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숨어있는 세계사] 모피·고래·사탕수수… 무역품 따라 다양한 인종 이주
하와이 이주사
폴리네시아 원주민의 왕국에서 태평양 무역의 거점으로 발돋움
미국에서 가장 인종 구성 다양한 州… 트럼프 反이민 정책에 강하게 반발
오바마 전 대통령 고향이기도 해요
올해 초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이슬람권 6국 출신의 입국을 제한하려 하자, 하와이주(州) 연방 지방법원의 데릭 왓슨 판사가 제동을 걸었어요. 결국 대법원이 6월 트럼프 대통령 손을 들어줬지만 왓슨 판사는 지난 13일 "행정명령에서 비자 발급이 가능한 범위를 현행보다 넓혀야 한다"며 정부의 '반(反)이민' 행정명령에 계속 반발하고 있죠. 하와이 주민들도 왓슨 판사를 적극 지지하고 있습니다. 사실 하와이는 미국 주 가운데 인종 구성이 가장 다양한 곳이에요. 이번 사태를 계기로 오늘은 '이주민들의 섬' 하와이에 대해 알아보도록 해요.
◇태평양 무역의 중심이 되다
화산섬 하와이에 처음 정착한 사람은 약 1000년 전 태평양을 건너온 폴리네시아인들이에요. 약 500~600년 전에도 폴리네시아인들이 많이 건너왔다고 해요. 이때까지 하와이는 자급자족 경제와 족장 중심 전통사회 모습을 유지한 것으로 보입니다.
1778년 1월 영국 탐험가 제임스 쿡 선장이 하와이에 도착하면서 이 섬이 서구 세계에 알려졌고, 세계 무역 시스템에 편입됐어요. 아메리카 대륙과 아시아, 호주 사이에 있는 지리적 이점을 살려 하와이는 태평양 모피 무역의 거점으로 떠올랐죠. 이내 하와이에는 총, 술, 비단, 후추와 같은 신문물이 쏟아져 들어왔어요. 동시에 홍역, 폐렴, 성병 등 각종 신종 전염병도 퍼져 주민들이 대거 목숨을 잃기도 했죠.
이렇게 서양 세력과 접촉하면서 하와이 사회도 변하기 시작해요. 그동안 개별 족장의 통치를 받았던 하와이인들은 강력한 '우두머리' 한 명이 필요했어요. 군사적으로 유능하고 카리스마가 넘쳤던 카메하메하 1세가 1782년부터 1810년까지 무력으로 모든 섬을 병합해 통합 하와이 왕국이 출범했습니다.
- ▲ 태평양의 화산섬 하와이는 지난 300여 년간 폴리네시아인, 유럽인, 아시아인 등이 꾸준히 이주해 미국에서 가장 인종 구성이 다양한 주(州)가 됐어요. 미국 최초로 흑인이자 다문화가정 출신 대통령이 된 버락 오바마도 1961년 하와이에서 태어났어요. /위키피디아
◇아시아계가 다수인 미국 州
19세기 중반부터는 사탕수수가 하와이의 주된 무역 상품으로 떠올랐어요. 미국 남북전쟁(1861~1865) 이후 설탕 값이 크게 오르자 하와이 농장에서 사탕수수 붐이 일어났죠. 농장주들은 40만명에 가까운 노동력을 대려고 아시아에서 사람들을 데려왔어요. 1880년대에만 중국인이 약 1만8000명, 일본인과 포르투갈인이 약 1만명 하와이로 이주해왔어요. 1900년에는 일본인이 하와이 전체 인구의 40%를 차지하기도 합니다. 또 필리핀에서 1910년부터 20년간 약 12만명이 이주했어요. 조선에서도 1903년부터 1905년까지 노동자 7291명을 하와이 사탕수수 농장으로 파견했는데, 이것이 한국 역사상 첫 하와이 이주로 기록됐어요. 지금도 하와이 인구의 37%가 아시아계죠. 반면 폴리네시아계 원주민은 소수(약 10%)로 전락했어요.
사탕수수 산업으로 얻는 이윤이 나라 경제의 중요한 축을 맡은 상황에서 1890년 미국이 관세법을 개정해 하와이산 사탕수수에 무거운 세금을 매겼어요. 큰 타격을 입게 된 하와이 사탕수수 업자들은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차라리 미국과 합병하는 게 낫다"고 주장하기 시작했죠. 하와이의 통치자 릴리우오칼라니 여왕은 잃어버린 권력을 되찾기 위해 헌법 개정을 시도했으나 1893년 합병론자들이 결국 정부를 타도하고 임시정부를 수립합니다. 합병론자들의 바람에 따라 하와이는 1898년 미국 합병이 최종 결정됐어요. 미국령(領)이 된 뒤 사탕수수와 파인애플 재배가 한층 활기를 띠었고 인구가 더욱 증가했죠. 2차 세계대전 후 주(州) 승격 운동이 활발해져 하와이는 1959년 8월 21일 미국의 50번째 주가 됐어요.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의 어머니도 이때쯤 하와이로 이주해 1961년 오바마를 낳았죠. 오바마는 훗날 최초의 흑인이자 하와이 출신 미국 대통령이 됩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하와이를 '어느 한 민족이 우위를 차지하지 않는 다문화 지역이라는 점과, 역사적 경험, 독특한 인구 구성을 가진 곳'으로 표현했어요. 트럼프 정부의 반이민 정책에 하와이 사람들이 앞장서서 반기를 드는 배경엔 이렇듯 다양성을 품은 이주민들의 역사가 있죠. 앞으로도 트럼프 대통령이 반이민 정책을 계속 추진한다면 하와이의 반발을 넘어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