요. 침체(stagnation)와 물가 상승(inflation)을 합친 신조어죠. 당시의 주류 경제 이론으로는 스태그플레이션을 설명하기 힘들었어요. 케인스주의에 따라 정부가 적극 개입해 경기 부양책을 시행하는데도 경기는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고 물가는 계속 상승했어요.

한국은행에서 기준금리를 결정하는 금융통화위원회가 열리고 있어요.
한국은행에서 기준금리를 결정하는 금융통화위원회가 열리고 있어요. 한국은행은 기준금리 조정 등을 통해 시중 통화량을 조절해요. 밀턴 프리드먼처럼 경제정책에서 화폐 공급의 중요성을 강조한 경제학자들을‘통화주의자’라고 불러요. 1980년대 레이거노믹스와 대처리즘은 프리드먼의 생각을 이어받았다고 해요. /장련성 객원기자
이때 프리드먼이 답을 제시합니다. 정부가 경기 부양책을 사용하면 일자리가 생기고 실업률이 낮아지죠. 실업률이 낮아지면 경기가 나아져 앞으로 물가가 오를 것이라는 기대 심리가 생기고, 근로자들이 임금 인상을 요구해요. 결국 인위적인 부양책이 스태그플레이션을 유발한다는 것이 프리드먼의 설명입니다. 프리드먼은 "정부가 내놓는 해결책은 대부분 문제 그 자체만큼 나쁘다"는 말을 남겼어요.

◇레이거노믹스의 설계자

또 프리드먼은 돈의 공급, 즉 통화정책의 중요성을 강조했어요. 시중에 유통되는 돈의 공급을 일정하게 유지해야 한다고 주장했죠. 중앙은행이 돈을 마구 풀었다가 조였다가 하면 시장이 혼란스러워지고 오히려 경제를 더 어렵게 만들 수도 있기 때문이죠. 실제로 미국 중앙은행은 대공황 직전에 통화량을 3분의 1이나 감소시켰다고 해요. 프리드먼은 갑작스러운 통화량 교란이 대공황의 한 원인이라고 봤죠.

프리드먼은 이런 역사적 경험을 토대로 다음과 같은 주장을 이끌어냈어요. 첫째, 경제의 상승과 하락에 있어 화폐 공급이 열쇠가 된다는 것. 둘째, 중앙은행은 통화량을 얼마나 공급할지 자의적으로 판단하지 말고 사전에 규칙을 정해놓고 그에 따라 일정하게 공급해야 한다는 것이죠. 그래야 시장에서 합리적 예측이 가능하고 경제가 안정된다고 믿은 거예요. 화폐 공급의 중요성을 강조한 프리드먼의 이론은 "재정 정책이 경제를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요인"이라는 재정주의에 맞서 '통화주의'로 불렸어요.

프리드먼의 이론에 동조하는 학자들을 통화주의자(monetarists)라고 부릅니다. 통화 정책을 통해 경제를 조절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믿는 자유주의 경제학자들이죠. 프리드먼이 재직했던 시카고대에 같은 생각을 가진 경제학자들이 많아 '시카고학파'라 부르기도 해요. 시장과 개인의 자유를 주장했지만 중앙은행의 통화량 조절 기능은 꼭 필요하다는 입장을 취했어요. 시카고학파는 케인스학파와 첨예하게 대립하면서 현대 경제 이론의 한 축을 형성합니다.

1980년대에는 자유주의가 정부 개입주의를 밀어내고 미국과 영국 정부의 주류 정책으로 자리 잡아요. 프리드먼의 역할이 결정적이었죠. 자유주의 경제정책은 각국 지도자의 이름을 따서 미국에서는 레이거노믹스, 영국에서는 대처리즘이라고 불렸어요. 영국 경제 전문지 '이코노미스트'는 프리드먼을 "20세기 후반의 가장 영향력 있는 경제학자"라고 칭했답니다.


한진수 경인교대 교수(사회교육과) 기획·구성=박승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