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뉴스 속의 한국사] 강제징용된 800여 한국인의 恨이 서린 섬

입력 : 2017.07.25 03:10

[군함도]

1000m 지하 갱도에서 강제 노역… 허리도 못 펴고 12시간 석탄 캐기도
최소 134명 사고나 병으로 쓰러져

日, 군함도 '근대화 유산' 등재하며 "징용의 실상도 알리겠다"는 약속 아직까지 지키지 않고 있어요

이달 초 미국 뉴욕 중심가인 타임스스퀘어의 광고판에 '군함도'의 실상을 알리는 영상 광고가 실렸어요. 서경덕 성신여대 교수와 영화 군함도의 출연 배우들, 네티즌 5500여 명이 마련한 기금으로 올린 광고라고 해요. 광고 영상은 일제강점기에 한국인을 강제징용해 노예와 다름없이 착취하는 군함도와 일제를 고발하는 내용이었어요. 일제강점기에 한국인 노동자들은 왜 군함도에 끌려가 갖은 고생을 하며 목숨을 잃어야 했을까요? 군함도를 통해 일제강점기 한국인들의 강제징용에 대해 살펴볼게요.

◇일제 최후의 발악 '국가 총동원령'

일본은 1850년대 외국에 항구를 열어 아시아 어느 나라보다 일찍 근대화와 산업화를 이뤘어요. 일본은 강해진 군사력과 경제력을 바탕으로, 서구 열강처럼 무력으로 외국에 식민지를 건설하는 제국주의 국가의 대열에 뛰어들었어요. 이웃 나라 조선을 식민지로 삼기 위해, 한반도의 지배권을 두고 청나라·러시아와 전쟁을 벌여 승리를 거뒀죠. 결국 1910년 대한제국의 주권을 강제로 빼앗아 한반도를 식민지로 삼는 데 성공했어요.

[뉴스 속의 한국사] 강제징용된 800여 한국인의 限이 서린 섬
/그림=정서용
그러던 중 1929년 세계경제가 대공황에 휘말렸고, 일본 역시 경제적으로 심각한 타격을 입어 도시에 실업자가 늘어나고 사회가 불안해졌어요. 일제는 군사력을 더욱 키우고 전쟁을 벌여 대공황을 해결하려 했죠. 1931년 만주를 침략, 점령한 뒤 1937년에는 중국 대륙을 침략하는 중일전쟁을 일으켜요. 중일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 일본은 1938년에 '국가 총동원령'이라는 법률을 제정하고 한국의 온갖 자원을 강제로 빼앗기 시작했어요. 국가 총동원령은 일본이 전쟁에 전력을 집중하기 위해 인적·물적 자원을 자기들 마음대로 동원하고, 통제할 목적으로 만든 법이에요.

국가 총동원령에 따라 일제는 노동력, 물자, 자금, 시설 등을 완전히 자기들 통제 아래 두고 한국에서 물자를 강제로 빼앗아갔어요. 뿐만 아니라 이듬해인 1939년에는 '국민 징용령'이라는 것을 공포하고 필요한 인적 자원 강제 동원에 나섰죠. 중일전쟁 전에는 한국의 값싼 노동력을 얻기 위해 '모집'을 하는 형식으로 한국인들을 모아 일본의 토목공사장, 광산에서 집단 노동하게 했다면, 중일전쟁 뒤부터는 국가 총동원령과 국민 징용령을 앞세워 한국인들을 강제로 끌고 가 일을 시킨 것이에요.

1939년부터 1945년까지 강제 동원된 한국인은 약 113만명에서 146만명에 달하는 것으로 조사됐어요. 이들은 주로 탄광, 금속 광산, 토건 공사, 군수공장 등에서 가혹한 노동 조건 속에 혹사를 당했죠. 일제는 또 '근로 동원'이란 명목으로 초등학생까지 군사시설 공사에 동원했으며, 1944년에는 '여자정신대근무령'을 발표해 12~40세의 여성 수십만 명을 강제로 모아 군수공장에서 일하게 하거나 군대 위안부로 보내는 만행을 저질렀어요.

◇일본 군함을 닮은 탄광 섬

군함도는 많은 한국인이 강제징용으로 끌려갔던 곳 중 하나예요. 군함도의 원래 이름은 '하시마(端島)'로 일본 나가사키(長崎) 항에서 남서쪽으로 약 18㎞ 떨어져 있어요. 섬의 모양이 일본의 군함을 닮아 군함도라는 별명으로 불렸는데 축구장 2개만 한 크기의 섬으로 섬 전체가 탄광이며 탄광을 뚫어놓은 갱도는 해저 1000m에 이른다고 해요. 이곳에 석탄이 묻혀있다는 사실이 알려진 뒤로 1890년부터 미쓰비시라는 일본 기업의 소유가 됐고, 중요 산업 시설로 1916년에 일본 최초 철근 콘크리트 구조의 고층 아파트가 건설됐어요. 일본에는 석탄이라는 에너지를 공급해주는 중요한 산업 자원이었지만 1940년부터 1945년까지 수많은 한국인이 강제징용을 당한 곳이어서 한국인들에게는 '지옥섬'이나 '감옥섬'으로 불릴 정도로 악명 높은 곳이었어요.

징용당해 이곳에 온 한국인들은 해저 1000m가 넘는 갱도를 오르내리며, 허리조차 펼 수 없는 비좁은 공간에서 하루 12시간 이상 석탄을 캐는 작업에 동원되었어요. 45도 이상의 고온에 가스 폭발 사고도 잦아 위험한 작업 환경이었죠. 1943~1945년 사이 약 800명의 한국인이 이곳에 강제징용됐어요. 열악한 환경에서 병에 걸리거나 사고를 당해서, 또는 탈출을 시도하다 바다에 빠지거나 굶어서 목숨을 잃은 사망자는 공식으로 확인된 것만 134명이라고 합니다. 사망자 명단에서 빠졌거나 고의적으로 감춰진 경우도 있어 사망자 수는 훨씬 많을 것으로 짐작하고 있어요.

군함도는 1960년 이후 쇠퇴하여 1974년에 사람이 살지 않는 무인도가 됐다가 최근에 일본 정부에 의해 관광지로 개발됐어요. 일본은 2015년 7월 군함도를 일본 근대화 산업 시설 유산의 하나로 묶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했어요. 이에 우리나라와 중국 등에서 강제징용에 대한 실상을 밝히며 반발하자 일본 정부는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록된 23개 근대 산업 시설 가운데 한국인 강제 노동이 있었던 군함도 등 7개 시설에 정보센터를 건립해 강제 노역을 인정하고 희생자를 기리는 조치를 약속한 바 있어요. 그런데 아직까지 정보센터를 세워 강제징용의 실상을 알리는 약속을 지키지 않고 있죠. 미쓰비시중공업 나가사키조선소와 다카시마 탄광, 하시마 탄광, 미이케 탄광 및 미이키 항구, 야하타제철소 등 7개 시설은 일제강점기에 일본으로 끌려간 한국인 약 5만8000명이 가혹한 강제 노동에 시달렸던 곳이에요.


지호진 어린이 역사저술가 기획·구성=박승혁 기자